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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글쓸러 Nov 07. 2024

확률 99.7%라고 포기? 아니면 0.3%를 믿겠나?

정답은 없다. 단지, 확률에 갇히고 싶지 않을 뿐.

미안해, 우리 그냥...... 친구로 지내자. 


20대 초반의 저는 이성에게 많이 차였습니다. 차이고 나면 정신이 멍했죠. 그러다 보면 갑자기 슬픔이 몰려왔어요. 슬픔을 잊고자 술을 많이 마셨죠. 불행 중 다행히 술 마실 때만큼은 친구들이 있어 외롭지 않았어요. 술 한잔과 함께 친구들과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덕분에 차였던 기억들은 금방 잊을 수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이야기들이 거의 떠오르지 않아요. 그런데 유독 기억에 남는 조언이 딱 한 가지 있죠.


출처, Pixabay


야!!! 이 세상에 이성이 절반이야! 네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차고 넘쳐!


차였을 당시, 만날 수 있는 이성이 많다는 말을 위안으로 삼아 우울함을 극복할 수 있었지만, 어느 날, 친구가 건넨 이 조언을 곰곰이 돌이켜봤죠.


‘정말 내가 만나서 데이트할 수 있는 이성이 차고 넘칠까?’ 

‘실제로 평생 데이트할 수 있는 이성의 수치를 계산해 볼 수 있을까?’ 


뇌피셜 말고는 이 수치를 계산할 수 없을 거라 여겼어요. 그런데 실제로 계산한 사람이 있더라고요? 바로 경제학자 베커스입니다. 베커스는 얼마나 많은 여성들과 데이트할 수 있을지 자신이 원하는 이성의 요소들을 고려하여 계산했어요. (통계청 자료를 근거로 해서 계산했다는 거 참고 바랍니다.) 



요소 1. 근처에 사는 여성 : 베커스는 런던에 살았고, 약 400만 명


요소 2. 24 - 34세 여성 : 약 20퍼센트. 약 400만 명 → 약 80만 명


요소 3. 독신자 : 약 50퍼센트로, 약 80만 명 → 약 40만 명


요소 4. 대학 학위 여부 : 약 26퍼센트, 약 40만 명 → 10만 4000명


요소 5. 베커스가 매력을 느낄 여성 : 약 5퍼센트, 10만 4000명 → 5,200명


요소 6. 베커스에게서 매력을 느낄 여성 : 비관적으로 5퍼센트로 예상, 5,200명 → 260명


요소 7. 사이좋게 지낼 여성 : 10퍼센트로 예상, 260명 → 26명!


[러브 팩추얼리 166, 167쪽]



드리님, 위의 내용을 믿을 수 있나요? 7개 조건을 고려했을 뿐이에요. 400만 명 중에 데이트할 수 있는 여성이 겨우 26명밖에 안 된다고요? 이 결과를 보고 저는 암울해졌어요.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기 때문이죠. 물론 대한민국을 기준으로 하면 인구수의 차이로 인해 조금 다를지도 몰라요. 하지만 이런저런 조건을 따진다면, 저 역시 만날 수 있는 이성의 수가 베커스랑 비슷할 겁니다.


이 이야기를 왜 하냐면, 얼마 전에 커플 지옥 솔로 천국의 슬로건을 가진 솔로 부대 이등병 재입대를 했기 때문이죠…… 가 아니라, 야구도 마찬가지라 여겨서 그렇습니다. 게임을 시작할 땐, 승률은 50%, 50%이지만, 게임이 진행될수록, 확률은 달라집니다. 


2024년 6월 25일, 사직야구장에서 롯데 자이언츠와 기아 타이거즈가 경기를 펼쳤습니다. 4회 초가 되었을 무렵, 초록 모자 포털 사이트에서 예측한 각 팀의 승률은 아래와 같아요.


기아 타이거즈 승리확률 99.7% 

롯데 자이언츠 승리확률 0.3%


4회 초 무렵, 14대 1로 패배에 가까워졌으니, AI의 판단은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이후 내용도 확인할까요? 인공지능이 예상한 승리확률이 맞아떨어지는지 말이죠.



4회 말


시작부터 1아웃? 오? 수비수가 실수했네? 일단 1루 도착. 이야? 이번엔 2루타야? 아웃 카운트 전혀 없는데, 2, 3루면 2점은 어떻게든 나겠구만! 아이고! 땅볼이야? 그래도 3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와서 1점은 얻었네! 14대 2!

이번엔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 덕분에 주자가 또 홈으로 들어와서 14대 3! 그래, 지더라도, 끝까지 하는 거야! 

2루타에, 볼넷으로 만루 상황? 어휴……. 우리 팀은 꼭 만루가 되면, 꼭 점수 못 내고 경기가 끝나는데……. 그런데 왜 타격한 공이 저 멀리 높이 날아가고 있는 거지? 우측 높이 뻗어 나가네? 우익수가 못 잡네? 왜 담장을 넘어? 관중석에 떨어진다고? 만루 때, 꼭 허무하게 경기를 끝내는 우리 팀이 이번에 4점 홈런이라고? 스코어 14대 7! 

