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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글쓸러 Nov 29. 2023

응급실에 오게 될 분들에게 한 가지 꼭 부탁드립니다.


 “이거 놔라! 손대지 마라! 아! 아프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한 남자가 있었다. 술 먹고 오토바이 타다가 교통사고가 발생한 이였다. 어디가 아픈지 정확히 파악해야 했다. 쉽게 말하면, X-ray, CT, 혈액검사 등 기본적인 검사가 진행되어야 하는 그런 때였다. 그런 와중에 협조가 되지 않는 이 남자. 피 한 번 뽑고자 간호사들이 달려들었다. 양팔, 양다리, 몸통, 머리. 총 6명이 그의 각 부위를 잡았고, 이후 한 사람이 주사기를 들고 다가왔다.


 “아, 아프다고. 하지 말라고. 아아아아아!”


 그의 고함이 응급실 곳곳에 퍼져나갔다.     



 “썩 물러나라, 네 이놈.”


 나한테 하는 소리인 줄 알았다. 응급실 병상 근처를 돌아다니다 들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니,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썩 물러나라, 네 이놈. 주님의 이름으로 네 놈을 퇴치하리라.”


 뭐, 대략 이런 말이었다. 영화에서만 보던 엑소시스트(귀신을 쫓아내는 이들)의 대사를 들을 줄이야. 그것도 응급실에서 말이다.  

    


 전날까지도 멀쩡하게 운동하던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버지. 갑작스럽게 구역질이 느껴져, 변기를 부여잡고 구토했다. 나온 건 음식물이 아니었다. 피. 바로 토혈이었다. 구역질은 한번에서 끝나지 않았다. 반복되고 또 반복되었고, 어느새 변기는 토혈로 가득 찼다. 냉면 그릇을 꽉 채울 만큼. 그렇게 그는 응급실로 왔다. 

 예상되는 질환은 식도정맥류였다. 출혈이 생기면 토혈, 혈변, 흑색변 등의 증상과 더불어 어지러움, 의식 저하 및 소실까지 이어질 수 있는 질환이다. 응급실에 내원 당시 상태가 좋지 않았다. 바이탈은 매우 불안정했으며, 계속 이어지는 토혈로, 내시경을 통한 혈관 경화나 고무 밴드를 통해 지혈시키는 것조차 진행할 수 없었다. 추가적인 조치는 수혈 말곤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근처로 피가 웅덩이를 이루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겪었다. 혈액이 썩을 수도 있다는 걸. 냄새가 응급실 전체에 진동했다. 그 와중에 그를 부여잡고, 울던 가족들이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그는 하루 뒤 세상을 떠났다. 사랑하는 아내, 사랑하는 아들과 딸들 곁에서.      


 응급실에 들어온 한 남자가 있었다. CPR(심폐소생술)을 하면서 들어왔던 그 남자. 15층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인턴, 레지던트를 비롯하여, 학생이었던 우리까지 CPR에 동원되었다. 어떻게든 그를 살려보고자 했다. 그렇게 모두의 힘을 다 바쳐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끝내 그를 소생시킬 순 없었다. 응급실을 같이 따라 들어와, 오열하던 어머니의 울분에 찬 괴성. 눈을 감으면 귓가에서 들리는 듯하다. 여전히 말이다.     


     

 위에서 말한 건 6년 전, 학생 때 겪었던 응급실의 모습이다. 여기서 말하지 않은 이야기들도 많다. 엉엉 울어대는 아이를 걱정하는 어머니, 인턴 선생님과 다투던 남자, 가만히 하늘만 쳐다보며 간호사가 질문해도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던 여성,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집에 당장 가겠다던 할아버지, 치료를 기다리며 점점 초조해진 커플들. 그 모든 걸 목격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응급실이다.         



 이런 응급실에 대한 이야기를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낸 책이 바로 [날마다 응급실]이다. [응급실의 소크라테스],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 [반항하는 의사들] 등 다작하는 곽경훈 작가님의 책이다. 이 책은 단순히 응급실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응급실 그 자체를 이해하기 쉽게 도와주는 그런 도서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14863410     


 응급의학과의 발전과 응급의학과 의사가 맡고 있는 업무, 응급실에서 일하는 보안요원, 환자 분류 간호사, 행정직원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으며, 간호사와 의사와의 관계 등 응급실의 전반적인 업무에 관해 서술하고 있다. 읽어보면, 언젠가는 가게 될지 모르는 응급실이 그렇게까지 낯설게만 느껴진 않을 거다.     

 또한 응급의학과에서 주로 맡게 되는 응급질환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심장과 관련된 협심증과 심근경색에 대한 설명과 그를 치료하기 위한 관상동맥 조영술, 뇌출혈이 발생했을 때 진행되는 뇌혈관 조영술, 저혈당 등 질환과 그에 따른 치료법뿐 아니라, 소수자 및 노인들의 죽음 등 생각해 볼 만한 소재들에 대해서도 글로 다루고 있다.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강원도의 한 응급실에서 벌어진 일 때문이다.


https://newsis.com/view/?id=NISX20231010_0002476714&cID=10201&pID=10200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7947 

    

 요약하자면 이렇다. 응급실에 들어온 한 환자가 있었다. 초진을 끝냈고, 혈액검사, CT 등의 기본적인 검사를 권한 상태였다. 그때, 응급 환자가 왔다. 심정지 환자다. 응급실에선 위급한 순으로 환자를 진료해야 했기에, 의료진들이 해당 환자에게 모여들었다. 이에 대해 이전에 들어온 환자의 보호자가 따지기 시작한 거다. 매우 강하게. “15분 동안 환자를 방치하냐?” 등 고함지르는 보호자를 향해, 위급한 환자가 우선이라는 걸 설명했음에도, 1시간 동안 항의를 이어 나갔다. 말조심해라. 의사가 보호자한테 한 마디도 안 지네? 그 말들과 함께 삿대질하면서 말이다. 위급한 환자에 대해 대응하는 상황 속에서, 1시간 넘게 이어지는 항의 때문에 응급실은 마비가 되었고, 경찰이 출동했지만, 해당 보호자는 멈추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검사 결과 문제가 없었다는 거다. 보호자와 함께 온 그 환자 말이다.      


 응급실이 하는 역할이란 그렇다. 찾아오는 환자들을 진료하는 곳이긴 하나, 그 무엇보다도 응급한 환자가 우선이다. 그렇지 않으면, 위급한 이에게 찾아오는 건 죽음이니깐. 응급실이 가지는 본연의 역할을 무시하면 안 된다. 협조하지 않으면, 어쩌면 단 한 사람이 아닌, 수많은 이들에게 피해가 갈지도 모르기에 말이다.      


 딱 한 가지만 부탁하고 싶다. 의료진을 믿어주셨으면 좋겠다. 아파서 찾아오는 거란 걸 알고 있다. 각자의 아픔이 남들보다 더 크기에, 우선순위에서 1번이라 여길 거라는 것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모두가 1번이면 누구를 진료해야겠는가? 결국, 그에 대한 경중의 판단은 의료진이 할 수밖에 없다. 응급실을 찾아오시는 많은 분들께 협조를 부탁드릴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추천한다. 응급실에 대한 이해를 위해 [날마다, 응급실]을 읽어보길 말이다. 이 책을 접한다면, 의료진을 믿어야 하는 이유를 조금이라도 이해해주리라 믿어본다.     

 


출처 : 날마다 응급실 / 곽경훈 / 출판사 싱긋 /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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