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2024년 3월 23일 개막전 이후, 롯데 자이언츠는 연속 4연패를 했습니다. 이후 우천 취소 경기가 하나 생겨 여유를 챙긴 뒤, 3월 29일 NC 다이노스를 상대로 간신히 1승을 쟁취했습니다. 다음날, 기사 하나가 떴습니다. 트레이드 관련 소식이었습니다. 전년도 포스트 시즌 종료 후부터 올해 7월 31일까지 진행할 수 있고, 각 팀의 선수를 맞교환하는 게 바로 트레이드입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롯데 자이언츠 투수와 LG 트윈스 타자였습니다.
투수는 우강훈 선수입니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롯데 자이언츠 지명받은 사이드암 투수입니다. 군대 문제도 미리 해결했고요. 심지어 150km 속도로 공을 던질 수 있는 선수죠. 쉽게 설명할게요. 특이하게 던져서 타자들이 건드리기 쉽지 않은데, 심지어 구속도 빨라요. 군대도 해결해서 이제 경험만 쌓으면 잘 클 거 같은 선수란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선수를 타 팀에 보낸다? 왜요?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선수를 데리고 오려고요? (사이드암이란 몸을 웅크린 후 팔을 어깨와 평평하게 하여 공을 옆으로 던지는 자세입니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게 아닌 옆구리로 던지는 투수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겠습니다.)
우강훈 선수가 가고, 롯데에 새로 온 선수는 미국 마이너리그 중 시카고 컵스에서 뛰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후 LG로 왔지만, 주전이 확고한 트윈스에서 기회를 잡지 못한 타자입니다. 트레이드되기 전까지 들어본 적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5년간 정규시즌에서 96경기를 뛰었습니다. 1년 동안 경기가 144경기인데, 5년 동안 1년의 경기를 채우지 못했다는 거죠. 그런데 타율은 0.250…….
드리님도 기억나실 겁니다. 같이 그러셨잖아요? 이 트레이드 왜 이루어진 거야? 저도 동의했습니다. 명장 김태형 감독님의 선택이라니 이유가 있다는 건 알겠는데……. 전문가도 아니라서 뭐라고 말할 순 없는 내용이지만, 정말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에 말이죠.
시간이 흐른 뒤, 그 선수는 성적으로 모든 걸 증명했습니다. 2024년 6월 20일, 30경기 연속 안타에 성공하였습니다. 이는 KBO 기준으로 연속 안타 기록 3위에 해당합니다. 1999년 롯데 자이언츠 박정태의 31경기가 2등이고요. 2003년~2004년 박종호의 39경기 연속 안타가 1등입니다. 앞의 두 기록을 못 깼지만, 대단한 퍼포먼스였죠.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타율 0.333, 홈런 13개, 안타 86개, 타점 56개입니다.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 기준으로 타율 3등, 홈런 1등, 안타 7등, 타점 5등의 엄청난 성적이죠. 가장 무시무시한 건 주자가 있거나 만루가 있을 때의 타율입니다. 무려 1.0입니다. 만루이면 무조건 치고 점수 확실히 낸다는 거죠. 실제로 8월 18일 일요일, 키움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도 만루 상황에서 안타를 치며 점수를 냈습니다. (이 모든 게 2024년 8월 19일 월요일 기준입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손호영. 유명 그룹 god의 손호영보다 더 잘 생겼어요. 제 눈에는 말이죠. god 손호영보다도 앞으로 유명해질 건 확실합니다. 이젠 롯데 자이언츠의 자랑스러운 타자입니다.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죠. WPA(승리기여확률 합산, 스포츠투아이 출처, 2024.08.12. 기준)는 2.76으로 팀 내 1위로, 이 선수를 데려오지 않았다면 올해 우리 팀은 어쩔뻔했나 싶을 정도입니다. 실제로 롯데 자이언츠도 올 시즌이 끝나자마자 손호영 선수에 대한 체계적 관리를 할 예정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중요한 선수인데도, 부상으로 2번이나 정규시즌을 이탈했거든요. 아무래도 주전보단 백업으로 뛴 시기가 상당히 길었기에, 몸 관리가 부족했던 거 같아요.
뭐? 150km 던지는 군필자 투수를 준다고? 왜? 과거의 주니야. 그거 잘한 거야! 우리는 지금 역대급 트레이드에 성공한 거라고! 명장의 선택엔 다 이유가 있는데, 넌 그걸 모르냐. 한심하게…….
2022년입니다. 우연히 마주친 한 선수가 있습니다. 생각보다 쑥스러움이 많은 저는 아는 척할 용기가 부족했습니다. (드리님은 무슨 소리냐고 하실 수도 있지만, 진짜입니다) 제가 본 걸 알아본 그 선수가 먼저 말을 걸어주더라고요. “안녕하세요.” 참 기뻤습니다. 어찌 보면 인사할 필요도 없었는데, 그렇게 건넨 말 한마디가 저에겐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습니다.
