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소설 - 그곳, 속초

기운을 얻어 돌아오는 여행은 옹달샘

by 벽우 김영래

내비게이션이 안내한 호텔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그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건물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건물이 보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연미복 차림의 깔끔하고 큼직한 해변의 호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만신창이가 된 권투선수 같은 모습으로 간신히 호텔 주차장을 가리키고 있는 간판이 실망과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가 주차장 표지를 따라간 곳은 풀밭 같은 비포장 마당이었다. 차를 세우고 뒤돌아보니 비로소 때 구정물 줄줄 흐르는 낡은 행주 같은 건물에 빛바랜 G호텔 표시가 간신히 보였다. 누렇게 뜬 페인트를 누더기처럼 뒤집어쓰고 있는 곳이 그와 그녀가 묵을 호텔이었던 것이다.

서너 시간 전 집에서 웹으로 검색했을 때는 바다가 보이고 번쩍번쩍하는 호텔이었는데 지금 눈 앞에 있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지만 기분이 남달라야 한다며 케리어에 쌀 것도 없는 짐을 이것저것 챙겨 넣는 걸 보고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 뭐 가져갈게 그리 많아요?" 그러자 그가

" 여행 갈 땐 케리어를 끌어야 폼이 나지! " 하고 대답했다.

그의 대답에 그녀가 짧게 웃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듯했다. 노트북, 간단한 평상 옷 한 벌, 세면도구를 넣었다. 호텔에 다 있다고 가져가지 말라고 하는데도 그것도 안 넣으면 케리어가 텅 비어 달그락 거린다며 꾸역꾸역 넣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싶었다.

당일 땡처리! 초특가를 찾은 그에게도 잘못이 있지만 그렇더라도 유명회사의 명성을 믿었는데. 예약할 때 ‘본 상품은 당일 땡처리 상품으로 예약 취소가 불가능합니다’라는 것을 본 기억이 떠올라 그는 '아! 내가 코를 꿰였구나' 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제와 돌이킬 수 없고, 자꾸 생각하면 짧은 여행의 시간만 허비할 뿐이라며 애써 스스로 위로했다. 화가 난 마음을 애써 참으며 손 지문인지 세월의 흔적인지 알 수 없는 흠집으로 뿌연 유리 현관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카운터엔 어린 아들을 돌보는 40대 후반의 남자가 구겨진 코팅지가 말린 낡은 안내판을 짚어가며 간단하고 재빨리 소개해주었다.

“물과 치약, 칫솔은 없고요. 수건만 있습니다. 필요한 것들은 앞에 보이는 편의점 등에서 구입하시면 됩니다.”

뭘 물어볼 시간도 없이 빠르고 완벽했다. 보험 판매원이 준 여행용 치약 칫솔세트를 넣을 때 그를 타박하던 그녀가 머쓱해했다. 복도에 들어서니 예전의 영화가 이렇게 낡을 수 있다는 모범을 보여주듯 했다. 침침하고 구부정한 복도에 빛바랜 붉은 카펫이 깔려 있었다. 문이 반쯤 열려 있는 듯해서 잡아당겼더니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보일 듯 말듯한 구멍에 열쇠를 넣고 손잡이를 당겼더니 열리지 않았다. 반대쪽으로 돌려도 역시나 똑같았다. 뭐가 잘못된 건지 몰라 처음부터 다시 오른쪽 왼쪽을 한 번씩 번갈아 잡아당겼다. 어느 순간 문이 열렸다. 어떻게 작동해서 열렸는지 알 수 없었다. 문이 스스로 열려 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방은 넓었다. 검은색 톤의 마루가 넓게 펼쳐졌고, 창가 쪽으로 더블침대가 보였다. 옷장도 전화기도 없었고, 가족형 호텔식 콘도라서 싱크대가 있었는데 나무처럼 보이려고 붙여놓은 코팅지가 귀퉁이부터 떨어져 싱크대 문을 열 때 노인 천식 하듯 스걱스걱하는 소리를 냈다.