고맙다. 그래도, 13점 차보단, 7점 차가 훨씬 낫네. 허허허.


5회 말


애매한 위치에 떨어지는 좌익수 앞 안타, 왼쪽 구석으로 떨어지는 2루타로 노아웃 2, 3루.

여기서 2루수 땅볼로 1아웃이 되긴 하지만, 3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며 14대 8.

좌익수 앞 안타 덕분에, 스코어 14대 9.

이상한데? 우리 팀이 이렇게 열심히 하는 팀이라고? 

오늘, 도핑 테스트라도 해봐야 하는 거 아냐?


6회 말


안타, 안타가 나와서 노아웃 1, 3루가 나올 수 있긴 해.

그건 그렇다 쳐.

근데 여기서 또 공이 왜 저기 멀리 날아가고 있는 거야?

보통 이건 경기당 한 번만 나와야 하는데?

이럴 때 보통 해설자가 이렇게 말하지.

왼쪽 높게... 담장... 담장.... 담장...! 넘어~ 갑니다! 

그게 내 귀에 들리는 거 같은 기분은 뭐지?

이렇게 3점 홈런이 터진다고? 

스코어 14대 12?

13점 차에서 7점 차, 5점 차가 되더니, 이젠 2점 차?

혹시나 이걸 이기는 거 아니겠지?

에이……. 설마……. 


7회 말


우익수 앞 안타.

2루수, 유격수 사이를 빠져나가는 안타.

희생번트.

덕분에 1아웃 2, 3루까지 왔어. 

아마 모두가 나랑 같은 심정이었을 거 같아. 

여기서 안타 하나면, 동점인데, 근데 그게 될까? 우리 팀은 역시나가 혹시나고, 혹시나가 역시나인데? 우리 팀의 수많은 빅데이터를 내 머릿속으로 돌려봤을 때, 여기서 점수 날 리가 없는데? 근데, 내 머리가 고장 났나 봐……. 이번 기회에 머리를 바꾸든가 해야지!

유격수, 중견수 사이 떨어지는 안타로 주자가 둘 다 들어오며 결국 동점!


거기다, 기아 타이거즈 투수의 실책과 볼넷으로, 또다시 1아웃 만루 상황.

이건 안 될 거 같은데……. ‘될 거 같은데’라고 생각할 때, 초 치는 게 우리 팀이니깐 반대로 생각해야지. 근데, 저 멀리 우익수가 잡을 수 있는 공을 날리고, 그 공을 우익수가 잡자마자, 3루 주자가 홈으로 열심히 뛰네? 역전하네?


스코어 15대 14.

이거 누가 잘못된 거야? 

빅데이터로 안 될 거라 믿었던 내 머리가 고장 난 거야?

아니면, 초록 모자 포털 사이트의 AI를 바꿔야 할 때가 된 거야?

우리 팀 선수들이 몸보신이라도 했나?

도대체 무엇이 이걸 이렇게 만든겨?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상상 속으로만 그려왔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죠.

상상 속에서만 생각하던 13점 따라잡기. 그리고 역전하기.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고, 도파민이 팡팡 터져 나갈 만큼, 행복하더라고요.

2년 전엔 23대0의 패배를 목격했는데, 올핸 13점 차를 끝내 역전하는 걸 두 눈으로 본다고?

그날은 정말 미쳐 날뛰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기아가 결국 1점을 더 내면서 스코어는 15대 15가 되었어요.

그렇게 엄청난 사투를 벌인 끝에 연장까지 경기가 이어졌고요.

결국 오후 11시 50분에 경기가 무승부로 끝나고 맙니다.


이 일은 최초인 거 아시나요?

한국 야구 KBO, 일본 야구 NPB, 미국 야구 MLB 통합으로 말이죠.

그만큼 엄청난 일이라는 겁니다.


0.3%밖에 되지 않는 게임을 승리로 이끌고자 했고, 무승부로 결말이 난 6월 25일 경기. 

4회 말부터 7회 말까지 벌어진 일을, 초록 모자 포털 사이트가 예측한 롯데 자이언츠 승리 확률로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4회 말 : 0.3% (에러) → 0.6% (좌중간 2루타로 노아웃 2, 3루) → 0.5% (2루 땅볼 & 3루 주자 홈으로 & 스코어 14대 2) → 0.7% (중견수 앞에 떨어뜨리는 안타 & 3루 주자 홈으로 & 스코어 14:3) → 0.7% (좌중간에 떨어지는 2루타, 1아웃 2, 3루) → 0.9% (볼넷, 1아웃 만루) → 3.5% (만루 홈런, 스코어 14:7)


5회 말 : 4.8% (좌익수 앞 안타) → 8.1% (왼쪽 구석으로 떨어지는 2루타로 노아웃 2, 3루) → 7.1% (2루수 땅볼로 1아웃 & 주자가 홈 & 스코어 14대 8) → 7.6% (좌익수 앞 안타로 3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며 스코어 14:9)


6회 말 : 5.6% (우측 앞 1루타) → 6.9% (우측으로 향하는 안타로 노아웃 1, 3루) → 22.4% (3점 홈런, 스코어 14대 12)


