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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벽우 김영래 Nov 21. 2022

천 년 고목 은행나무 아래로 가자

마음이 불안하고, 채우지 못한 욕심을 비우기엔 그만한 곳이 없다

  가을에 노랑을 빼고 얘기하긴 어렵다. 가을의 처음도 끝도 노랑이다. 은행나무 가로수에 노란 단풍이 물들면 가을이 온 것이고, 나무 아래 소복하게  쌓인 은행잎을 보면 가을이 가고 새로운 계절이 다가옴을 알 수 있다. 

  날씨는 더욱 차가워지지만 단풍잎에 노란 바이러스처럼 퍼지는 햇살은 따뜻하고 포근하다. 가을이 좋은 이유는 노랑이 있어서다. 가을은 노랗게 왔다, 노랗게 간다.  


  11월 첫 일요일 아침 일찍 부모님 댁에 가려고 서둘러 집을 나섰는데 한산한 길엔 옅은 안개가 껴 다소 무거운 듯 정적이 흐르는 깊은 호수 속처럼 고요했다. 신호등에 멈춰 섰는데 어제까지도 풍성하게 노란 단풍을 자랑하던 은행잎이 나무 아래 눈처럼 고요하게 내려 소복하게 쌓여있었다.

몇 잎 남지 않은 것들도 소리 없이 낙화하고 있었다. 한 점 바람도 없는데 고요하고 무심하게 내려앉는 잎새를 보고 있자니 왠지 울컥하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듯했다. 한 계절이 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강원도 영월군 하송리 은행나무

  지난주엔 영월 하송리 은행나무에 다녀왔고, 지난해 여름과 겨울엔 안동 봉정사에서 천 년 고목, 은행나무를 보았다. 영주 소수서원에도 위엄한 자태로 당당히 선 은행나무가 있다. 그리고 친구가 SNS에 올린 용문사 은행나무 사진을 보고 내 주변 가까이에 있는 것들을 검색하니 가까운 곳 원주 문막에 은행나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경북 안동시 봉정사 은행나무


  일요일 오후 반계리 은행나무 아래서 따뜻한 커피 한 잔 하며 가을을 보내고 싶어졌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차들이 많아졌다. 간신히 초등학교에 마련된 임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인파 속에 묻혀 마을길을 걸어갔다.

  저 멀리 노란 풍경이 보여야 하는데 썰렁한 게 아무래도 아침에 본 은행나무처럼 낙엽이 다 져버린 것만 같았다. 야트막한 지붕이 있는 주택을 돌아 서자  탁 트인 벌판에 잎 하나 남김없이 다 떨꾼 채 허허롭게 우뚝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블로그에서 하늘을 가득 채운 노란 단풍이 가득한 나무를 기대했지만 이미 시간은 지나 버린 뒤였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천 년의 세월만큼 살아온 거대한 은행나무가 눈에 가득 차게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경이로웠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 가려서 보이지 않던 노란 은행잎도 융단처럼 깔려 있었다.


원주 반계리 노란 융단이 깔린 듯 잎이 진 은행나무 


 백 년도 살지 못하는 사람에게 천 년은 이렇게 경이로운 모습이구나. 무심하지만 장엄하게 말없이 시간 속에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 사람을 압도하는 자태. 화려하지 않게 오롯이 날것으로 제 모습을 부끄럼 없이 다 보여주며 묵묵히 서 있는 자체만으로도 탄성을 자아내며 감동을 주어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단풍 예쁜 노란 은행나무 가로수 길이 많지만 잎이 진 썰렁한 풍경이라도 이 계절이 가기 전에 그곳에 가려는 발걸음이 분주한 이유가 이 때문이구나.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 은행나무


  천 년 은행나무 아래에 서니 이유 없이 경건해졌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거대함에 압도당했고,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삶을 살아온 시간에 대한 경외감 때문인 듯했다. 몸과 마음이 겸손 모드로 자동 반응했다. 


  아래로 내려다보면 난 지금까지 잘 살고 있는 편인데, 가끔 올려다보는 삶에 욕심을 내고 뭔가 채우지 못한 것에 대한 불안과 우울감으로 문득문득 힘들어하곤 했는데 그 앞에 서니 뒤섞인 마음들이 씻은 듯 사라지고 편안해졌다. 천 년 고목 아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뭘 해야겠다는 의욕도 없이 진정제를 맞은 것처럼 고요해졌다. 오래 머물수록 약효는 지속되었다.   



심장 떨어질 듯

노랑 그리움 뚝뚝 떨구는

천 년 고목 아래 서서

두 팔 벌려 크게 숨 한 번 들이쉬면

10월처럼 노랗게 물든 

나를 만나게 된다.


  그 앞에서 이유 없이 엄숙해지고, 숙연해지면서 이미 이곳을 찾은 나와 너의 목적은 달성된 듯싶었다. 나의 존재가 한없이 가냘프고, 미미하다는 것을 스스로 깨우쳐 겸손하게 만들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으로. 나의 작은 욕심에서 비롯되는 불안이나 불만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은행나무는 존재 자체로 증명하고 깨우쳐 주고 있지 않은가. 


  세상 무너질 듯한 기우는 한낮 천 년 나무 앞에 떨어진 노란 잎새 한 장 같은 것이거늘.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 은행나무


  내친김에 마음을 다져 누르고, 그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 가까이 있는 신륵사로 향했다. 우연찮게 660년 세월 동안 한강을 마주하며 살고 있는 은행나무를 또 만났고, 같은 가르침을 받았다. 게다가 신기하게 관음보살상의 고사목까지 품고 있었다.


신륵사 은행나무 사이 고사목이 관세음보살을 연상케 하는 모습


  마음이 뒤섞이고 바람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거나 불안하면 가까운 은행나무 고목 아래로 달려가자. 그곳에 서는 것만으로도 종교처럼 평안을 얻을 수 있고, 스스로 겸손해지며 잊고 있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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