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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프릴 Apr 04. 2020

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

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새다



1. 복직한 지 이제 4년이 된다. 아이를 낳은지는 벌써 만 5년이 되었다. 그 뜻은 즉 결혼생활은 그냥 커피라면 육아생활은 티오피라는 그 인터넷 떠들던 유머들이 과연 정말이었음을 온몸으로 깨달으며 살고 있다는 말이다. 사실 워킹맘이란 이름 자체에도 고난이 묻어있는 듯하다. 부족한 시간, 체력적 고갈, 동분서주하며 무엇이든 잘 해내려고 애쓰는 모습, 때로는 멋있어 보이지만 누군가 모성애 부족이라고 폄하하는 말들에 가끔 자신조차 의문을 제기하게 되는 그런 고난. 우리를 위해 준비된 유리천장은 아주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자율주행차가 세상에 선보이며 이전에 없던 세상이 펼쳐진다는 지금도 여전히. 크게는 승진, 임원, 발탁,  사회적 성공, 에서 작게는 일상 속의 대화, 선입견에 이르기까지 그런 것들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행동, 생각, 희망, 꿈을 규제한다. 결국엔 스스로가 만든 상자 속에 갇히게 되고 내 소망하는 바는 오로지 개인적 안녕, 일상의 유지만이 되고야 만다. 헤쳐나가는 삶은 어렵고 안녕감 추구는 간편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것은 아주 인간의 기본적 문제라 마땅히 원해야 하는 일이고 예전의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간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도 점점 잊어버린 채.


2. 책 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 (원제: 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새다) 에는 자신의 삶을 개척한 10명의 작가들의 삶이 소개되어있다. 사실은 이 책의 저자인 이화경 작가의 삶까지 11인의 삶이 소개되었다는 말이 맞다. 책 소개에는  "삶 전체를 두고 파득거린 여성작가들"이라고 표현한다. 안팎으로 혼란했던 시절엔 남녀불문 그 시대 청춘들에게 부여된 삶의 질문들이 있지만 여성으로서 엄마로서가 아닌 자신만의 삶에 대한 의미를 찾고 헤쳐나가는 것은 굉장한 추진력과 결단 그리고 처절한 몸부림이 필요했다. 처음 1/3 정도 읽었을 때는 그저 역사책을 읽는 마냥 재미있었는데, 그들이 얻고자 했던 얻었던 혹은 실패했던 그것들이 사실 예전의 내가 갖고 있었던 열정이 아니었던가 떠올리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들은 "제도 밖의 정처 없는 생활, 떠도는 거처, 의구심을 보내는 타인의 시선, 동화된 유대인이면서도 결국 유대인이라는 표지를 벗을 수 없는 한계, 가까운 핏줄들의 연이은 죽음, 불안하고 격정적인 사춘기를 겪으면서 그녀는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수립" 했고, "무사 유야 말로 악마적인 심연에 쉽게 빠져들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했으며 "여자라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서 행복하길 바라며" 투쟁해왔던 것이다. 아마 이 책도, 우리에게 나가서 시위에 참여하라 모든 것에 맞서 싸우라는 것보다도, 스스로 삶을 계속해서 사유하며 개척해나가자는 의미에서 쓰였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3. 나는 2019년에 정말 무계획으로 살았다. 매년 시작마다 한 해동안 이뤄야 할 과업 같은 것을 두세 개 정해두고 그 과업을 위한 세부과제 또한 여러 개 나열한 뒤 매월초, 매주초 그것들을 해내기 위해 애써왔지만 복직 후  아이를 돌보며 회사를 다니는 일, 다른 말로 하면 내 의지와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이 거의 없는 이 생활 속에서 계획한 바는 대부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2018년 말엔가, 습관적으로 내년엔 무엇을 해볼까 하다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것이다. 계획 세워 뭐하겠는가 어차피 못할 텐데. 그래서 되는대로 살았다. 물론 이 덕에 예전엔 시도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다양하게 해 보고 삶의 폭이 넓어졌고 여러모로 재미있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연말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사유하지 않는 삶이 맞을까. 조금이라도 내가 가진 것들에서 개선해보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2019년엔 사소한 재미들에 치우쳐 스스로를 가두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4.  2020년엔 그들의 메시지를 바탕으로 좀 더 치열하게 내 삶의 방식을 만들어가고 싶다. 한나 아렌트는 "철학자로 불리는 대신 정치 사상가로 호명받기를" 원했고 수전 손택은 "예술에 정신이 팔린 심미가 이자 동시에 열렬한 실천가로 불리기를 원했다"라고 한다. 나는 무엇으로 호명받기를 원하는가. 이제 이 것이 내게 주어진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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