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집에서 왜 이렇게 무를 많이 주시는 겁니까? 무를 무려 2개씩이나..
이 대사, 아마 모르려야 모를 수 없을 겁니다. 영화 [극한직업]에 나온 대사입니다. 마약 관련 잠복수사를 위해 경찰들이 치킨집을 운영하다가, 치킨이 우선(?)이 되어버린 비극적인 영화가 바로 [극한직업]입니다. 드리님의 마음 한 번 짐작해 봐도 되겠습니까? 당황! 아마 이 단어일 겁니다. 맞죠? 영화 이야기로 오늘의 편지를 시작하는 이유를 설명하려면, 그날로 돌아가야 합니다. 바로 6월 25일 화요일입니다.
아시다시피, 지금은 매우 후덥지근한 날씨입니다. 낮에는 엄청난 열기로 사람을 미치게 만들고, 밤에는 습기가 공기 전부를 차지하다 보니, 땀이 항상 줄줄 흐릅니다. 요새는 옷을 2번 이상 갈아입지 않으면 버틸 수 없더군요. 몸에서도 홍수가 나기 때문이죠. 덕분에 옷들이 견뎌내지 못합니다. 이런 날씨에는 시원한 게 생각납니다. 달달한 수박이나 아이스크림은 물론이지만, 그보다도 먼저 떠오르는 게 있습니다. 차가운 유리잔에 담겨 탄산이 팡팡 터지는 시원한 맥주! 이를 먹고 머리가 지끈하게 아픈 기분을 느낄 수 있다면,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시원하다 못해 머리를 때리는 맥주를 6월 25일 사직야구장에서 먹고 싶더군요. 그날은 기아 타이거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혈투가 벌어진 날입니다. 롯데 자이언츠가 1회 말에 1점을 내긴 했어요. 하지만 기아에 점수를 헌납했습니다. 그것도 좀 많이. 1회 초엔 5점, 2회 초엔 3점, 3회 초엔 1점, 4회 초엔 5점. 4회의 스코어는 14:1이 되었습니다. 맥주가 당기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였죠. 1982년에 익산역 옆 가게에서 할머니가 맥주잔을 꽝꽝 얼려주면서 시작되었다는 모 가게에서 시원한 맥주를 먹으며, 이 경기를 잊고 싶었습니다. 야구장 밖으로 나갈까 깊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 차이면 나가도 되는 법한데 말이죠.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시원한 맥주는 나중에 먹어도 되기 때문에? 아니면 내 돈 내고 왔는데, 돈 아까워서 일단 경기는 끝까지 보자? 어차피 진 경기니, 편안하게 야구장 밤하늘이라도 볼까? 2024년 6월 11일, 키움과의 경기 때도 나가려고 하던 찰나, 2이닝에 걸쳐 14점을 내며 18대 10으로 이긴 그날의 기억 때문일까요? 이유는 알 수 없었습니다. 결국 남기로 선택했으나,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습니다. 냉정하게 판단 내렸습니다. 13점 차이. 이건 이기기란 불가능하다는걸요.
제2의 DNA가 롯데 자이언츠인 탓에, 결국 4회 말부터의 경기를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4회 말에 안타 행진으로 2점을 만든 상태에서 만루가 되었습니다. 3번 타자 고승민이 친 공이 우측 높게 뻗어갔습니다. 우익수를 넘겼고요. 담장도 넘기네요? 관중석에 툭 떨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랜드 슬램입니다. 14대 1에서 14대 3이 되더니, 만루 홈런 하나로 14:7이 이루어졌습니다.
5회 말엔 안타, 2루타로 노아웃 2, 3루가 만들어진 상태에서 땅볼과 좌익수 앞 안타 등으로 2점을 추가로 냅니다. 14:9.
나승엽과 이정훈의 연속 안타로 6회 말에 노아웃 1, 3루가 또 이루어졌습니다. 정훈 차례였습니다. 정훈의 응원가, 한 번 뽑아보겠습니다. 왜냐고요? 정훈 응원가는 신나잖아요. 오! 정훈! 자이언츠 정훈! 오오오오오! 오오오오오! 날려버려! 그 순간 정말 날아가더라고요! 왼쪽 높게! 담장! 담장 밖으로 말이죠! 이번엔 3점 홈런입니다. 와. 스코어 14:12까지 따라왔습니다.
