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소주택, 타이니하우스 이런거는 시렁^_^
아직도 방금 지나간 것 같은 2020년에 읽었던 책들 중 가장 길고 고되(??)었던건 단연 <삼체> 시리즈였다. 정확히는 2-3권. 1권은 재미있게 금방 읽었는데 나머지가 정말 길었다. 책을 읽다가 아직도 페이지가 이렇게 남았어?? 하는건 거의 처음이었다. 이 대서사가 도대체 어떻게 끝나는지 궁금해서 끝까지 꾸역꾸역 읽어냈다. SF 장르를 좋아하긴 하는데, <삼체>가 하드코어 SF라는걸 모르고 덥썩 집었던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물리학적 설명! 양성자! 중성자! 호로롤롤! 아무튼 <삼체> 마지막 3권의 끝은 두 주인공이 안락하게 지내던 소우주를 파괴하고 굳이 살기 힘들고 척박한 바깥 세상 대우주로 돌아가면서 끝난다.
“우리는 끝없이 팽창하는 대우주를 연구하는 학자 겸 탐험가들이야! 이런 쪼매난 (1 큐빅키로미터) 소우주에서 언제까지고 살 수 없어!”
하면서 말이다. 난 전적으로 동의하지 못했다. 한 달 동안 붙잡고 있던 긴긴 이야기의 마무리에 동감하지 못해서 씁쓸했다. 왜냐면 난 그 1000 큐빅미터 (대략 300평)의 소우주에서 아주 잘 살것 같기 때문이다. 특히나 바깥이 붕괴중인 위험하고 척박한 대우주라면. 탐험심이 없다고 해야하나, 작고 소소한거에 감사해하며 살 줄 안다고 해야하나. 바깥이 바이러스와 시위와 총기난사로 미쳐돌아가는 미국에서 코로나로 61 제곱미터 (18.5평)의 아파트에 갇히다시피 1년을 지내고보니 뭔가 통달하거나 해탈했나보다.
내가 살고있는 아파트는 전에 언급했듯이 뉴욕의 살인적인 렌트비를 아끼기 위해 룸메이트 두분과 쉐어하고 있다. 그래서 방 두개를 제외한, 이 방과 키친 겸 거실이 우리가 쓰고 있는 면적이다. 제어보니 61제곱미터 (18.5평. 660스퀘어피트)라는 숫자가 나왔다. 근데 사실 키친겸 거실은 공용이라 빤쓰만 입고 나갈수 없다. 제대로된 옷을 갖춰입고 언제든 누가 등장할걸 대비해야해서 집과 밖의 중간쯤으로 느껴지고, 우리 방 자체의 크기는 26 제곱미터다. 약 8평. 공용공간의 10평중 우리가 반만 쓴다고 하면 우린 지금 대략 13평 원베드룸 아파트에서 살고있는 느낌이다. 욕실과 드레스룸이 포함된 이 마스터베드룸은 우리의 침실/거실/식당/컴퓨터방/그림작업실/빨래건조실/파우더룸/욕실/드레스룸/요가방/식물흙놀이방을 동시에 해내고 있다!!! 우린 키친에서 요리하는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하루를 이 8평의 전용면적 안에서 보낸다.
“너네는 어떻게 거기서 그러고 지내니? 참 신기하고 대단하다.”
“아하하하 그러게요.”
코로나가 시작되고 부부가 같은 공간에 24/7 갇혀있자 이혼율이 올라갔다는데, 우린 그닥 별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다...랄까. 사실 좀 답답하다. 당장 지금 이 ‘집짓고 싶은 글’들이 얼마나 길고 많은지 보면 알수 있다. 그래서 난 도시의 귀퉁이에 낑겨지은 협소주택이나 미국에서 반짝 유행했던 타이니 하우스 같은건 애시당초 쳐다보지도 않았다. 어떤 일본인 작가가 쓴 협소주택 책을 좀 읽다가 던져버렸다.
