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천, 하늘만 있고, 바다가 없었다.
바다만 있고, 하늘이 없었다.
원래 계획은 순천이었다. 지난여름 푸른 갈대숲을 보고 왔으니 마른 갈대숲길을 걸고 싶었다. AI가 발생해서 사람들의 통행이 제한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사람들 일에 동물들이 개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점점 더 그런 일들이 빈번해지고 있다.
계획했던 여행을 접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마음을 달랠 수 없어 행선지를 바꿔 다른 어디를 가야 했다. 서해 어디쯤을 살피다 대천이 눈에 들어왔다. 해수욕장 몇 곳을 다녀봤지만 대천엔 가보지 못했다. 톱니바퀴처럼 잘 짜인 계획을 따라가는 건 초보자이고, 순간순간 만나는 우연에 감동하고 그것을 즐기는 게 고수가 아닐까.
일요일 아침, 게으름을 다 만끽하고도 준비가 끝난 시간이 아홉 시 반이었다. 텀블러 2개에 연한 커피를 담고, 내비게이션에 지리를 맡긴 채 달리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휴일인데도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개통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고속도로는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어 달리기엔 너무 좋았고, 휴일과 월요일의 휴가가 한껏 부푼 풍선처럼 여유가 크게 느껴졌다. 아내와 평소에 못다 한 얘기로 수다 장단을 떨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의 대화가 진정한 소통이다. 평소 같으면 싸움이 나도 크게 날법한 주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지금까지 부부싸움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았다. 위기의 순간에 자리를 피했다가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는 먼지처럼 조용히 다가가 부유하지 않게 정리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지난 일들을 꺼내 마음을 열고, 사과도 했다. 옛날 연애 얘기도 유연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니 늙기도 하려니와 세상을 대하는 태도 또한 불혹을 넘어 이순에 마땅한 마음가짐이 된 건가.
지나가는 풍경이 다 같아 보여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서해가 가까워질수록 하늘은 어둡고, 공장의 높은 굴뚝 연기가 메아리처럼 허공을 오르다 사라지고, 언 듯 보이는 산들은 언덕처럼 야트막하다. 내가 사는 곳은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우물 속에서 보는 것처럼 하늘만 동그란데 이곳은 벌써 하늘이 차창 가득 확대되어 보인다.
여행을 갈 수밖에 없도록 유혹하는 것은 인터넷이다. 카페와 블로그엔 전국이 다 있다. 없는 게 없고, 맛난 것은 다 있다. 여행지의 풍경과 카페의 커피 맛은 말할 것도 없고, 맛집 주인의 인품과 조그만 골목길의 무심한 낙서까지 있다.
인터넷 정보를 용기에 연결시켜 실행으로 옮기는 힘을 준 것은 다름 아닌 길 안내의 전도사 내비게이션이다. 그는 시간과 공간을 꿰뚫고, 먼 우주에서 마치 신과 소통하듯이 인간의 길을 찾아 준다. 내가 자칫 그와의 소통을 잘못 이해하더라도 잠시 당황할 뿐 너그럽게 다시 길을 열어주는 인내와 여유도 있다. 사실 그는 전국의 모든 숙박업소와 맛집 주인들로부터 소정의 수수료를 받아야 함에도 금전에 관해서는 청렴하기가 그지없다. 마땅히 본받아야 할 성품이다.
길 안내의 전도사로부터 코치를 받아 한치의 오차도 없이 도착한 천복 굴단지에서 점심을 먹었다. 바닷가 시골의 작은 마을엔 그렇게 인도된 사람들로 차가 넘쳐나고 있었다. 내가 차지할 수 있는 자리가 초라해도 너무나 다행스럽고 행복했다. 잡히기 전의 물고기는 귀하디 귀하지만 그물에 들어온 물고기야 소홀해지기 마련인 것처럼 호객에 이끌려 들어가 자리에 앉는 순간 우리는 잡힌 물고기가 되는 것이다. 베트남 거리와 흡사한 목욕탕 의자에 앉아서 가스 불에 견디지 못하고 툭툭 벌어지며 뽀얀 속살을 내미는 짠 굴 한 점을 서로 먹여주며 부부의 애정은 꽃피었다. 옆에 앉은 충청도 청년들의 사투리와 시력을 잃은 남편을 위해 열심히 먹을 것을 준비하는 아내의 애잔한 풍경도 우연하게 만나는 여행의 감성이었다.
