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혜경 Aug 27. 2024

이상한 징후들

전화가 왔다. 

되돌아보면 더 며칠 전에 배가 너무 아프다고 아침 일찍 문자가 왔었다. 그날은 촬영 약속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에 괜찮으면 다음에 가자고 했는데 너무 아프다고 했다. 그래서 촬영 약속을 취소하고 병원에 함께 갔다. 나에게는 그날 촬영이 중요했기 때문에 약속이 미뤄진 것이 속상했다. 하지만 D가 너무 아파했고 함께 할 사람이 없어서 그 마음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의사는 암 덩어리가 너무 커서 장기를 누르고 있고 그것들이 배변을 원활하게 하지 못한다고 사실은 해줄 것이 없지만 관장이라도 해줄까 해서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관장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거동이 많이 불편했고 처음 하는지 D도 힘들어했다. 간호사 한 분이 영어를 능숙하게 매우 잘하셔서 설명을 잘해주시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셨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관장은 실패했고 D는 병원에 불만을 표시했다. 입원이라도 시켜달라고 했지만, 병원에서는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만 했다. 나도 하는 수 없이 약만 처방받고 집으로 운전해서 오는 길에 D가 지금 어디 가느냐고 해서 home이라고 했는데 그때부터 기분이 상당히 안 좋아 보였다. 집에 내려주었는데 인사도 안 하고 들어가 버린다. 아파서 그런가 보다 하고 나도 그냥 돌아왔다. 그다음부터 전화하면 잘 받지 않았고 매우 불친절하게 받았다. 매일 죽을 사서 가져다 드리고 샐러드나 주스도 사다 드리곤 했는데 다 싫다 안 먹겠다. 전화도 하지 마라. 이런 얘기들을 자주 했다. 속상했다. 서울의 박 선생님은 항암치료의 부작용으로 감정이 평온하지 못할 수 있으니 이해하라고 하시며 또 그럴 때는 전화를 하지 말고 시간을 주라고 하신다. 하지만 걱정이 되어 거칠게 말할 것을 알면서도 전화는 매일 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연락이 잘 안 되었다.        


서울의 박 선생님께서 암 환자들의 심리를 돌봐주시는 분을 수소문해서 알아보셨다고 한다. D를 만나러 오실 수도 있다고 하니 반가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D는 지금 의식이 없는데 가능할까. 또다시 암담하다. 매일 오전과 오후에 중환자실로 전화를 해서 상태를 물어본다. 그런데 오늘 오전에 눈을 떴다고 한다. 나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물어보았다. 희망을 가져도 되는 건지...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렇지 않았다. 일시적인 반사 현상이라고 한다. 그것이 의식이 돌아왔다는 의학적인 증거는 되지 못한다고 한다. 절망적이다. 언제쯤 깨어날 수 있을까요. 현재로서는 가망이 없어요. 아마 오늘이나 내일쯤에는 산소호흡기를 달아야 할 것 같아요. 미국의 가족에게 전했지만, 한국에 오기까지 얼마나 힘든지만 계속 얘기할 뿐이다. 어떡하지, 정말 돌아가시면 어떡하지. 산소호흡기를 하셔야 할 것 같아요. 동의하시는 거죠. 네 해주세요. 이 말은 정말 오늘을 넘기기 힘들다는 얘기인데……. 불안함이 극에 달한다. 하루만 빨리 119에 신고했으면 상황이 좋아졌을까. 내가 매일 같이 밥을 먹었더라면 D의 기분이 좋아졌을까. 내가 좀 더 친절하게 대해야 했는데 왜 그러지 못했을까. 항암치료를 받으면 심리적으로 힘들어 나도 모르게 거칠게 얘기하거나 반응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나는 왜 그때 잘 대처하지 못했을까. 응급실에 있을 때 한 번 더 가볼걸. 후회되었다. 새벽에 전화가 울렸다. 호흡이 안 되어 CPR 들어갑니다. 뚝. 빨리 옷을 갈아입고 미국에 연락을 취한다. 가족들과 함께 병원으로 향한다. 가는 도중에 전화가 왔다. 

이전 02화 응급실은 춥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