사실 비정상적일만큼 여러 기능의 공간(세어보니 11개)들이 마트료시카 마냥 한 덩어리로 겹쳐져 있는 지금 이 방을 한 놈 한 놈 떼어내서 널어뜨려놓고 싶다! 그게 사실 원래 정상적인 집 인거지. 그런 쾌적한 집에서 살고 싶어서 지난 반년을 주구장창 글을 쓰고 도면을 그리고 인테리어/건축 사진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나름 창의적으로 생산적(?)으로 답답함을 해소하고 있다고 말할수 있겠다. 사실 지금까지 그려왔던 집의 평면도를 공개하지 않은 이유는 계~~~속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와하하하. 그런데 이번 글의 특성상 그림이 필수여서 오늘 수정한 버전을 밑에 다가 공개하기로 했다.
<건축탐구 집>을 하도 많이 봐서 이제는 옆집에 살고있을것 같은 임형남 노은주 건축가부부가 <내가 살고싶은 작은 집>이라는 책을 통해 이런 말을 했다. "정말 나에게 필요한 공간은 뭔지, 도면 위에서 내게 필요없는 공간들을 줄여나가보는 연습을 해보세요" 했는데, 내가 그린 실내 도면들에는 이미 필요한 것 만 있었다. 내가 필요한 실내 공간/요소는 대략 이렇다.
1. 잠만 자는 침실 (알코브 베드)
2. 욕조와 샤워실이 분리되고 세면대가 두개 있는 욕실.
3. 드레스룸 겸 세탁실
4. 컴퓨터방 (윤이콘씨의 평생의 꿈)
5. 층고 높은 오픈형 키친/다이닝/리빙
6. 하프 베스룸이 딸린 작업실
내가 굳이 필요하진 않지만 원하는 건 대부분 실외 공간이다. 전에도 여러번 언급한 사적 야외 공간! 근데 그건 일단 집을 지으면 살면서 차차 만들수 있으니까 위치라던가 미리 계획만 잘 짜놓으면 된다.
그런데 아직 땅도 안샀기 때문에 땅이 수평일지 언덕일지 동서남북 어딜 향하고 있는지도 몰라서, 마치 어딘가 살고 있을 미래의 여자친구(남자친구)를 상상하는 고등학생처럼, 그냥 어딘가에 있을 적당한 땅을 상상하면서 집 평면도를 그렸다. 실제 패시브하우스 집 외벽 두께, 평균 내벽 두께, 문 크기 등등을 검색하면서 1픽셀=1센티 스케일로 그리기 시작했다. 가장 귀찮은건 피트/인치를 계속 센티로 바꿔야하는 점이었고 (미국 산지 꽤 되었는데 여전히 피트/인치는 극혐이다.) 가장 힘든건 욕실이었다. 와-씨-. 변기를 이리 놓으면 문이 안열리고, 샤워부스를 여기 놓으면 세면대가 막히고. 정말 어려운 공간이었다!! 이제서야 왜 <구해줘 홈즈>에서 나오는 모든 집들이 같은 화장실 구조를 갖고있는지 이해가 갔다. 문열면 딱 변기>세면대>욕조(아니면 샤워실) 끝. 욕실에 대한 글도 따로 쓰려고 맘먹고 있다. 집의 완성은 욕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리 집이 예뻐도 욕실이 꾸지면 호감이 싹 사라진다. 근데 욕실이 면적당 공사비용이 젤 비싼 곳이다. 젠장.
아무튼, 최근 아브레임의 A프레임 집으로 방향을 굳히고는, 트리오100 모델을 기준으로 내부 도면을 그려서 현재 딱 29평이 되었다. 2층이 5.5평의 재택용 작업실(6번)이고, 나머지가 1층. 거기에 위의 1번부터 5번이 다 들어갔다!
사실, 어느정도 쾌적한 집 크기 (예를 들어 한국 정부가 지정한 4인가구 기준 30평이라거나) 이상이 되면, 30평이든 60평이든 갑갑하다고 느끼는건 정신적인 문제다. 인간이 뭐 앨리스 처럼 몸이 거인처럼 불어나는 것도 아니고, 손오공처럼 머리카락을 훅~! 불어서 분신술로 거실과 수영장과 키친과 레크레이션룸과 침실에 동시에 있을게 아니라면, 한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은 엄청나게 넓을 필요가 없다. 승숙도 그랬다. “이 집이 아무리 넓어도, 결국 난 이 쇼파를 벗어나지 않는 걸.” 캐나다에 있는 그녀의 집은 지금 우리집의 한.... 10배 되나. 암튼 아주냥 허벌나게 넓다.
