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집에 와보니 아빠가 부엌에서 저녁을 드시고 계셨다.
나는 오랜만에 짜파게티가 먹고 싶어서 작은 냄비에 물을 올려놓았다.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작은 접시에 직접 담근 깍두기를 옮겨 담고 있는데 아빠가 뭘 먹을 거냐고 물었다. 나는 곧장 짜파게티를 먹을 거라고 대답하는 대신 뭘 먹을 것 같은지 맞춰보라고 뜬금없는 수수께끼를 내줬다.
「큰 냄비에 끓이면 국수고, 작은 냄비면 라면인데. 라면이겠지.」
「그러니까 무슨 라면인지 종류를 맞춰 보라고.」
「몰러.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아 그니까 그게 수수께끼지. 맞춰봐. 내가 뭣을 먹는지.」
「글쎄다. 짜파게티?」
그제야 나는 바깥 계단에 두었던 짜파게티를 가져와 물이 팔팔 끓는 냄비 안에 넣을 수 있었다.
아빠와 오랜만의 말장난, 대화였다. 6월의 어느 날이었다. 우리는 어떤 문제로 전처럼 말장난도 대화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눈치를 보는 건지 아빠가 내 눈치를 보는 건지, 그냥 서로의 눈치를 보느라 한 동안 서먹하게 지냈었다. 그게 어떤 문제인지 나는 쉽사리 쓸 수가 없다. 다만 그것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를 공황상태에 빠지게 했었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내가 그 인생을 선택해서 살아야 한다면, 새롭게 많은 관념들을 가꾸고 정리하고 채워야 했기에, 그렇게 하는 것은 꽤 많은 시간이 들 일이었고 또 심적으로 많이 신경 써야 하는 일이었기에 지금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는 말을 했더니 우리 부녀 관계는 더는 예전 같지 않아 졌다.
한편으로는. 이것이 어떠한 마음의 준비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짜파게티를 만들면서 오랜만에 아빠의 얘기를 들었다. 아빠는 오늘 일진이 아주 좋지 않았다고 했다. 아는 후배가 오바로크 기계를 줘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깨끗이 닦은 후 기름을 가득 넣었는데, 생뚱맞게 기름이 범람하여 바닥으로 다 쏟아졌다는 것이었다. 더워서 땀이 주룩주룩 흐르는데, 물도 아닌 기름 청소를 해야 하니 정신이 아득해졌다고 했다. 게다가 일에 대해서도 두 번이나 실수를 했다고 한다. 이런 일이 없었는데, 일이야 다시 하면 되기는 하지만 안 하던 실수를 하니까 아빠는 아무래도 당황한 모양이었다.
「아주 악몽 같았어.」
악몽 같다니. 그런 표현을 하는 아빠가 놀라우면서도, 악몽 같았던 아빠의 하루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열심히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넋두리를 하면 안 좋았던 마음이 많이 좋아진다는 걸,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배가 준 오바로크 기계는 다행히 고장 났거나 못 쓰는 걸 준 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 다행이라고 하면서 나는 아빠에게 어마어마하게 좋은 일이 생길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새옹지마잖아.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이 일어날 거야. 하늘이 그 정도는 해줘야지.」
「어마어마하게? 뭐가 어마어마야.」
아빠는 '어마어마'라는 표현이 재밌었나 보다. 한두 번 혼잣말로 '어마어마'라고 반복해 말했다. 그렇게 우스개 소리 같은 대화를 마치고, 나는 짜파게티를 먹기 시작했다.
사실 오늘은 나에게도 위로가 필요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이었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말장난, 우스개 소리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렇게 반대로 악몽 같았던 아빠의 하루 끝에 작은 웃음이라도 만들어 줬으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