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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타조 Mar 01. 2021

어른 세상, 아이 세상

아빠 일은 처음이라

"숙제 때문에 놀지도 못해서 너무 답답해요. 맨날 맨날 그래서, 괜히 태어난 것 같아요."

아이의 마지막 말에 정신이 번쩍 했다.  아니, 녀석을 얼마나 생각하는데, 감히 그런 말을 하다니. 화가 났다가, 묵직한 해머 충격에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저 일시적인 감정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으리라. 오래된 고통 같아서, 이내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숙제가 너무 많아서 그렇구나.'
'...'
'그럼. 무슨 과목이 제일 힘든 거야? 수학 문제집이야 아니 영어야?'
'...'
'우리, 엄마한테 숙제를 줄여달라고 이야기해보자.'
'괜찮아요...'
'그럼, 좀 더 늦게 자더라도, 게임시간을 늘리는 건 어때?'
'...'
눈치를 살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이유를 알아내야 했다.



상황은 퇴근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현관문을 들어섰을 때, 웃으며 인사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둘째와 달리, 첫째는 처음 표정부터 좋지 않았다. 굳은 얼굴에 딱 다문 입하며 화가 나 있다는 걸 금세 알았다. 보아하니, 상황이 대충 짐작됐다.
'한 녀석은 숙제를 이미 끝내고 게임하고 있는 것 같고, 다른 녀석은 아직 숙제가 많이 남았나 보네.'
방학 동안 아이들에게 숙제를 마치면 하고픈 놀이를 하도록 했다. 숙제가 과한 것도 아니었다. 학원가는 날을 빼면, 오전 서너 시간이면 가능한 분량이다. 둘이 해야 하는 숙제도 늘 같았다. 어릴 적부터 쌍둥이들의 학습 능력이 크게 차이 나지 않아서, 이제까지 모든 콘텐츠들을 똑같이 해주었다. 그리고, 그동안 녀석들이 잘 해왔는데, 조금 특징이 있다면, 둘째가 이해도나 학습 진도가 빠른 편이었다. 그래도 큰 차이가 아니라서, 서로 경쟁하면 좋은 자극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오늘도 평소와 같았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첫째가 심통 해 있었던 것이다. 
 
잠들 즈음에 아이 침대로 갔다. 오늘 무슨 일 있었는지, 왜 기분이 좋지 않았는지 물었다. 한동안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말하기 싫다는 신호였지만, 나는 가만히 기다렸다. 그렇게 몇 분을 달래 가며 기다렸더니, 결국 훌쩍 거리며 얼굴을 내밀며, 울음 섞인 말로 이유를 말했다. 매일 하는 숙제가 너무 지겹고, 그러다 보니 노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말이었다. 여기까지는 나도 예상했는데, 다음 말에 아이의 마음이 절박하다는 게 느껴졌다.


'그랬나? 녀석에게 숙제가 너무 과한 걸까? 혹시, 아이의 자유 시간이 적은 건 아닐까?' 

그간 일을 생각해 보았다. 엄마의 말도 그렇지 않다고 했고, 둘째 녀석을 보면, 그리 많은 숙제도 아닌 것 같았다. 엄마의 이야기에 따르면 또래 친구들에 비해서 많이 시키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숙제나 노는 시간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아이의 마음을 달래려 이런저런 말들을 계속했다. 공부하고 숙제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른도 싫은 일을 하고 산다며, 내 회사 이야기도 해주었다. 또한, 다른 친구에 비해 너는 잘하는 거라고도 칭찬하기도 했고, 사람마다 잘하는 것이 모두 다르니까 스트레스받지 말라고도 했다. 허나, 모두 허사였다. 아이 표정은 그대로였다. 

그러던 중에 오늘 퇴근 무렵의 장면을 다시 생각했다. 여유로운 한 녀석과 끙끙거리는 녀석의 모습이었다. 아이의 답답하다는 '맨날 맨날' 이 그 장면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집에 경쟁자 하나가 있는데, 숙제는 항상 자기보다 빨리하고 잘 해내는 반면, 자신은 매일 끙끙거리다가 늦게 끝난다. 경쟁자에게 항상 지기만 하니, 조바심과 불편한 마음이 들었을 것 같았다. 이런 상황이 매일 반복되었으니, 괴로울 수밖에... 결국은 녀석은 폭발해서 후회한다고 말한 것 같았다. 

너무 늦게 알아준 게 미안했다. 대수롭지 않게 그 정도쯤이야 하며 넘겼다. 어른 세계를 잣대로 아이를 보았던 것이다.


"근데, 있잖아. 아빠는 너보다 OO이가 더 걱정이야."

집중력에 비해 사교성이 부족한 둘째 이야기를 꺼냈다. 어울리는 일이 서툴고, 종종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해서 학교나 학원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돌아오는 일이 가끔 있었다. 그래서, 걱정이기도 했다. 반면, 첫째는 어디든 누구든 잘 어울리고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서, 그 부분을 칭찬했다. 
"대신 너는 친구들을 정말 재밌게 해 주잖아. 엄마 아빠를 웃겨주기도 하고... 그리고, 그게 얼마나 대단한 능력인 줄 알아? OO이는 못하는 능력이야."
그제야 표정이 풀렸다. 경쟁자가 부족한 게 있다는 소리가 반가웠나 보다.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뒤, 녀석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나도 저런 고민을 하고 살았는데, 어른이 되었다고 너무 쉽게 말하는 것은 아닌지. 어른들은 아이의 세계를 종종 대충 짚고 넘어간다. 짐작만 할 뿐 실제로 그 마음까지 들여다보지 않는 것이다. 아이는 어른에 비해 작다. 보는 눈도 버티는 힘도 작다. 어른에게는 하찮지만 아이에게 태산같이 무거울 수도 있는 것이다. 

아이의 세상으로 들어가야 아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어른 세상에서 잠시 빠져나와야 한다. 아이 교육이 어려운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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