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현재 시간과 과거를 되돌아 본 순간
시간의 사전적 정의는 시각과 시각 사이의 간격을 가리키는 용어라고 되어있다. 이 용어의 설명에서 시각과 시각을 다시 정의하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블랙홀처럼 빨려 들 수밖에 없는 이 '정의' 규명 놀음은 자칫 소모적 사고로 흘러 제 꼬리를 잡으려 뱅글뱅글 도는 고양이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막상 시간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려니 머릿속이 백지처럼 하얗게 변해버렸다. 보이지는 않고 흐름으로만 인지 할 수 있는 바람처럼.
군산은 이공일팔(2018)로 포장된 일구삼공(1930) 과자 같은 느낌이었다. 90여 년 전 과거로의 회귀를 위해서는 내 삶에 녹아든 추억과 상상력이 필요했다. 내가 살아왔던 7-80년대의 삶과 책이나 영화에서 얻은 간접적인 경험들이 믹싱 돼 그 시간에 닿기가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지금 젊은 세대들보다 근접해 살았던 탓도 있었기에 근대와의 조우는 꽤 괜찮았다.
전날 늦게 도착한 숙소에서 하룻밤 자고 도심으로 향하는 거리 풍경은 여전히 외세에 의해 흔들리며 몸살을 앓고 있는 듯 보였다. 근대엔 일제의 침탈로, 현대는 거대 자본의 수탈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한 숨소리에 나부끼는 낡은 플래카드 구호들로 가득했다. 역사는 여전히 수레바퀴로 돌고 돌고 돌아가는데 우리는 그냥 박물관의 관광상품이나 우수에 젖은 이국적인 풍경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데.
출발은 토요일 늦은 5시. 과거를 향해 달리는 타임머신 인양 차창 밖의 풍경은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의 흐름만 인지할 수 있을 뿐, 한지에 먹물이 번지듯 어둠이 깔리는 일그러짐만 있었다. 인터넷에서 본 그 유명식당 앞엔 흰 종이로 '정기휴일'이라고 적혀있었다. 누가 관광지 유명 식당이 주말에 휴무를 한단 말인가! 생각지도 않은 일이었다. 전화해 볼 생각이 1도 없었던 안이한 생각이 바로 근대적 사고로 접근한 대가였는지도 모르겠다. 해는 벌써 기울었고, 시간이 더 지체되면 식솔들 밥을 굶길까 맘이 급해져서 플랜 B로 움직였다. 이번엔 현대적 사고로 전환해 전화로 먼저 예약을 했다. 영업시간이 8시까지라는 말에 자못 놀랐다. "이 동네는 초저녁 잠 많은 시골 아버지 같네."하고 허허롭게 웃었다. 어둠이 깊어지는 길 한 복판에서 길을 찾는 나에게 숫자만 바뀌는 디지털 시간의 존재란 놈은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어둠이 넓게 퍼진 새만금을 지나 호텔 근처 식당에 들어가 자리에 앉고서야 안심이 되었다. 바닷가에서 꼭 회를 먹어야 하는 규정 같은 건 없었음에도 늘 그렇게 했다. 군산의 회는 신선하고 맛났다.
호텔은 깔끔했지만 한 밤 중에 수레바퀴 덜컹거리는 듯한 기계음과 침대에 익숙해진 허리 탓에 온돌방의 불편과 낯섦 등이 겹쳐 들짐승처럼 사납게 날뛰는 꿈을 꾸느라 잠을 설쳤다. 여행지에서의 편한 잠이 언제부턴가 나에게는 요원한 희망이 된 지 오래다.
식당과 잠자리 등 약간의 에피소드를 되돌아보니 이곳으로의 여행이 마치 근대적인 설정에 맞춰서 내게 다가온 듯했다. 개운치 않은 잠으로 비몽사몽 깨어 호텔 커튼을 열었더니 맑은 햇살이 튕겨 들어왔다. 그러나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넓고 큰 공장 지붕들이었다. 창 가득 담겨온 풍경이 호텔답지도, 여행지 답지도 않았다.
