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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래 Nov 22. 2023

영실(靈室);별곡

한라산 영실 등반기

1.

세상만사 진귀하고 경이로움 많다 한들 한라 영실에 비할쏘냐. 

병풍바위 오백나한 기암괴석 선작지왓 고산평원 윗세오름 

기가 막힌 자연경관 석가모니 제자들과 오백장군 설화전설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 불고 안개 끼고 날 저물고 어둡고

갑자기 무릎관절 허리통증 족저근막염에 오십견, 손가락 부상이 무슨 상관

내려올 걸 왜 오르냐? 바다가 더 좋다고 저질체력 의지부족 

핑계 없는 무덤 없다 찾다 보니 몸 안 아픈 곳이 없네. 

안 가고 싶으니 못 갈 이유 수 백가지가 넘는구나. 


그래도 한 번은 더 올라가서 위풍당당한 자태 보며 

힘들고 고단한 세상시름 덜어내고 맑은 기운 가득 채워 

새롭게 살아갈 용기를 얻어볼까.


2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천백고지 안갯속을 순식간에 지나가서

영실입구 당도하니 주차차량 빼곡한데 등산객은 간곳없어

해돋이를 보러 갔나 새벽 일찍 벌써 다들 올라갔네.

소나무숲 영실계곡 터벅터벅 걷다 보니, 어느새 오르막길

투명한 아침햇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적에 

고개 들어 앞을 보니 저 멀리 병풍바위 제 위용을 자랑한다.


한 걸음 한 걸음 차곡차곡 고도를 높여가니

깎아 세운 절벽이 병풍을 둘러친 듯 아찔하게 서 있구나,

산 능선 위 여기저기 고요하게 정진수련하는 

부처님 제자들의 오백나한 불상들이 준엄하고 엄숙하다.

 

쉼터에서 숨 한번 크게 쉬고 뒤를 돌아 내려보니 뿌연 안갯속에 

한 눈에는 어림없어 광대무변 제주바다 흰 융단구름 푸른 하늘

크고 작고 둥그스름 각양각색 오름들과 송악산 산방산 마라도 가파도 

서귀포 해안절경 어렴풋이 보이는데 어디가 바다고, 어디가 하늘인가?

벅찬 가슴 거친 숨결 감탄이 절로 난다.

3. 

구상나무 주목들이 살아천 년 죽어천 년 고고하게 푸르다가 

벌거벗은 흰 가지가 고단하고 애처로운 고사목들

만화방창 5월 봄엔 연분홍빛 털진달래 꽃잔치가 요란하고 

흰 눈 속에서도 푸른 절개 조리대가 옹기종기 모여사네.

선작지왓 돌무덤을 지나면서 구상나무 가지사이 

영화 속 예고처럼 언듯언듯 거무스름 암봉이 보이더니

마지막 구상나무 돌아서니 클라이맥스처럼 등장하는  

광활한 고산평원이 수 만리에 펼쳐있고,   

저 멀리 백록담을 품고 있는 한라산이 우뚝하다.


천지에 이런 풍경 어디에 또 있을까 눈물이 날 것 같은 감동이 밀려온다

경이롭고 이국적인 자연경관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구나. 

넓은 데 엄숙하고 높은데 온화하며 장엄한데 겸손하고 단아한 듯 화려하니 

한라는 어찌 이리 세상을 다 품은 듯 따뜻하고 다정한가.  

 

한 걸음 걷다 쳐다 보고 또 한 걸음 걷다 바라본다.

발 디딘 이곳이 내 나라 내 땅인 게 벅차게 고마운 적이 언제 또 있었던가.

전망대서 내려보고 올려보고 고개 돌려 왼쪽보고 오른쪽을 쳐다봐도

사방팔방이 선계인 듯 신비롭고 신성하다.

4. 

윗세오름 남벽까지 한라산은 시시각각 제 모습을 달리하고

갈 때 본 풍경과 돌아올 때 사뭇 다른 제 모양이 이채롭다.

조리대가 융단처럼 깔린 능선은 여인의 품처럼 포근하고

우뚝 솟은 기암괴석 추상같은 장군 기상 닮아있다.  

 

멋진 풍경 사진 찍고, 돌아서면 더 좋은 곳 나타나고

한 백 장쯤 찍었으나 버릴 게 하나 없이 감동까지 담겨있네.  

수고한 나를 위해 노루샘물 한 바가지 피로가 다 사라지고

하산길 아쉬운 발걸음에 보고 또 보며 가슴에 새긴다. 

5. 

소백 설악 오대 지리 수 만 곳이 제 자태를 뽐내지만 

가슴 벅찬 감동과 아름답고 황홀했던 기억이 두고두고 떠오르니  

아마도 이번 생의 으뜸은 한라 영실 말고 어디가 또 이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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