고요한 시끄러움에 대하여
요즘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혼자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나도 있어'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귀신 아니고, 이명이다.
이명이란 게 참 신기해서 일이 바쁘게 돌아가고, 주위가 소란할 때는 들리지 않는다. 이명은 바쁜 일이 없고 한가할 때, 혼자 조용히 있을 때 슬그머니 찾아온다.
최대한 가깝게 표현해보자면 '위이이이~~ㅇ' 정도인데, 벌레 소리 같기도 하고, 아날로그 라디오 주파수 맞추는 소리 같기도 하고, 기내 소음 같기도 하다.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의심하는 시점은 비행기 귀 통증을 심하게 겪고 난 다음이다. 인도 델리에서 출발한 소형 비행기가 네팔 카트만두에 착륙하려고 고도를 낮췄을 때 갑자기 천둥번개 치는 소리와 함께 고막이 찢어지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얼마나 아프고, 아니 아프다기보다 무서웠는지 웬만해서는 아프다고 소리를 내지 않는, 심지어 출산할 때도 소리를 안 냈을 정도로 아픈 걸 잘 참는 편인 내가 비행기 안에서 아프다고 아아 악하고 소리를 질러서 승무원들 총출동하고 난리가 났었다. 비행기에서 내리고 나서도 뭔가 고장이 났는지 한참 동안 귀에서 삐--------하는 소리(응급실 심박수 모니터에서 나는 소리)가 났다. 귀에 뭔가 말썽이 생긴 것 같았지만 장기 여행 중이라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실제로 그것이 이명의 원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명이 올 때마다 비행기에서의 난리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명이 아무 때나 찾아오는 게 아니다. 일할 때나 바쁠 때는 이명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바쁠 때는 내 몸에 작은 소리에 집중할 여유가 없기 때문일 테고, 주위가 소란하면 그 소란함에 압도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뭔가 일상이 바쁘게 돌아갈 땐 큰 불편은 느끼지 못해서 치료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언젠가 중이염 때문에 이비인후과 간 김에 이명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그때 의사님 말씀이 일상생활에 불편을 못 느끼는 정도라면 신경 쓸 필요 없다고, 어차피 이명은 치료법도 없다면서 그냥 나의 일부라고 받아들이고 살라고 했다. 그때는 뭐 저런 무책임한 의사가 다 있나 싶었지만, 그 말은 내 인생에 꽤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이명 말고도 내 몸의 이런저런 불편함들이 있다. 살다 보면 인간관계에서 오는 불편함도 수두룩 빽빽하고, 주변 환경에서 오는 불편함 등이 널려 있다. 어쩔 수 있는 것들은 바꾸려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들은 그냥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문제는 이 두 가지를 혼동할 때다. 어쩔 수 없는 것들을 어떻게 해보려다가 혼쭐이 나기도 하고, 어쩔 수 있는 것들인데도 어떻게 해볼 용기를 내지 않고 방관할 때도 있다. 다행히 나의 이명은 그 신통한 의사님 덕분에 일찍부터 어쩔 수 없는 것, 내 몸의 일부로 분류되어왔다. 그래서 바쁘게 돌아가던 일상에서 벗어나 이명이 들리면 내 몸의 소리가 들리네, 하고 귀 기울이고, 기내 소음처럼 들릴 때는 아 추억 돋네, 하면서 그런대로 이명과 함께 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