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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경 Aug 28. 2024

엘리베이터가 빠르게 내려갔다.

나와 D와 그

돌아가셨습니다.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이제 어떡해야 하지. 손이 조금 떨렸던 것 같기도 하다.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고 엘리베이터로 가는 길은 매번 갈 때마다 서늘하다. 혼자 가야 하는 길. 응급중환자실로 가는 길은 여전히 복잡하다. 문 앞에 다다랐을 때 도착을 알렸더니 의사 한 분이 오셔서 얼굴을 보시겠냐고 물었다.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선생님…. 어떻게 하죠…? 보고 싶으시면 보실 수 있도록 얼굴은 아직 감싸지 않았어요. 선생님…. 저 어떻게 하죠…? 혹시 보고 싶지 않으시면…. 가족이 아니시니까…. 그러셔도 됩니다. 의사도 당황스러운 눈치다. 빨리 해결하고 싶은 눈치다. 저 그럼 들어가서 뵐게요. 너무 떨렸다. 들고 간 묵주를 꼭 쥐고도 너무 떨렸다. 지난번에는 문 쪽에 계셨는데 이번엔 안쪽에 계신가 보다. 많이 걸어갔다. 사실은 몇 걸음 아닌 것도 같다. 눈을 감고 계시는데 주무시는 것도 같고 입안에 무언가 물려있었고 지난번 봤을 때랑 다르지 않은데 정말 돌아가신 걸까. 실감이 나지 않는다. 묵주를 쥐여 드려도 되나요. 네. 주세요. 엘리자벳에게 전화를 했다. 돌아가셨어요. 이내 들리는 큰 울음소리. 진짜예요? 정말이야? 오……. 길게 말씀을 하셨는데 잘 모르겠다. 어떤 말씀이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이제 가야 한다고 해서 전화를 끊고 소지품을 챙겨주셔서 들고 나왔다. 장의사 한 분이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 이동해야 한다고 하셨다. 1층 버튼 말고 한 개를 더 누르셨는데 그러자 문이 닫히고 직통으로 아주 빠르게 내려갔다. D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흰 천이 덮인 채로. 장의사분이 영안실로 D를 밀어 넣었다. 장례는 치를 거냐고 물었다. 가족이 안 계셔서 못할 것 같아요. 그럼 대사관에서 모든 걸 해결할 거고 그러니 그냥 돌아가라고 말씀하신다. 화장하고 남편분의 유골과 함께 미국으로 가시게 될 거라고 하며 그 유골함을 여기 가져와야 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육신은 폐기물이고 중요한 것은 혼이라며 들고 왔다 갔다 하면 안 된다


고 하셨다.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우리의 육신은 그저 폐기물일 뿐이라니. 장의사라는 직업 때문인가. 아니면 정말 사실인 걸까. 혼란스러웠다. 이분 집에 가서 그 유골함이 어디 있는지만 살펴보고 오세요. 그럼 됩니다. 네.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육신은 폐기물.이라는 말이 자꾸 떠오른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지금까지 죽은 사람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이 없었다. 그것도 아는 사람의. 잠을 자는 듯한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평온한 모습이었는데 이 세상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니. 그리고 곧 땅으로 돌아갈 존재가 된다니. 미국의 가족과도 화장하기로 얘기를 했다. 대신 유해를 보내 달라고 했다.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화장하기까지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다음날이 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먹고 출근 준비를 하고 그러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아무래도 수녀님을 만나 뵈어야 할 것 같았다. 수녀원 앞에 가니 문이 잠겨있고 전화도 안 받으신다. 눈물이 났다. 옆에 일하시던 자매님과 눈이 마주쳤다. 수녀님이 연락이 안 돼요. 응 기다려봐. 내가 연락해 볼게. 왜 울어. 괜찮아……. 아무것도 묻지 않으시고 안아주시는 자매님. 이윽고 수녀님이 나오시고 기도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녀님 어제 돌아가셨어요. 자꾸 후회돼요. 제가 며칠만 빨리 병원에 모시고 갔으면 이렇게 빨리 돌아가시지는 않으셨을 거 같아요. 아니야. 넌 할 일을 다 했어. 그건 그분의 운명이었을 거야. 그래도 제가 그 집에 들어오라고 할 때도 머뭇거렸고 강아지 냄새 때문에 싫은 티도 냈고요. 관장하러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도 귀찮은 티도 냈어요. 밥도 한번 같이 안 먹고요.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지금은 돌아가신 그분의 영혼이 하느님 곁으로 가시게 된 것을 생각하고 영이 떠돌지 않도록 우리가 기도를 드리자. 네. 미국인 친구 H와 서울의 박 선생님께도 알렸다. 모두 믿기지 않아 했다. H는 며칠 전에 만나서 얘기도 하고 그랬던 터라 더 충격이 큰 것 같다. 박 선생님도 얼굴은 모르지만, D의 일로 계속해서 연락을 취했던 분이셨다. 수화기 너머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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