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산 삭감 이후의 수습책, 보건의료기술진흥법 개정안
관료제에 의존한 대형 정책사고, R&D 예산 삭감
일반적으로 선거를 앞둔 시기에는 정부예산을 깎아버리는 것은 전략상 좋은 선택지는 아니다. 정치학 연구에서도 선거를 앞둔 시기에는 정부가 경기부양책을 통해 경기를 부양한다는 정치적 경기순환론(Political Business Cycle)이라는 이론도 있을 정도로 선거를 앞둔 기간엔 돈을 푸는 것이 정치적으로 유리하다.
그런데 윤석열정부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여소야대 국회를 해소할 수 있는 국회의원선거를 앞둔 국면에서도 재정건전성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짐작컨대, 정책적인 부분에 대해서 기획재정부 관료출신에 지나치게 의존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그 과정에서 대형 정책적 사고가 발생했다. 정부가 제출한 2024년도 예산안에서 예년 대비 R&D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이다. R&D 예산의 삭감은 당장 국가의 미래를 위한 기술발전에 대한 투자를 줄인다는 당위적 비판을 넘어, 안 그래도 열악한 연구자들의 생계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정책이었고, 정치적으로는 스윙지역으로 분류되는, 연구단지가 집중된 대전을 비롯한 충청권이 정부여당에 등을 돌리게 하는 정치적 판단 미스였다.
쏟아진 물이라도 주워 담아야
이러한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되자 야당이 공세를 퍼부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카이스트에서는 대통령을 향해 비판적 발언을 쏟아낸 대학원생을 경호원들이 입을 틀어막아 끌어낸 '입틀막' 사건까지 벌어졌다. 그냥 손 놓고 있다가는 연구자 전체는 물론이고, 지역적으로 매우 중요한 충청권 민심을 모두 잃을 판국이었다.
거기에 대통령은 당시 R&D 예산 삭감 조치에 대해서 '국가가 다 해줄 수는 없다'고 발언하며 이미 뜨거웠던 논란을 증폭시켰다.
당에서는 급히 정책위원회 의장 주관으로 젊은 연구자들을 불러 간담회를 개최했다. 당연히 쓴소리가 이어졌다. 아울러, 원내지도부는 부랴부랴 다시 살릴 수 있는 R&D 예산 항목은 국회 심의과정에서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의원실에서도 이런 당의 기조에 발맞추기 위한 대책을 모색했다. 다행인지 대학원 시절 당시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해 준 장학금을 함께 지원받은 젊은 연구자 커뮤니티에 몸을 담고 있었던지라 의원실 차원에서 당의 간담회 이후 '보건복지 분야 R&D 활성화'를 주제로 하는 정책간담회를 발 빠르게 기획하고, 여기에 참석해 줄 보건복지 분야 젊은 연구자들을 섭외할 수 있었다.
간담회 이후 간담회에서 나온 내용을 중심으로 보건복지부 담당 과장과 협의하여 보건의료 분야 R&D 활성화를 촉진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했다.
법안의 골자는 국가 정책적으로 중요성과 시급성이 높은 보건의료기술 연구개발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 선정/조사 기간 등에 대해 예외를 적용하고, 의료기관 소속 의료인력의 국가연구개발사업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진료를 줄이고 정부 지원 연구개발에 전념한 시간에 대해 국가 연구개발비로 보상받을 수 있도록 연구개발비 사용기준에 대한 특례 마련. 그리고 보건의료기술개발 보호·육성을 위한 정부의 책무에 의사과학자 등 전문인력 육성을 위한 정책 및 비용 지원 근거 마련 등이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비교적 빠르게 당의 기조에 맞춘 의원실 차원의 후속조치를 했고, 그게 맞춘 법안을 입안하여 발의하고, 그 법안은 주요 경제지 1면을 장식하는 등 의원실 차원에서는 소기의 성과는 있었지만 큰 흐름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국회 심의를 거치는 과정에서도 삭감된 R&D 예산의 상당 부분은 복원되지 못했고, 앞서 언급한 젊은 연구자 커뮤니티 친목모임에 나갔을 때는 당을 대표해서 욕을 먹기도 했었다.
정부에서도 뒤늦게 총선을 한 달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2025년도에는 R&D 예산을 확대할 것이라는 발표를 했지만 여론의 흐름을 돌릴 수는 없었다.
총선 당시 야당 대표가 카이스트에서 사전투표를 하며 R&D예산 삭감+입틀막 사건 부각+충청권 민심 잡기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는 묘수를 둘 정도로 R&D 삭감은 정부여당 총선 패배의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관료제의 기계적 판단에 의해 민심이반이 발생하면, 선거전문가 집단인 정당은 간담회, 입법 등을 통해 즉각 반응한다. 그런데 때로는 정당이 아무리 수습하려고 해도 쏟아진 물을 주워 담을 수 없는 상황도 있고, R&D 예산 삭감 사태가 바로 그런 예에 해당한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