대타 최항과 황성빈의 연속 안타로 노아웃 1, 2루에서 윤동희가 희생번트로 1아웃 2, 3루가 만들어진 7회 말입니다. 설마, 여기서 역전이 되겠어?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겁니다. 3번 타자 고승민은 날아오는 공을 때렸습니다. 그 공은 유격수와 중견수 사이로 흘러가고야 말았군요. 결국 2, 3루 주자가 모두 들어옵니다. 스코어 14:14! 결국 이걸 동점으로 만듭니다. 거기서 끝났느냐? 그럴 순 없죠. 다시 만루가 만들어진 상태에서 6번 타자 이정훈이 사고를 칩니다. 그리고 스코어는 15:14. 역전에 성공합니다.
그날 사직은 뒤집어졌습니다. 폭동이 일어나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 동시에, 이 소식을 들은 KBO 10개 구단 팬이 티빙으로 모여 시청률 92% 이상을 달성했다는 이야기까지 들었습니다. 사실 말도 안 되죠. 13점 차를 따라잡고, 역전이라니!
아쉽게도 이 드라마는 완벽하게 이루어지진 않았습니다. 8회 초엔 1점을 내주고 15대 15가 된 이후에 연장전으로 이어졌고, 결국 오후 11시 50분 12회까지의 사투는 결론 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봤던 올해의 경기 중 가장 무시무시했다 자부할 수 있겠습니다.
드리님이 말씀하신 게 있죠. 야구에 있어 전 유죄 확정(?)이라고요. 100번 공감하고 인정합니다. 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유죄의 주체는 제가 아니라 롯데 자이언츠입니다. 지난번 편지 이후 반성의 시간을 가졌지만, 고해성사는 롯데가 해야 하는 걸로 결론 났습니다. 시원한 맥주를 눈앞에 떠오르게 했다가 순식간에 사라지게 하는 마술을 보여주는 롯데 시네마! 드리님이 겪으셨던 엘꼴라시코 (롯데 VS LG)와 함께 제가 겪은 영호대전 (롯데 VS 기아) 등만 보더라도, 자이언츠는 천벌을 받아야 합니다. 롯데 팬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밀당 전문가니까요. 이건 고소해서 유죄판결 받아낼 수 있습니다! 아예 져서 맥주 마시러 가게 해주던가, 확실히 이겨서 맥주 따윈 떠오르지 않게 해주던가! 둘 중 하나면 되는데, 왜 어렵게 만드는 걸까요? 야구를 이겨도 술 마시고, 져도 술 마시는 게 모두가 아는 비밀이긴 하지만, 롯데 자이언츠에 책임을 묻고 싶었습니다. 근데 롯데 탓이 100% 맞긴 해요.
이쯤 되면 궁금한 게 하나 남으셨을 겁니다. 바로 이 편지의 부제 말이죠.
그런데 치킨집에서 왜 이렇게 무를 많이 주시는 겁니까? 무를 무려 2개씩이나…….
치킨이 맛있어야 치킨집을 재방문하지, 무가 맛있다고 치킨집을 가지 않습니다. 야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구가 재밌어야 야구장을 재방문하죠. 야구에 흥미가 없고, 다른 게 이슈화가 되면 야구 보러 왜 갑니까? 주인공 측면으로 말씀하셨던 심판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최근 경기를 보면서 제가 한동안 야구 중계를 볼 자신이 없었습니다. 오심 5개. 저에겐 충격이었습니다. 오심 5개로 롯데가 진 것도 충격이지만, 이 오심을 좋은 방향으로 수정할 기회를 수없이 놓쳤다는 게 화나더라고요. 비디오 판독의 횟수, 체크 스윙, 고의성 여부 등등 애매모호한 부분에 대해 확실하게 규정을 만들 기회는 그동안 많았다고 봅니다.