근대역사박물관으로 향하는 공장지대 풍경도 낡아서 미래소년 코난이 살아가는 도시처럼 삭막했다. 곳곳엔 GM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의 외침이 바람에 쓸쓸하게 펄럭이고 있었다. 항구엔 사람이 보이지 않았고, 뻘 위에 올라앉은 배들은 붉은 치마를 두른 듯 녹이 슬어있었다.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 하얗게 부서지며 산화하고 있는 밧줄은 지팡이를 잡은 노인의 손처럼 간신히 삶을 견디고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며 눈에 들어온 풍경은 이국적이었다. 선입견이 더해져 마치 가보지도 못한 일본의 어느 시골 관광지를 떠올리게 했다. 주변의 커피숍이나 농특산물홍보센터 건물마저도 나팔바지 입던 고릿적 패션을 하고 있었다.
제일 먼저 들렀던 박물관에서 본 잡화점이나 '형제고무' 신발가게 등 근대거리 모형은 옛 기억을 순식간에 불러냈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검정고무신을 신었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천으로 된 운동화를 신을 수 있었지만 가정형편이 나아져서 그런 건 아니고 규정이 검정 교복엔 그것을 신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고무신은 엄지발가락 밑이 제일 먼저 닳았다. 구멍이 나면 그곳에 과자봉지를 넣어 흙이나 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았고, 발에 땀이 나면 미끄러워 신발이 벗겨지기 일쑤였다. 책가방 대신 보자기에 책을 말아 어깨에 메고 다녔다.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 전기가 없어, 일찍 밥을 먹었고 들에서 뛰어놀던 피곤함에 상다리 밑에 꼬꾸라져 잠들곤 했다. 라면이 귀해 국수에 섞어 끊이면 꼬불꼬불한 면발을 하나라도 더 건져 먹으려고 젓가락을 휘젓던 추억도 그때였지. 검정 고무신 한 켤레가 많은 기억을 불러냈다.
조선은행 군산지점은 오랜 세월을 지나왔음에도 온전히 보전되어 있었다. 조선 자본을 수탈한 일제 잔재의 한가운데 「'나라를 잃었던 자들아 그날을 기억하라' 경술국치 1910. 8.29」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돌아보고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일깨워주고 있었다.
경암 철길마을은 추억을 소환하는 결정판이었다. 폐 철로를 따라 낡은 주택들이 길게 자리 잡고 늘어선 가게마다 라면땅과 쫀득이를 팔고 있었다. 교복에 완장을 차고, 불량학생처럼 옆구리에 책가방을 끼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나이가 많은 노인부터 젊은이들까지 다양하게 복고를 즐기고 있었다. 70년대 학창 시절로 돌아간 듯한 풍경들.
동국사는 일본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사찰이었다. 마당에 들어서면 보이는 경사진 지붕이 건물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대웅전은 고요했다. 종교는 민족도, 인종도 뛰어넘어 그냥 하나의 존재다. 주변 풍경이 사찰은 이런 곳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마당 한 귀퉁이의 종탑. 꽃봉오리를 터트린 홍매화 한 그루. 작은 화분의 자잘한 이름 모를 들꽃들. 뒤뜰 햇살 아래 누워 방문객의 발소리에 졸린 눈을 간신히 떴다 외면하듯 다시 눈을 감으며 나른한 본능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오후의 삽살개. 고요한 대나무의 가지런하고 곧은 숲의 모습. 하나하나가 종교였다. 그 풍경 속에 차 한잔 들고 햇살을 쬐며 사물처럼 잠시 선 나도 종교가 되었다. 두 손을 합장하며 군에 간 아들의 무사귀환과 노부모와 딸과 아내의 건강을 기원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생각나는 것들이 하나 둘 더해져 희망은 어느새 누더기가 되었지만 되돌아 나오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기원으로 얻은 안심에 비로소 나의 종교가 완성되었다.
고우당 앞 정원에 따뜻한 햇살이 가득했다. 잠시 시간을 맡겨두고 벤치에 앉아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귀가도 여행의 일부라 가끔은 익숙하고 편안함이 떠올라 설레기까지 한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이 지난 주말 시간의 미래인 거잖아.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라는 소포 클래스의 말처럼 국가나 민족, 각 개인들 모두에게 하루하루의 시간들이 소중하고 소중하다. 그런 소중한 시간들이 모여 역사가 된다. 근대의 디딤돌 위에 오늘의 시간이 역사로 새겨지고 있는 것이다.
군산, 그곳에서 잠들어 있던 나의 시간과 역사를 떠올려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