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스리 Aug 28. 2022

늦어도 한참 늦은 질문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뭐야?

대한민국 어딘가에 있을 가성비 최고의 맛집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6개월. 한정적인 외식 메뉴 중 그래도 신선한 아이템, 다른 제작사와 겹치지 않는 아이템을 찾아 선점하는 일은 늘 버거웠다. 짧은 시간 안에 일을 빠릿빠릿 해치워야 하는 데일리 프로그램을 소화하기에, 너무 느긋한 성격을 갖고 있기도 했다. 여기까지가 내 퇴사의 변이다.


표면적으로는 ‘다른 프로그램에 갈 기회가 생겼고, 거기로 옮기고 싶어서’였지만 솔직한 마음은 ‘하기 싫어서’였다. 아이템도 찾기 싫고, 시간에 쫓기듯 일하는 것도 싫었다. 그래도 처음엔 신기했다. 내가 시간 안에 내레이션 원고를 쓸 수 있었다는 것도, 별 사고 없이 방송이 무사히 잘 나갔던 것도, 힘들게 찾아낸 식당이 방송 후 손님들로 북적이는 것도 뿌듯했다. 하지만 성취감의 약발은 너무 빨리 떨어졌다. 일의 고됨을 성취감으로 덮고 또 덮어왔는데,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11년 전, 방송을 처음 시작했던 때도 그랬다. 최종 수정 작업을 마친 테이프를 방송국에 입고했을 때. 엔딩 스크롤에 올라가는 이름 석 자를 봤을 때. 엄마가 방송을 잘 봤다고 이야기해 줄 때. 일이 힘들어도 재밌었고, 박봉이어도 참을 수 있었다. ‘이 놈의 방송 못 해 먹겠네’라는 말을 숨 쉬듯이 내뱉다가도 ‘이 맛에 방송한다는 생각으로 기분 좋게 잠들었던 때가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 시기가 나와 방송 사이의 짧은 허니문이었던 같다.


나의 방송 경력은 힘듦과 도피의 연속이었다. 재밌게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했지만 금세 지쳤고, 힘들어하다 그만뒀다. 종영 날짜가 정해져 있는 프로그램은 마지막 날만 바라보며 버텼지만, 그렇지 않은 프로그램을 할 때는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것 같은 기분으로 살았다. 참고 참다가 항상 같은 이유로 퇴사를 결정했다. 다른 프로그램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하기 싫어서


‘그럼 너는 어떤 프로그램을 하고 싶어?’


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종종 나오던 질문이다. 애주가였던 누군가는 유럽 맥주에 대한 다큐를 하고 싶다고 했고, 여행을 좋아하던 누군가는 자전거 로드 다큐를 해보고 싶다고도 했다. 다들 자기만의 생각과 꿈이 있었다. 나만 빼고. 


나는 대답해야 할 차례가 올 때까지 머리를 열심히 굴린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뭐지?’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주제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재밌는 거 하고 싶다’는 식의 두루뭉술한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재밌는데?’라고 부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없었기에 늘 대충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좀 더 일찍, 스스로라도 질문해볼 걸 그랬다. 내가 도대체 무엇을 재미있어하는지.

작가의 이전글 독박육아는 파국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