시골길과 바닷가를 달리다 파랗고 뿌연 하늘이 건물 너머로 보이는 그 어디쯤인가가 바다이고, 목적지 일거라 짐작을 할 즈음 내비게이션은 그 임무의 종료를 알렸다.
마침내 아직도 그리운 그 811호의 바다와 조우하게 되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문을 열고 들어가 마침내 보이는 바다 풍경은 블로그의 사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창은 크게 한 스푼 떠 놓은 바다였다. 바다가 들어와 우리를 빼꼼 들여다보고 있었다.
바다 끝 수평선 위로 하늘이 연결돼 온통 코발트였다. 그 풍경 속에 서 있었다. 창가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하염없이 풍경만 바라보았다. 바람도 없고, 소리도 없는 진공 캡슐 속 같은 곳에 갇혀서 잔잔하게 모래톱에 살짝살짝 도전하는 파도만이 유일한 움직임이었다. 창문을 열었더니 바람소리와 멀리서 들리는 파도 소리가 차갑게 들려왔다. 문을 닫았다. 다시 우주가 되었다.
우리는 스카이 바이크를 타기 위해 잠시 바다로 나갔지만 강풍으로 운행을 중지한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예약한 811호에 들어갔다. 커튼 배경그림처럼 바다 풍경이 펼쳐졌다. 울음 터지기 전 눈물 글 썽이 듯 아련하게 바다와 하늘이 동시에 노을로 물들기 시작했다. 영화감상 폼으로 자리 잡고 앉아서 한 편의 자연을 감상했다. 붉은 해는 순식간에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지만 여운처럼 남겨진 구름과 하늘은 코발트에서 붉은빛으로 다시 검 붉었다가 마침내 어두워졌다. 침대 위에 빨래 건조대로 휴대폰 카메라 받침대를 만들어 창 밖의 노을을 바라보는 다정한 연인의 실루엣 사진을 찍었다.
낯선 곳에서 유독 불면증이 심한 나는 잠들지 못했다. 창밖은 온통 어둠이었고, 바닷물과 모래가 만나는 곳에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만이 유일하게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을 받아 바다에 떠 있는 부표가 마치 하늘의 별처럼 반짝였다. 아내가 깰까 조심스럽게 일어나 창가 의자에 앉아서 까만 밤바다를 내려다봤다. 하늘도 바다도 고요했다. 우주에 떠서 우주를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코발트 커플룩으로 외출한
하늘 같은 바다와
바다 같은 하늘이
검푸른 색깔에 별 그린 이불 덮고
우주가 되었다
그래서 대천엔 하늘만 있었고,
때론 바다만 있었다.
잠깐 누워 잠을 청해 봤지만 멀리 달아난 잠은 돌아올 줄 몰랐다. 나와 바다는 말똥말똥 눈만 마주쳤다. 새벽이 오는 해변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수평선을 넘어갔던 어둠이 말갛게 세수하고 나타났다. 왼쪽 하늘부터 밝은 빛이 스미더니 순식간에 코발트로 변하는 새벽 바다는 어둠 속에서 한 이불을 덮었다 누군가에게 들켜 화들짝 놀란 부끄럼에 아무 일 없다는 듯 딴전을 피우고 있었다.
근처에서 아침을 먹고 바다가 아쉬워 다시 바다로 갔다. 커피를 손에 들고 여름 내내 가지고 다니면서 한 번도 안 펼쳤던 비치의자를 모래 위에 펼쳤다. 겨울은 겨울이었다. 바람이 찼다. 그래도 한참 동안 바다만 바라보았다.
바다가 병원보다 나은 때가 있다. 가만히 있어도 모든 걸 잊게 해 주고, 모든 걸 기억해주고, 보듬어주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바다였다.
집에 돌아왔을 때 닫혀 있던 커튼 뒤로 대천 바다가 있을 것만 같은 행복한 착각은 계속되었다. 아내도 그랬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코발트와 붉은 노을과 포근한 어둠이 내린 바다는 아직도 거실 창밖에서 문득문득 찰랑대고 있다. 내 811호의 바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