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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경 Aug 20. 2024

응급실은 춥다.

여름에도 서늘한 곳

응급실이었다. 여러 가지 검사를 위한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대사관에서는 이런저런 서류에 자꾸 싸인해서 팩스로 보내라고 한다. 여긴 응급실이고 지금은 응급 상황인데 지금 반드시 그 서류가 필요한지 묻다가 같은 말만 되풀이하길래 차라리 방법을 찾아보자 해서 병원데스크에 문의했다. 다행히 서류를 작성해 오면 팩스를 보내주신다고 했다.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기나 하고 싸인을 받으라는 건지 모르겠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사람에게 싸인이라니. D의 손을 같이 쥐고 어렵게 줄을 긋다시피 한 싸인인 것도 싸인이 아닌 것도 같은 것을 적어서 팩스를 보냈다. 나는 대사관에서 최소 한 명이라도 보내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크나큰 착각이었다. 보내줄 인력이 없을뿐더러 애초에 보낼 생각도 없었다. 만약 오늘 밤 돌아가시면 어떡할 거냐고 소리를 쳐봤자 돌아오는 건 서류작성과 싸인과 미국 가족들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말뿐이었다. 정말 소름 끼치게 실망스러운 대처였다. D는 침대에서 떨고 있었다. 발음도 부정확하다. 무언가를 응시하고 자꾸 잠을 자고 싶다고 한다. 잠을 자고 싶다는 말이 피곤하다는 것인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인지 매우 혼란스러웠다. 주인집 아저씨가 보내준 루크 사진을 보자 그제야 희미하게 웃는다. 빨리 일어나서 가르치던 아이들을 만나러 가자. 너의 베이비들도 빨리 만나고 싶지 않냐. 그러니까 힘을 내라. 등등 말을 계속했다. 응급실에서 병실로 가려면 자리가 나야 하는데 아직도 자리가 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언제 들어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의사는 아까부터 가망이 없다고 오늘내일 돌아가신다고 자꾸 그렇게만 말한다. 의사들은 왜 전부 다정함이라곤 없는 것일까. 나도 아이들을 돌봐야 했기에 D에게 다시 돌아올게라는 말을 하고 간호사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너무 불안하고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미국에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하고 빠른 시일 내에 한국으로 올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전해본다. D의 여동생 E는 얼마 전까지 항암치료를 했다고 했다. 상황이 좋지 않아 장거리 여행이 가능할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많은 형제자매들이 있지만, 지금은 E 하고만 연락하고 지내는 것 같았다. 언젠가 D가 조카 얘기도 했었는데 바로 E의 딸이라는 것을 지금 알게 되었다. 함께 일하고 알고 지낸 세월이 꽤 길었는데 오늘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 많다.      


그날 새벽 응급실을 떠나 응급중환자실로 간다고 연락이 왔다. 다행이다. 그곳에서 집중 치료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어제 늦은 밤부터 반응이 없다고 했다. 걱정되었다. 다음날 가보려고 했는데 어제 결근한 이후로 일이 쌓여있었고 지쳤고 또 갈 수 있는 날이 있겠지. 생각이 들어가지 않았다.      


다음날부터는 D는 정말 아무 반응이 없다고 했다. 응급중환자실은 면회가 제한되어 갈 수도 없다. 매일 전화로 그녀의 상태를 확인해 미국의 가족들에게 알려주었다. 희망적인 내용은 별로 없었다. 새벽, 전화가 울렸다. 심장이 또다시 쿵. 손이 떨렸다. 여보세요. 오늘을 정말 넘기기 힘드실 것 같아요. 원래는 면회가 되지 않는데 오시겠어요. 재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어떻게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계속 생각하다가 수녀님께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되지 않았다. 불안했다. 친구 H에게 전화했다. 불안한 마음을 많이 달래주고 괜찮다 얘기해 주었다. 조금 괜찮아졌다. 응급중환자실로 가는 길은 조금 복잡했다. 병원에만 오면 더욱 길치가 되어버리는 것 같다. 겨우 찾아간 곳은 웅웅웅 기계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고 삐……. 하는 음이 들리는 것도 같은 차가운 곳이었다. 여름이었는데도 왜 이렇게 춥던지. 벨을 누르니 간호사가 나왔다. D의 침대로 가기 전까지 다른 환자분들을 거쳐 가야만 했다. 대부분 의식이 없는 것 같았다. 아니면 의식이 있지만 자는 것일까. D를 마주했다. 눈을 감고 있었고 온몸은 퉁퉁 부어있었다. 패혈증이 왔다고 했던가. 소변을 잘 보지 못하다고 했던가. 정말 아무런 의식이 없이 보였다. 그래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E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할 수 있도록 했다. 의사의 말로는 정말 오늘이나 내일 돌아가실 것 같다고 한다. 산소호흡기를 해야 할 것 같다고도 하신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삶의 의지에 관해 이야기하고 빨리 회복해서 강아지들 산책도 시키고 싶다고 했는데 믿어지지 않는다. 돌아 나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며칠 전에 D를 방문했을 때 웃옷을 벗고 있었고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음식만 받아서 들어갔다. 강아지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소리치는 소리가 문밖으로 들렸다. 이상했지만 발걸음을 돌렸다.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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