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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쎄 Aug 06. 2021

#4. 판타지의 균열, <수다카 기획>

코코 푸스코(Coco Fusco, 1960~ )


1990년대 후반은 라틴아메리카의 미술과 문화가 광범위한 영역에서 크게 주목받으면서 주류의 문화생산에까지 등장하던 시기였다. 이 시점에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국제적인 대규모 아트페어 아르코(ARCO) 또한 이와 같은 시류를 반영하여 라틴아메리카 예술을 주제로 한 행사를 열었다. 여기에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14개 국가가 초대되었고 아르코는 라틴아메리카의 미술을 유럽에 선보이는 상업적 플랫폼이 되었다.


푸스코는 스페인에서 라틴아메리카 미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상황에 의아함을 느꼈다. 스페인에서의 라틴아메리카 미술과 미술가들에 대한 관심이 증가함에 따라 이들의 가치는 점점 높아진 한편 스페인의 라틴아메리카 이주민들은 폐쇄적인 이민정책으로 고통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푸스코는 이러한 불균형에 대해 공감하는 두 명의 쿠바인 예술가들과 함께 게릴라 퍼포먼스 <수다카 기획(Sudaca Enterprise)>(1997)를 계획했다. 이들은 수다카(Sudaca)라는 이름의 회사를 만들었고 티셔츠를 제작하여 아트페어에서 판매했다. 티셔츠의 앞뒷면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인쇄되었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바라하스 공항(Barajas Airport)의 보테로의 그림은 200,000,000페세타이다.

수다카가 이 공항에 비합법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비용은 50,000페세타이다.

스페인에 비합법적으로 거주하는 수다카는 400,000명이다.

1990년과 1995년 동안 구직을 허가받은 수다카는 195,330명이다.

스페인 시민권을 얻기 위해 은행계좌에 있어야 하는 돈은 1,000,000페세타이다.

1997년 갤러리가 아르코에 지불하는 돈은 1평방미터당 17,000페세타이다.     


티셔츠에는 라틴아메리카 미술과 관련된 수치를 라틴아메리카계 이민자에 관한 통계와 함께 표기하여 라틴아메리카의 미술과 라틴아메리카인의 현실을 대조했다.

푸스코를 비롯한 작가들은 해당 티셔츠에 검은 스키마스크를 착용하였다. 이는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퍼포먼스를 함께 한 두 명의 예술가 또한 불법 체류자였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전시장 바닥에 좌판을 깔고 티셔츠를 팔기 시작했다. 수다카 기획은 3일의 전시기간 동안 아트페어 당국에 의해 전시장 밖으로 여러 차례 밀려났지만 계속해서 티셔츠를 판매했다. 아르코의 관람객들은 수다카의 티셔츠에 관심이 많았으며 심지어 에스칼라 컬렉션(ESCALA)에 두 장의 티셔츠를 팔기도 했다. 아트페어 당국에 의해 계속해서 판매를 저지당하자 <수다카 기획>은 퍼포먼스 작가 중 한명에게 경찰복을 입혀서 마치 관리자의 허가 아래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것처럼 위장 했다. 그러나 전시공간에 대한 대여 비용을 납부하지 않았다거나, 스키 마스크를 썼다거나, 티셔츠를 판매할 수 없다거나 하는 등의 여러 이유로 관리자는 이들을 완전히 전시장 바깥으로 쫓겨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트페어 기간 동안 티셔츠는 전부 판매되었고 푸스코와 쿠바 예술가들은 마지막으로 남은 티셔츠를 입고 전시장을 돌면서 퍼레이드를 펼쳤다.


정치적인 불안과 경제적 불황으로 인한 자국 내부의 문제로 라틴아메리카인들은 언어와 문화 측면에서 근접한 과거 식민지 본국으로 끊임없이 이주한다. 하지만 식민지 본국의 피식민지 이주민들에 대한 인식적인 무시와 제도적 차별은 과거와 그리 달라진 점이 없다. 인종적 스테레오타입이 만들어낸 이중적인 잣대로 인해 라틴아메리카 이주민들은 시민권자로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이 매우 희박하다. 때문에 라틴계 미술가들에게 1980년대 후반에 시작된 라틴아메리카 미술붐은 라틴 세계에 대한 진지한 탐구라기보다는 매너리즘에 빠진 서구의 주류 미술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이국적인 취향에 대한 열광으로 느껴졌다. 때문에 푸스코는 국제 미술전시장을 배경으로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이중적인 인식을 폭로하는 게릴라 퍼포먼스를 시도했다. 


푸스코는 아르코 아트페어에 초대받은 미술가로서가 아닌 멸시받는 수다카로써 입장했는데 이는 라틴아메리카 미술이 성황리에 거래되고 있는 장소에 라틴아메리카인의 ‘진짜’ 현실을 추가하기 위한 것이었다. 서구의 환영 속에 라틴아메리카의 미술품과 미술가들은 초대받았지만, 늘어나는 라틴아메리카의 불법 이민자들은 이로부터 배제된 존재들이었다. 때문에 환대받지 못할뿐더러 공식적으로 기록되지도 않은 채 누구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하는 ‘없는 존재’로 등장하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자신들의 현실을 스키마스크를 착용하여 더욱 강조했다. 입장을 허가받지 못한 <수다카 기획>이 전시 기간 내내 언쟁을 거듭하며 외부로 쫓겨나는 모습은 마치 밀려들어오는 많은 수의 라틴아메리카의 이민자들이 불법 이민자 신분으로 추방되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서구의 관람객들은 라틴아메리카 이주자들의 비참한 현실에 눈 감은 채 도덕적 불편함 없이 라틴아메리카의 미술을 향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으로 향유되는 미술은 식민지 본국의 식민성을 탈각시키는데 기여 한다. 때문에 정치적으로 윤색된 전시장의 장소성은 <수다카 기획>을 통해서 표면위로 떠오른다. 아르코 전시가 배제하거나 숨기고자 했던 라틴아메리카의 모습이 이들을 전시장 밖으로 밀어내는 적극적인 제스처를 통해서 드러나게 된다. 또한 아르코가 <수다카 기획>을 다루는 방식에서 스페인의 정부의 이중성을 연상할 수 있다. 

 결국 <수다카 기획>에서 아트페어의 방문자들을 라틴아메리카 미술의 소비자이자 퍼포먼스의 관람객이면서도 퍼포머들과 전시관계자 사이에 벌어지는 싸움의 구경꾼이 된다. 그리고 이 과정은 라틴아메리카 문화의 소비자들이 품고 있는 이국적 타자에 대한 판타지에 균열을 낸다. 그리고 아직도 서구의 식민적 향수에 기대고 있는 서구의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판타지를 비판한다.


이처럼 푸스코는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생산과 소비가 여전히 이국적 타자로서의 정체성에 고정되어 있는 현실을 비판한다. 그녀는 퍼포먼스에서 서구인의 욕망의 대상이 되기를 거부한다. 푸스코는 자신의 혼종적인 정체성을 이용하여 서구인의 판타지를 의도적으로 수면 위로 노출시킨다. 그리고 그들의 욕망을 지켜보는 관찰자가 되어 서구인들의 판타지에 의도적으로 균열을 만든다. 이와 같이 푸스코는 퍼포먼스를 통해 관람자들의 자기만족을 방해함으로써 고정된 타자성에 개입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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