7회 말 : 30.7% (우익수 앞 안타) → 40.3% (2루수, 유격수 사이를 빠져나가는 안타로 노아웃 1, 2루) → 39.0% (희생번트로 1아웃 2, 3루) → 59.3% (유격수와 중견수 사이에 떨어지는 안타 & 두 명의 주자가 홈으로 & 스코어 14:14) → 72.6% (투수 에러, 1아웃 1, 3루) → 72.6% (볼넷으로 1아웃 만루) → 77% (우익수 희생플라이 & 3루 주자 홈으로 & 스코어 14:15)



0.3%의 승률 게임을 77%까지 만든 게 롯데 자이언츠입니다. 제 몸속에 흐르는 DNA가 울부짖습니다. 롯데 자이언츠, 자랑스럽다. 사랑한다!!! 솔로 부대에서 영원한 군복무를 해도 좋아!! 그러니, 가을야구 좀 가고, 이기고, 우승도 좀 하자!!!



이 엄청난 경기 이후, 한 달이 벌써 흘렀고, 하반기 스타트도 영 좋진 않아요. 그러나 초반에 패패패패패로 가득했던 때를 떠올리면, 어떻게든 해내고자 하는 모습들이 보이긴 해요. 비록 에러도 나오고, 끝내기 홈런 맞고 지더라도 말이죠. 지금까지 노력했던 모습들을 종합적으로 돌아볼게요. 초반에 흉작이었을지라도, 흉작의 결과물을 꽤 좋은 상품으로 어찌저찌 만들어서 시장에서 팔 수 있는 정도로는 되었다고 봐요. 하반기에 큰 성취를 냈으면 좋겠지만, 못 내더라도 어떤가요? 솔직히 포기했어요.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올해의 새로운 선수들의 조합 등을 보면서 내년에는 좀 더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의 약점을 좀 더 명확히 파악한 명장과 코치들이 이 문제들을 수정해 나간다면? 선수들도 자신의 약점을 더 강하게 보강한다면? 내년에는 우리가 원하는 가을야구를 8년 만에 갈 수 있지 않을까 믿어보려고요. 드리님이 언급했던 올스타전에서의 이기는 일도 매해 꾸준히 이루다 보면, 그것조차 습관이 될 테니 롯데 자이언츠의 정규 시즌 우승, 한국 시리즈 우승에도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올스타전 롯데 우승, 출처 MK 스포츠


드리님. 사실 드리님과 저는 연관성이 전혀 없는 사람이죠. 드리님이 공대면, 저는 자연대였죠. 드리님과 제 나이 차이는 한 살에 불과하지만, 초중고도 완전히 달랐고요. 어쩌면 저희는 서로를 영원히 몰랐을지도 모르지만, 단 하나가 저희를 연결했습니다. 바로 강연이죠. 강연에 관심을 가졌던 제가 중학교 은사 선생님께 추천받은 인물이 바로 드리님이었죠. 그게 계기였습니다. 지금도 기억납니다. 드리님이 “일단 만나보자”고 했던걸요. 롯데 자이언츠의 상징에서 불고기 버거를 먹으면서 소소하게 대화를 시작했던 게 생생히 떠오릅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의 만남도 사실 극악의 확률로 이루어진 게 아닐까요? 이상형을 만나고자 한다면 400만분의 26 이하의 말도 안 되는 확률을 뚫어야 하는 사랑이나, 6월 25일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해낸 롯데처럼 말이죠. 단순히 인연에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 이렇게 13번의 편지를 주고받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이 역시 대단하지 않나요?


확률은 확률뿐이라고 믿어요. 그 확률에 갇히느냐 아니냐는 우리의 선택일 뿐이라는 걸,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이 몸소 보여주었어요. 우리 역시 편지 주고받는 이 인연을 생각한다면, 확률이 중요하긴 하지만 때론 무시하는 것도 답이라는 걸 알 수 있죠. 


출처, 통계청


나이가 들어가며 누군가에게 편지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게 무척이나 행복합니다. 제 편지에 대해 돌아올 답장이 기대되는 올 한 해가 너무나도 즐겁습니다. 드리님이 생각하신 것만큼, 저에게도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편지를 주고받은 드리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하반기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아프지 않고, 늘 건강해지길 바랍니다. 이젠 정말 운동을 더 하고, 잘 챙겨 먹어야 하는 나이라는 걸 저 역시 몸소 실감하는 만큼, 오래오래 살면서, 편지 계속 주고받아 봅시다.


0.3%의 확률보다도 더 극악의 확률 속에서 만난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는 주니 킴 드림. 


PS. 하반기에도 저는 늘 하던 대로 살 거라고 봅니다. 글쓰기를 더 잘하고자, 글을 쓸 거고요. 독서를 이전보다 더 집중해서 깊이 할 겁니다. 꾸준히 러닝머신에 30분 이상, 근력운동 30분 이상 하는 걸 유지하는 하루살이 인생 역시 유지해 볼 거고요. 단순해 보이지만, 이 세 세 가지만이라도 상반기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이전 편지]

http://brunch.co.kr/@drikim/32


[이후 편지]

http://brunch.co.kr/@drikim/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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