“하, 왜 저 타이밍에 도루해서 죽는 거야? 좀 참지.” 2023년, 아버지가 경기를 보며 자주 하신 이야기입니다. 도루하다 아웃당한 선수가 저한테 인사를 해줬던 이입니다. 그때마다 전 반문했습니다. “아버지, 아예 못하는 것도 아니고! 하다 보면 나중에 더 잘하겠죠! 좀 믿고 기다려 보시죠!” 그날의 인사가 아버지로부터 그 선수 편을 들게 만든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느낌이랄까요? 언젠가는 밝게 빛나는 멋진 선수가 되리라 믿었습니다. 근거는 전혀 없었지만요. 하여튼 아버지에게 그 선수를 좀 더 믿어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2024년 4월 21일 일요일입니다. 전날 비가 온 탓에, 일요일에 두 경기를 진행하는 더블 헤더가 되었고, 부모님께 효도하고자 저는 이 두 경기를 모두 예약했습니다. 이때, 믿을 수 없는 장면들을 목격했죠. 도루 전문가인 그 선수의 첫 번째 홈런을 보고 말았습니다. 두 번째 홈런도 곧바로 치더라고요? 대박인데? 세 번째 홈런을 쳤을 땐, 말을 잃었습니다. 온몸에 소름이 돋더군요. 4월 24일 SSG와의 경기도 직관했습니다. 와, 그 유명한 그라운드 홈런을 목격할 줄이야. 그라운드 홈런은 우리가 흔히 아는 홈런은 아닙니다. 상대방의 수비 실수 등으로 단번에 1루, 2루, 3루를 거쳐 홈까지 들어오는 걸 그라운드 홈런이라고 합니다. 이걸 저에게 밝게 인사한 그 선수가 몸소 보여줬습니다. 와우!
이후 부모님의 반응이 매우 달라졌습니다. 아버지는 늘 그 선수만 보면 웃음이 가득하십니다. 어머니는 귀여워 죽겠다는 표현을 자주 하시죠. 전 다행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밝게 먼저 말 걸어준 그 선수가 자신만의 야구를 활기차게 보여주었기에 말이죠. 앞으로도 기대가 됩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멋진 모습을 보여줄 그 선수. 훗날 롯데 자이언츠의 원클럽맨이 되길 바라며 응원하고자 했습니다. 갑자기 들려온 트레이드 소식 전까진 말입니다. 충격이었습니다. 2024년 7월 31일, 트레이드 마감 직전에 수많은 소식으로 팬들의 마음을 불타게 했습니다. 이 선수를 왜? 설마? 진짜로? 공식적으로 들린 이야기는 없었지만, 비공식적으론 이런저런 이야기가 계속 들려왔습니다. 아니겠지, 아닐 꺼야. 그렇게 믿었습니다. 다행히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프런트와 현장 모두가 트레이드를 동의했었고, 자이언츠 고위층에서 마지막에 거부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더라고요. 이야기의 진실을 저는 알 수 없지만, 하여간 팬으로서 다행이었습니다.
그 선수는 바로 황성빈입니다. 황성빈 선수는 도루 41개를 성공하며, 롯데 역사상 4번째로 40도루를 달성했습니다. 이 기록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도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2024년 8월 19일 월요일 기준으로, 황성빈 선수를 제외한 롯데 자이언츠 선수 도루 개수가 41개입니다. 황성빈 선수의 도루 숫자와 같다는 거죠.
아쉬울 때도 분명히 있지만, 황성빈 선수는 롯데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인 건 확실합니다. 팬으로서 장담합니다. 우리 편이니깐 이뻐죽겠지만, 남의 팀에 갔으면 정말로 밉상이었을 겁니다. 변칙적인 플레이로 팀을 승리로 나아가게 하고, 100%에 가까운 도루 성공률로 득점하는 데 이바지하니 열받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저는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아니, 쟤 우리 애였는데!!! 타 팀 가서 도루하니깐 짜증 나는데?
드리님, 새옹지마란 사자성어가 떠오릅니다. 좋게 생각한 일이 실제론 안 좋게 다가올 수 있고, 별로일 거라고 여겼던 상황이 행운으로 찾아올 수 있다는 말이 2024년 롯데 트레이드와 딱 부합하더라고요. 롯데의 희망이 될 거라는 투수를 보내서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무너진 하늘을 봉합하고, 오히려 하늘을 저 멀리 우주로 보내버리는 무시무시한 능력을 보인 손호영 선수. 시즌이 끝나지 않은 입장에서 섣부른 판단일 수 있지만, 트레이드 최고 성공 사례라고 자부하겠습니다. 만약에 보냈더라면, 팬으로서도 롯데로서도 땅을 치고 후회했을지도 모를 황성빈 선수 트레이드. 물론 이 트레이드 이후의 결과는 예측할 수 없지만, 이루어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이언츠의 트레이드처럼, 결과를 알 수 없는 건 제 인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뛰어난 부분이 없습니다. 제 장점을 말하라 하면, 뭘 말해야 할지 고민될 정도였으니까요. 잘하는 건 없었지만, 잘하고 싶었던 건 있었습니다. 바로 글쓰기입니다. 하지만 원하는 것과 실제는 다르더라고요.