흰색 이불이 가지런히 정돈된 침대는 비교적 깨끗했다. 2층이라 속치마 같은 커튼 사이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것이 보였다. 피곤이 몰려와 아! 하고 짧게 탄성을 내며 침대에 쓰러져 누우니 귀에서 윙윙하고 뭔가가 울어대는 것 같았다. 서 있을 땐 몰랐는데 누우니 피로가 쓰나미처럼 덮쳐와 노곤해졌다. 한 30분 정도 꿀 같은 단잠을 잤고, 다시 깼을 때가 세 시 반이었다.

호텔 예약할 때 준 정보 중 바닷가라는 한 가지는 정직했다. 그렇다고 바로 바다는 보이는 건 아니었고 한 5분 정도 걸어 나가야 했다. 휴가기간이 지났지만 약간 더위가 느껴졌다. 여름의 끝자락을 즐기는 듯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오른쪽으로는 소나무 숲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왼쪽엔 넓은 주차장과 그 끄트머리엔 낮인데도 오색등이 켜진 주점들이 유행가를 틀어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편의점 의자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 한 분이 우리 앞으로 오더니 숙소를 잡았냐고 물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래사장으로 걸어가면서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을 두 명이나 더 만났다. 여행지에서 숙소를 호객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처음이어서 낯설었다.

“우리가 이상해 보이나... 부부 같지 않나 봐!”하고 그가 투덜거리 말했다.

중년 남녀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다녀 불윤 남녀로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우스개 소리로 가족끼리 그러면 안된다는 말도 있는데. 중년 부부가 다정하면 이상하게 보는 세상이 이상한 건지, 다정한 부부가 이상한 건지. 괜히 멋쩍고 낯설어서 그는 혼자 괜한 생각을 했다고 후회했다. 그렇지만 호객행위가 썩 기분 좋지는 않았다. 그러나 곧 알았다. 터미널과 가까이 있는 여행지라서 무작정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고 보니 젊은 연인들이나 친구들끼리 무리 지어 다니는 사람들과 외국인들도 다른 곳에 비해 많이 보였다.

해가 쨍쨍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바닷물이 파랗지 않고, 회색빛을 띄고 있었고 그곳에서 몇몇 젊은이들이 추위가 느껴지는 바닷물에 친구를 들어 빠뜨리는 장난을 하며 깔깔댔고, 모래장난에 열중하고 있는 얘들을 카메라로 연신 그 모양을 담고 있는 젊은 부부도 보였다. 젊었을 때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비슷하다. 태고적부터 육지로 달려들며 지금까지도 같은 모습으로 부서지고 있는 파도가 그렇듯. 천 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박재삼 - 천년의 바람)이 아직도 하고 있듯이.


늦은 저녁은 호텔 앞에 식당에서 물회와 회덮밥으로 했다. 관광지에서 먹는 음식값은 품질에 비해 늘 비싼 느낌이다. 얼마 전 담양 갔을 때 그곳의 대표 먹거리인 대나무 죽순밥이 이 만 오천 원이나 하는 것에 놀랐었다. 관광지의 바가지요금은 시간의 문제지 결국 자기 눈을 찌르는 결과를 가져온 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여전한 현실이다.


여행을 좋아하면서도 그에게 한 가지 커다란 고민이 낯선 곳에의 불면이었다. 오늘 역시도 그랬다. 그는 잠들기 전에 맥주를 한 컵 마신 탓인지 두 번이나 깨서 화장실에 다녀왔고, 뒤척이다 얼핏 잠든 사이 꿈을 꿨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도 생생하게 생각났다. 화장실이 급해서 뛰듯이 갔지만 도착하기도 전에 쏟아지기 시작해 변기가 가득 찼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침에 그녀에게 말했더니 복권부터 사야겠다고 했다. 나이 먹으면 이곳저곳 몸이 하나 둘 고장이 나기 마련인데 수년 전 장(腸)에 탈이 났다. 이 병은 참 불편한 병이다. 어디 팔다리가 부러지면 깁스를 하고 표 내며 다닐 수 있지만 속병이니 꺼내 치료할 수도 없고, 혼자 끙끙 앓는 수밖에 없다. 어디를 가더라도 화장실을 먼저 눈으로 찾아 두는 슬픈 습관을 갖게 되었다. 병 때문에 꿈도 슬픈 꿈을 꾸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아바이 마을로 아침식사를 하러 갔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 사이로 한 사람만 간신히 다닐 수 있는 골목길이 있고, 앞쪽에는 순대국밥 집들이 화려한 색칠을 한 그림문자로 호객하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집을 찾아 골목 뒤로 돌아가니 규모가 제법 컸다. 입구 쪽에는 두 테이블에서 건장한 문신 청년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고,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노부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은 말없이 아무도 방해받지 않는 가운데 테이블에 앉았다. 지금까지 먹었던 국물 맛이 좀 달랐다. 이북 음식 맛인가? 이곳은 육이오 전쟁 때 피난 온 북한 사람들이 금방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잠시 자리 잡았다 분단이 고착화되면서 주저앉아 삶을 일군 곳이었다.

