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래에 결코 내 열등감을 아이의 인생에 적용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가진 피해의식을 인식(인정) 하지 못하고 프레임에 갇힌 비교하는 삶을 아이에게 절대로, 결코 물려주지 않을 것이다. 시그니엘에 입주하면 행복하고, 대다수 그렇지 못한 주변 지대에 산다면 불행한 것이라는 이분법적이고 실체 없는 이야기를 아이를 벽 세워 메아리치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아이의 삶을 빌미로 그 소리를 끊임없이 자기 달팽이관 쪽으로 반사시키며 자기 최면을 거는 부모의 인생 합리화 과정이다. 우리 집은 우동 집을 했으니 너도 반드시 우동 집을 해야 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이가 자전거를 잘 탈 수도 있으니까, 그림을 그릴 수도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한국은 자원도 없고 공부 아니면 답이 없다는 답답한 헛소리는 정말 우물 안 개구리로밖에 살아보지 못한 부모가 아이에게 들려주는 최악의 하소연이다. 해본 게 그것뿐이라 내가 아는 게 없으니 하는 소리다. 일단 해보고 싶은 걸 하라는 것만이 도무지 무슨 재능을 가졌는지 알 길이 없는 아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가장 똑똑한 건 최근의 세대다. 모든 생물이 진화하듯 인간도 그러하고 내 아이가 나보다 뛰어나다. 보호는 해도 보장할 것처럼 굴진 않을 것이다. 반드시. 거리를 두고 하나의 삶 자체로 인정하고 인도해 주는 것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