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황을 남과 바꿔 생각하기가 쉬운가?
세상에 있는 말 중에서 생각하기도 실천하기도 어려운 말이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아닌가 싶다. 내가 서 있는 위치를 남과 바꿔서 생각하기가 어찌 쉽겠는가? 남의 심장병보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더 아프다는 말이 남의 처지를 내 것과 바꾸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해주고 있다.
역지사지는 소방관이나 경찰관에게 더없이 실감 나게 다가오는 말이다. 긴급상황을 맞이하는 상황이 늘 비슷하다. 위급한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 속에는 언제나 다급함이 쏟아진다. 심지어는 고함과 욕설도 있다. 출동지령 방송을 듣는 순간부터 소방관들의 심장도 쿵쾅거리며 다급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때부터는 현장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도착하기 위해 머릿속은 고요한 호수에 일순간 파문이 일듯 출렁거리기 시작한다.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길을 제일 먼저 생각한다. 같이 나서는 동료들과 상의도 하고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기 위해 주소를 입력한다. 또 신고자에게 전화를 걸어 위치를 다시 확인한다. 그럴 때면 신고자는 야속하다는 듯이 빨리 오지 않고 왜 전화만 해대는냐며 타박 하지만 그게 더 빨리 가는 길임을 설명하기도 바쁘다.
길을 나서도 상황은 녹녹지 않다. 앞서가는 차량에 양보를 호소하며 클랙슨도 울려보고 교차로에선 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신호봉을 흔들며 양보를 유도한다. 하지만 중앙 분리대가 설치된 곳에선 댐 앞에 갇힌 물처럼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맨 앞차가 센스 있게 움직여 틈을 만들어주면 좋으련만 묵묵부답이면 도무지 방법이 없다. 소방차 바로 앞차가 어찌해보려고 움직여도 소용없다. 단 1cm라도 함께 움직이지 않으면 움직일 재주가 없다. 일분일초가 급한 소방관을 실은 소방차는 사탕 달라고 조르는 아이처럼 “엥~엥~”하며 사이렌만 애닮 게 울릴 뿐이다.
시내권에서 발생한 위급상황은 대략 5분 전후로 도착하지만 시외지역은 10여분에서 2-30여분이 넘게 걸리는 곳도 있다. 이때의 안타까움이란 소방차 안에 앉아 보지 않고는 절대 모를 것이다.
조급증을 내며 달려간 현장엔 더 아픈 맘들이 기다리고 있다. 소방관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도착부터 쏟아지는 비난과 원성은 소방차의 엔진 소리와 주변의 소음 속에서도 또렷하게 가슴을 후벼 파듯 들려온다.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신고한 지가 언젠데 이제 오느냐?’, ‘내가 신고한 지 한 시간이 넘었다’는 말이다. 일분일초라도 더 빨리 도착하기 위해 졸였던 맘에 나는 생채기는 꽤 크다. 하지만 원망과 질책에 변명할 시간도 없다.
며칠 전 늦은 저녁시간 도시 외곽지역 주택에서 발생한 화재현장에 출동했다. 진눈깨비가 내리는 가운데 옷도 챙겨 입지 못한 70대 노부부가 잠을 자던 중 불을 피해 밖으로 뛰쳐나와 있었다. 지휘차가 좀 더 일찍 도착했고, 덩치가 큰 펌프차가 좁은 골목길을 간신히 헤쳐 나와 미쳐 멈추지도 않았는데 펌프를 조작하는 촌각도 기다리지 못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빨리 좀 꺼라. 왜 이렇게 꿈 뜨냐? ”
“신고한 지 30분이 지났는데, 왜 이제 왔느냐!.”
“저기부터 꺼라! 여기 불을 꺼라!”
스마트한 세상에서 듣는 가장 원시적인 비난이며 불만이다. 불을 끄는 스트레스보다 훨씬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애써 무시하다 어느 정도 화재가 정리되고, 상황이 진정되면 전화기의 통화시간과 출동지령 시간, 도착한 시간을 비교하면서 설명해주면 그때서야 어느 정도 인정을 한다.
주변의 구경꾼들도 각자 지휘관이 되어 이곳을 먼저 꺼라, 저곳에도 소방관을 보내야 한다는 등 나름대로 지시를 한다. 결과가 좋게 나오면 다행이지만, 결과가 나쁘면 온통 허물투성이의 활동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관점에서 소방관이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또 건물 내부로 진입해 활동하는 대원들은 보이지 않기에 도대체 소방관들은 뭘 하느냐고 항의를 하기도 한다. 밖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없으면 소방활동을 안 하는 줄 오해를 한다. 요즘은 현장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촬영해서 인터넷에 올리거나 언론사에 제보를 한다. 신문, 방송에 나오는 제목은 ‘화재현장에서 소방관들 우왕좌왕’ 또는 ‘화재현장 대처 미흡으로 피해 키워’ 등등. 때맞춰 뭔가 큰 잘못이 있는 양상으로 여론이 어이없게 흘러간다. 급기야는 상급부서의 감찰과 각종 사실조사를 받게 되고, 칼춤을 추는 여론에 무거운 방화복을 입고 정신없이 뛰느라 땀으로 범벅되어 축 쳐진 몸보다 어이없는 현실에 소방관은 기운이 빠진다.
현장을 대하는 소방관은 누구라도 주인만큼 다급하다. 가만히 있는 듯 보여도 현재의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애쓰고, 맘 졸이며 그 시간을 초 긴장상태로 보내고 있는 것이다. 결과가 어찌 됐든 상황이 종료되면 모든 기운이 빠져나간 듯 넋이 나가고 허탈해지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사고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 신고를 한 후 소방차를 기다리는 시간은 아마도 일각(一刻)이 여삼추(如三秋) 일 것이다. 전화를 끊은 지 채 일분도 지나지 않아 소방차가 오는 길목만 처다 보고, 사이렌 소리만 기다린다. 심지어 비번인 소방관도 119 신고하고 소방차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다고 느낄 정도니 일반인들이야 말해 무엇하랴.
소방관은 늘 각각의 당신을 향해 있지 오직 당신만이 사고를 당하거나 오직 당신만이 아픈가를 살피며 대기할 수는 없다. 모두를 향해 있기에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다. 당신이 있는 곳의 상황을 당신처럼 알지 못한다. 당신을 찾아갈 길도 당신만큼 알지 못한다. 더 아쉽고 안타까운 건 소방관은 슈퍼맨이 아니기 때문에 날아서 가지 못하고 무거운 장애물도 한 손으로 번쩍 들어 올리지 못한다. 소방관이 현장에 도착하면 불이 스스로 꺼지고, 아픈 통증을 순식간에 가라앉히지 못한다. 그들도 여러분 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들도 아프고, 힘들고, 지치고, 땀 흘리고, 배고프고, 상처 받는다. 또한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하는 경제인이다.
그런데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은 다른 직업인보다는 사명감이나 의무감이 조금은 높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지금까지 만나본 거의 대다수 소방관들이 그렇다. 그러니 소방관이 늦장을 부리는 일은 단연코 없다. 출동 지령이 떨어지면 샤워를 하다가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도 득달같이 차에 뛰어 올라타야 하는 숙명을 가진 사람들이 소방관이다. 혹여라도 그 대원이 차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소방차는 신고 접수 후 출동지령과 함께 달려간다.
왜냐하면 당신이 급한 만큼 소방관도 급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