그는 얼마 전 읽은 ‘청호동에 가본 적이 있는지’란 시가 떠올랐다.


혹시 청호동에 가 본 적이 있는지

집집마다 걸려있는 오징어를 본 적이 있는지

오징어 배를 가르면
원산이나 청진의 아침햇살이

퍼들쩍거리며 튀어 오르는 걸 본 적이 있는지

그 납작한 몸뚱이 속의
춤추는 동해를 떠 올리거나

통통배 연기 자욱하던 갯배 머리를 생각할 수 있는지
눈 내리는 함경도를 상상할 수 있는지

우리나라 오징어 속에는 소줏집이 들앉았고

우리들 삶이 보편적인 안주라는 건 다 아시겠지만

마흔 해가 넘도록
오징어 배를 가르는 사람들의 고향을 아는지

그 청호동이라는 떠도는 섬 깊이
수장당한 어부들을 보았거나

신포 과부들의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는지
누가 청호동에 와

새끼줄에 거꾸로 매달린 오징어를 보며

납작할 대로 납작해진 한반도를 상상한 적은 없는지

혹시 청호동을 아는지


이상국 - 시집 <집은 아직 따뜻하다> (창작과 비평사, 1998)


눈 내리는 함경도를 상상하고, 고향의 아침햇살을 그리워하고, 분단고착으로 납작할 대로 납작해진 자신이 밟고 있는 이 땅 사람들의 애달픈 삶과 민족의 비운을 투박하고 때론 섬세하게 노래하는 시인들은 위대하다. 시인들은 말의 화가다. 얼마쯤 깊어야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그는 시인을 부러워했다.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좋은 글을 쓰지 못했다.

이국 맛이 느껴지는 국물로 배를 채우고 작은 길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사들고 잠시 바닷가에 섰다. 왼쪽으로 저 멀리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가 마주한 방파제가 바다를 열고, 청호교의 아치 밑으로 설악산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설악이 가까워질수록 창밖에서 스며 들어오는 산 기운이 남달랐다. 창문을 여니 여름날 찬물에 샤워한 것 같은 시원하고 상쾌한 기운이 폐부 깊숙이 들어왔다.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꽤 많았다. 케이블카로 설악을 손쉽게 올랐다.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그녀는 얼굴이 상기될 만큼 좋아했다. 산속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과 장엄하고 웅장한 설악의 풍경에 모든 시름을 잠시 잊기에 충분했다. 첫날 호텔에서 느꼈던 실망감이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조급함을 자신도 모르게 내려놓았다. 산등성이에서 바람처럼 다가온 감동은 신선했다. 장엄하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몸을 새롭게 해 주었다.

귀가 길에서도 한 번 더 감탄했다. 새로 난 양양고속도로의 인제터널은 길이가 11km에 깊이가 550m로 백두대간 땅속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사람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일까? 그 상상력에 감탄해서 그는 그녀에게 이런 상상을 하고 실천한 사람들의 노고에 박수 한 번 쳐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가 해말게 웃으며 환호성과 함께 손뼉을 쳤다. 짝짝짝짝!!!!


마주치는 많은 것들이 생소해서 신비롭고, 용기 내서 떠나기만 하면 새로운 기운을 얻어 돌아오는 여행은 옹달샘 같은 것이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설 때 머릿속 한편에 작은 감동들이 차곡차곡 갈무리되었다. 또다시 시작되는 그에게 일상이 새롭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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