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복은 몸을 경직되게 만든다. 반대로 사복을 입으면 비싸지 않아도 왠지 편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몸이 먼저 안다.
출장이 있는 날이면 아침부터 그냥 사복을 입는다. 한 두서너 시간 있다 다시 사복으로 갈아입기가 귀찮아 그냥 출근복장으로 있으면 몸이 가볍고 편안하다. 여기서 사복은 제복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근무 시에 입는 규정된 복장이 아니라 전혀 신분이 노출되지 않는 그야말로 개인적인 복장이다. 사무실에 있는 시간이 집에 있는 시간보다 더 많다 보니 옷 사 입을 일도 많지 않다. 옷 값이 덜 들어가서 좋긴 하지만 집안 행사나 모임 등에 갈 땐 "오늘 뭐 입지?"하고 고민을 해야 하기도 한다.
늘 제복에 몸이 맞춰져 있어서 그런지 한 20년을 넘게 제복만 입다 보니 당연한 듯하면서도 어쩌다 사무실에서 사복을 입고 있는 게 너무 편안하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동료들과 다르게 있다는 어색함 빼고는 너무 좋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니 퇴직이 가까워지긴 했나 보다.
며칠 전 한 해 선배가 명퇴를 했다. 몇 년 빨리 신청을 해서 나가는 것이었지만 나도 벌써 퇴직이 가까워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료직원들이 모여서 꽃다발도 전해주고 박수라도 치려고 했더니 그러면 그냥 간다고 막무가내로 거절을 해서 겨우 차 한 잔 마시고 사무실을 나갔다.
문득 퇴직 이후의 일과를 상상해 보았다. 아침에 일어나 당장 어디 갈 곳이 없으니 뭐부터 할까? 집안 청소하고 아내와 뒷산 약수터를 가야지. 점심은 또 뭘 먹지? 오후엔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서 책 읽고, 글쓰기를 하면 지금처럼 빡빡한 일정에 쫓기지 않아도 되고. 좋겠다. 제복 입을 일도 없고,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고 가고 싶은 곳 가고, 여행도 실컷 해야지. 뒤죽박죽이지만 온갖 생각들이 비눗방울처럼 떠다녔다.
그러다 갑자기 그렇게 사는 게 가능은 할까? 기대와 걱정이 교차하는 상상 사이에서 생각하는 시간이 잦아졌다. 정말 하고 싶은 게 있기는 한데 시간이 맞아 줄지. 주변 환경이 나를 가만히 놓아 줄 지하는 걱정이 꼬리를 물기도 한다.
아내가 하는 공부방 정리하면 그곳에 근사하게 카페처럼 꾸며 책도 읽고, 영화도 보면서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여행을 다니려면 구피 어항은 정리를 좀 해야겠고, 화분은 물 자주 안 줘도 되는 놈들도 몇 개 선별해서 키우면 될 것이다.
저질체력의 아내를 훈련시켜야 같이 여행을 다닐 텐데 좋은 프로그램을 짜줘도 말을 듣지 않는다. 병원에 더 자주 다니는 내가 걱정이란다.
자질구레한 행사와 의전으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퇴근시간 땡치면서 갈아입은 사복이 너무 편해 순간 별별 생각을 다 해봤다.
현장활동이 꽤 보람찼었던 적도 있었다. 그을음 묻은 내 손을 잡고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받을 땐 제복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살깧에 소름이 돋고 등골이 오싹하는 위험을 느낄 때도 있지만 이 맛에 소방관 하는 거지 하는 자부심이 가득할 때도 있었다.
때론 빈 손이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손 내밀지 못한 자책으로 괴로워하고, 손가락질받을 때는 어디 한 구석이라도 제복 티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고, 차에 붙인 작은 스티커도 떼어내고, 소셜미디어에 발길을 끊어야 했던 때도 있었다.
수많은 사연이 있는 제복은 빨래를 해도 씻겨지지 않는 얼룩처럼 남아, 입을 때마다 자부심과 긍지, 실패의 부끄러움이 함께 덩어리 져 어깨 위로 올라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