예전에 어디선가 허지웅 작가가 그런 얘기를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이 집을 살 때 그 집을 혼자 창소 할수 있는지 시험을 봐서 사게해야 한다고. 방송에서 지나가듯 한 말이라 진짜로 했는지 내가 상상해낸건지 알수 없지만 깔끔한 집 유지에 목 매는 그가 할만한 말 같다. 이 이야기는 폭넓게 보면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능력으로 관리할만한 사이즈의 집'이다. 집안에서 도우미를 고용해도 좋은 사람들을 제외하고. 나는 우리집에 모르는 사람이 왔다갔다 하는거에 좀 지쳐서 그냥 딱 우리끼리 살고싶다. 빤쓰만 입고 돌아다니고 싶다.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동일한 재료에 똑같은 스타일로 만든 공동주택=아파트에 모든 인간들이 살면 사회가 공평해질거라고 했단다. 그러긴 개뿔, 재료와 스타일을 동일시 한 순간, 남은건 사이즈의 변화밖에 없어서 결국 우리는 '몇 평에 사느냐'로 사회계층을 더욱더 확실하게 숫자로 나눠버리게 되었다. 아직도 초등학교때 '너네집은 몇 평이냐?'하며 서로 물어보던 애기들이 기억난다. 그 쪼그만 일고여덟살 애들이 벌써 저들끼리 숫자로 부유층/빈곤층을 나눠서 우월감/패배감을 느끼고 있었다.
다 크고 난 지금, 계속 한국에 살았더라면 그런 피어프레셔를 느끼는 공동체에 속해있었을지도 모른다. 사는 곳이나 직업 특성상 그런 압박을 느낄일이 별로 없어서 다행이다. 내가 둔한 걸지도 모르지만. 예전에 회사에 다닐적에도 사람들은 서로 집이 '몇 스퀘어피트냐' 하고 물어보지 않았지만 이 사람들도 인간인지라 은근 자랑질하느라 바쁘다. 그들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보면 내가 평소에 보는 그들과 전혀 다른 인간이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있다. 4일동안 휴양지에 다녀온 사진을 4개월 내내 찔끔찔끔 올려서 계속 휴양지에 있는것 처럼 보이게 하거나, 잊을만 하면 몇 년전 웨딩 사진의 각도만 살짝 다른 사진을 올리거나. 화려하고 즐겁고 느긋한 일상만 보여준다. 근데 좀 희한한건 그렇게 비싼돈 주고 월세 아니면 모기지를 내며 세계최고의 관광지중 하나인 뉴옭에 살면서, 주말이나 휴가때는 뉴욕을 벗어나는거에 목을 매단다는 것이다! 그리고 뉴욕을 벗어나고 왔다는 것을 자랑삼아 얘기한다는 것이다. 휴일에 뉴욕을 못 벗어난걸 불쌍하게 생각난다.
"크리스마스에 어디가?"
"그냥 뉴욕에 있을꺼야...(우울)"
이런 대화를 한다. 참나. 나홀로 집에 케빈의 고향이 여긴데! (정확히는 케빈의 엉클이 뉴욕에 산다. 아무튼)
그래서 코로나 셧다운으로 다들 집에 갇히게 되었을때 다른 주에 있는 부모님집이나 별장등으로 피신하고 뉴욕의 아파트들이 텅텅 비었었다. 다들 뉴욕의 집을 싫어하는건, 평균적으로 집 크기가 작기도 하지만, 집에 사적 야외공간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집이 작더라해도 햇빛을 쬐고 하늘을 볼 공간이 있고 기분전환이 되도록 공간이 나누어져있다면 그렇게까지 답답해할까. 사적 야외공간-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데크, 마당, 온실 등등-이 풍족하면 집 내부공간 보다 시공비가 덜 들어가기 때문에 집을 ‘작게’지어도 큰 집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정원이나 온실 같은건 본체 시공하는 것 보다는 셀프로 할수 있는 부분이 많다.
그렇게 하면, 위에 말한 내가 그린 미래의 집이 29평이니까 지금 살고있는 공간보다 3배 정도 넓어지는 것이고 (궁궐이다!!) 거기에 가라지 별채 마당 데크 야외키친 등등의 사적 야외 공간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크게 느껴질 것이다. 이건 거의 소우주다. 오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