답이 없다. 안 되겠다. 나가라.
글을 못 쓴다는 이유로 상담받으러 가진 5분 만에 쫓겨나며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 말을 듣고 전 다짐했습니다. 억울해서라도 어떻든 해내겠다고. 대학생인데, 고등학교 언어 은사님을 찾아가서 조언을 구했습니다. 친구들과 직장인들에게 제 글을 보여주고 말로 두들겨 맞으며, 글을 고쳐나갔습니다. 덕분에 원하는 곳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정말로 명필가가 되고 싶었거든요. 이후에 글쓰기 모임에 나가 방법론을 공부했고, 저 혼자 글을 써 내려갔으며, 나중엔 책 쓰기 스승님을 만나서 배움을 얻어 결국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지 못한다고 혼났던 제가 바뀐 겁니다. 인생은 예측 불가능 그 자체입니다.
‘원래’와 거리를 두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시도해 보려 합니다. 새로운 자극과 경험을 인생의 변곡점으로 삼아 변화를 체감하고 싶거든요.
이렇게 말했던 드리님의 지난 편지에 공감합니다. 저도 ‘원래’라는 말을 정말 싫어합니다.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게 어디겠습니까? 인생은 알 수가 없는걸요? 새옹지마란 말처럼 좋고 나쁜 건 끝까지 가봐야 아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이 상태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원래’와 거리가 멀어져야 하고, 고정이란 걸 변화를 통해 바꿔나가는 길을 선택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손호영 선수라는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을 얻은 롯데의 트레이드처럼요.
황성빈 선수의 트레이드 결렬 사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은 새옹지마이기에 반드시 변화를 추구할 필요는 없지만, 저는 이 또한 전환의 계기가 되리라 여깁니다. 황성빈 선수에게 동기부여를 했으니, 변화를 택하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변화를 선택한 모순적인 결과가 나올 겁니다. 두고 보시죠. 하지 않겠다고 한 선택조차도 분명 ‘원래’에서 벗어날 것이니까요.
드리님 입장에선 제가 ‘원래’라는 것과 가까운 사람처럼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속도가 느릴 뿐, 늘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입니다. 대신, 그 변화의 포인트를 확실하게 가까이 체감하게 되면 그 누구보다 빠르게 바꾸고자 노력하죠. 다양한 경험으로 삶을 채우고자 하는 드리님과 다르게, 저는 하나를 깊숙이 파고들면서 새로운 결과를 만들고자 합니다.
저에게 글쓰기가 바로 ‘원래와의 거리두기’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예전의 저는 작가의 재능조차 없던 사람입니다. 선천적으로 잘 쓰는 사람도 있겠지만, 후천적으로 글을 잘 써 내려갈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믿음 하나로 처음의 저와 멀어지고자 했습니다. 덕분에 삶이 달라졌죠. 그렇다고 명필가가 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원래와의 거리두기’를 계속하려고요. 발전한 지금과도 멀어지고자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대한민국 최고의 작가에 도달하지 않을까요? 물론 그때도 거리 두기를 선택한다면, 세계 최고까지 나아갈지 모르죠. 인생은 알 수 없으니까요. 롯데에 와서 각성한 손호영 선수, 작년보다 더 뛰어난 도루 실력을 보여준 황성빈 선수를 보면 변화는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봅니다.
드리님과의 편지 역시 ‘처음’에서 벗어나는 제 나름의 큰 도전입니다. 혼자만의 글쓰기에서 탈피하여 같이 글을 써 내려가며 새로운 발전을 체감하고 있거든요. 계기를 준 드리님에게 늘 고마운 마음이 있다는 거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어떻게 보면, 드리님이 저의 ‘원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 소중한 분이네요. 그러니 다음 야구장 때 제가 롯데리아 새우버거 하나 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의 마음으로! 저도 좋아하거든요.
트레이드를 통해 어떻게든 가을야구를 추구하던 롯데 자이언츠. 트레이드 덕분에 제2의 인생을 맞이하며, 롯데 없어서는 안 될 선수가 된 손호영 선수. 트레이드 때문에 새로운 계기를 가진 황성빈 선수. 편지라는 글쓰기 트레이드로 ‘원래’에서 벗어나고자 모색하는 드리와 주니. 이들처럼 도전과 변화에서 멀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2024년은 이제 4개월 정도 남았습니다. 2025년이 되었을 때, 저희는 2024년의 ‘원래’와 얼마나 거리가 멀어져 있을까요? 기대되지 않습니까?
9월에는 새우버거와 함께 사직 야구장에서 마주하길 바라는 주니 올림.
[이전 편지]
http://brunch.co.kr/@drikim/33
[이후 편지]
http://brunch.co.kr/@drikim/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