저는 야구를 잘 모릅니다. 관중으로 느끼는 바만 말하자면, 심판들의 진행 방향이 현장과는 사뭇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겁니다. 비디오판독을 굳이 2개만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경기 진행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 그렇다면 그만큼 경기 퀄리티는 잘 유지하고 있을까요? 경기의 공정성을 높이려면 비디오 판독을 2개로 한정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여깁니다.
스윙 판정 여부, 고의성 판정 여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겨울에 KBO 차원에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스윙인가를 규정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만, 지금까지도 해당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는 건 놀라울 따름입니다.
고의성 판정을 현장에서 본 심판들이 아닌, 비디오 판독하는 이들이 한다는 것 또한 황당한 부분입니다. 고의성! 어디까지 고의로 봐야 할까요? 슬라이딩할 때 베이스로 향하는 다리를 가능하면 바닥에 붙이는 게 사실 맞죠. 잘못하면 다른 선수들이 다칠 수 있으니까요. 근데 만에 하나 순간적으로 다리를 높여서 2루수 다리를 건드렸다? 그렇다면 이건 의도된 바입니까? 악의가 없었다는 걸 증명하려면, 결국 슬라이딩할 때 베이스로 향하는 다리를 바닥에 어떻게든 붙여야 하겠군요. 다리가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죠. 도대체 어떤 걸 보고 고의성 여부를 판단하는 걸까요? 그리고 현장보단 비디오 판독으로 해당 내용을 결정하는 게 옳은 걸까요?
https://www.dk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447613
한 가지 추가로 더 언급하자면, 심판들의 안전한 판정을 위해 접촉 금지 규정이 잘못된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심판들의 권위가 더 상승했다고 여기는 게 저만 그런 거라면 사과의 말씀 전하겠습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오심들에 대해 관중들과 선수들을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치킨집에서 맛있는 무 먹으러 가는 기분을 느끼게 될 겁니다. 심판들이 바라는 게 그거라면 지금 하시는 것처럼 하면 됩니다.
이제 왜 제가 부제로 무 이야기를 했는지 감이 오셨을 거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센스있는 드리님이라면, 이상한 걸 하나 더 발견하셨을 겁니다. 왜 굳이 무를 ‘2개’나 더 줬냐고 말이죠.
2024년 6월 25일 기준, 롯데는 무승부를 총 2번 기록했는데, 제가 무려 2번을 챙겨봤습니다. 놀랍게도 말이죠. 무 2개를 본 것도 참 신기하기 그지없습니다. 그것도 둘 다 질 거라고 예상했던 경기에서 말입니다.
드리님, 당신은 참 멋집니다. 마치 양념 반 후라이드 반만을 추구하는 저 같은 사람은 따라잡을 수 없는 이라고 여깁니다. 드리님은 마요네즈를 넣은 치킨, 간장을 넣은 치킨, 수원 왕갈비 통닭 소스를 쓴 치킨 등 늘 새로운 걸 찾아나가는 이입니다. 이런 면모를 심판들이 좀 배워야 할 거 같은데요. 드리님의 열정을 전 늘 응원합니다. 기타에 대한 취미가 결국엔 공연까지 이어졌단 말을 들으니, 제 열정마저 되살아나는 느낌이네요. 한편으론 저 역시 악기 하나 다루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야구 빠돌이가 다른 취미에 관심 가도록 만든 드리님이 엄청나다는 걸 인정하셔야 합니다. 동시에 언젠가 진행할 다음 공연은 참석하고 싶습니다.
한편으론 제가 드리님을 보고 배우는 것처럼 드리님 역시 저와 닮아간다고 느껴 기쁩니다. 야구에 대한 헤비한 접근이 편지마다 발전하는 걸 보기에 흐뭇합니다. 우리의 서로를 향한 편지가 각자의 좋은 부분(?)을 배우는 계기가 되는 게 아닐까 싶군요.
하여튼 롯데의 “왜 이기는 경기를 자꾸 하는 건데, 왜 질 거 같으면 꼭 이기는 건데!”가 후반기에도 이어지길 바라며, 이 편지를 마무리하겠습니다.
후반기엔 같이 야구 경기를 보러 갈 수 있길 바라는 주니 킴 올림.
[이전 편지]
http://brunch.co.kr/@drikim/31
[이후 편지]
http://brunch.co.kr/@drikim/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