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 푸스코(Coco Fusco, 1960~ )
코코 푸스코는 고메즈-페냐와의 일련의 퍼포먼스를 하면서 원주민 여성 특히 라틴계 여성(latina) 예술가를 둘러싼 문화적 스테레오타입이 어떻게 재생산되고 소비되고 있는지를 탐구하게 된다. 이는 라티나 예술가들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고 소비되는 방식을 살펴보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라티나에 대한 관심이 그들의 비극적 죽음을 통해서 강화되는 현상에 주목했다. 따라서 작가는 앵글로와 라틴문화권 모두에서 영향력 있는 여성들이자 문화적으로 우상화된 라틴아메리카의 여성성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인물들이 죽음 이후에 어떻게 해석되며 소비되고 있는가를 비교 문화적 차원에서 다루고자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여성의 장례식은 스펙타클한 볼거리를 동반한다. 푸스코는 어린 시절 장례식장에서의 경험을 통해서 시체와의 물리적 접촉이 사람들의 마음에 공포와 매혹이 결합된 강력한 감정을 유발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욱이 어린 나이에 죽거나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여성들은 순교자의 차원으로 격상되고 숭배된다. 푸스코는 살아 있는 동안 통제와 강압의 대상이었던 라틴아메리카 여성의 몸이 그들의 죽음 이후에 의미 있게 부각되는 이유가 라틴 가톨릭의 종교적인 전통과 남성중심적인 문화에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여기에는 분명히 여성이 고통 받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며 이를 축복의 대상으로 삼는 가톨릭의 요소가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프리다 칼로의 장례식
이러한 사정은 앵글로 아메리카에서도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프리다 칼로는 이와 같은 극적인 사례의 원형적 인물로 그녀의 삶을 통과하는 고통과 함께 아름다운 희생자로써 미화된 그녀의 운명은 라틴 아메리카의 여성성을 상징한다. 푸스코는 프리다 칼로의 이와 같은 이미지가 1980년대 초 서구의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재조명되면서 고통의 아이콘으로 변모되었다고 보았다. 이어 아나 멘디에타 또한 그녀의 비극적인 이른 죽음이 현대판 프리다 칼로를 찾던 미국인 페미니스트 예술가들에게 유용한 사례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푸스코는 라틴아메리카와 앵글로아메리카 사이의 매개적인 위치에서 양 문화권의 공통된 문화적 현상에 대한 논평으로서 라틴 여성들을 위한 침묵의 장소를 마련하고자 했으며 라틴여성의 몸이 어떻게 문화적으로 소비되고 있는지를 드러내고자 했다.
코코 푸스코, <죽음이 더 나은(Better Yet When Dead)>(1994-1995)
라티나에 대한 양 문화의 태도에 함축된 의미를 반영하는 퍼포먼스 <죽음이 더 나은(Better Yet When Dead)>(1994-1995)에서 푸스코는 프리다 칼로와 아나 멘디에타를 포함해 사라 고메즈(Sara Gómez)와 에바 페론 그리고 대중 가수 셀레나(Selena Quintanilla-Pérez)를 대표하여 이미 고인이 된 라티나들을 연기했다. 작가는 퍼포먼스에서 고통 속에서 죽거나 폭력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라틴여성들이 죽음 이후에 격찬에 가까운 찬사를 받게 되는 현상에 대해 “일단 여성의 창조성이 영원히 잠들고 나면 남과 북의 라티노 문화가 왜 그리 매혹적인가” 그리고 “왜 사랑받는 라티나는 오직 죽은 라티나인가”를 묻고자 했다.
퍼포먼스는 각각 캐나다의 YYZ아트스페이스(Canada at YYZ Artspace in Toronto)와 콜롬비아 메데인의 국제 아트 페스티벌(International Arts Festival of Medellin)에서 행해졌다. 캐나다와 콜롬비아로 대표되는 앵글로와 라틴아메리카에서 작가는 장미꽃에 둘러싸인 채 열린 관에 누워 고인이 된 유명한 라티나를 연기했다. 푸스코는 갤러리를 라틴 가톨릭 전통의 장례식장으로 전환하고 유명한 라틴아메리카 여성들의 모습으로 분하여 열린 관 안에 3~4일 동안 밤새 누워있었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조용한 분위기로 연출된 방에는 묵주 소리와 추모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라틴 가톨릭계 장례식처럼 관람객들이 열린 관 주변을 돌면서 기도문을 암송하거나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죽은 자를 바라보면서 애도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푸스코는 관 속에 누워서 양 문화권의 관람자들을 관찰했다. 퍼포먼스에 대한 반응은 양 문화권에서 명백하게 다르게 나타났다. 캐나다인들은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로 푸스코를 지켜보면서 애도와 묵상을 했고, 매우 소수의 사람들만이 푸스코를 만지거나 찔러 보았다. 반대로 콜롬비아인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며 신체적인 접촉을 꺼리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푸스코를 위해 기도를 올렸고 그녀의 신체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거나 그녀가 얼마나 조용한지에 대해 끊임없이 말했다. 어떤 여성은 매일 푸스코를 방문해서 죽음에 관한 시를 읽었다. 그리고 입술 위로 와인을 붓거나, 푸스코를 위한 글을 남기고 가기도 했으며, 꽃을 놓거나 키스를 했다.
푸스코는 라틴 여성 예술가들을 대변하여 살아 있는 매개체로써 그들을 바라보는 관람객들을 숨죽여 관찰했다. 푸스코는 사후에 광범위한 명성을 얻으며 영속하는 라틴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타자에 대한 욕망과 판타지의 장소로 제공했다. 이는 애도를 위한 침묵의 장소에 관람객들을 초대하고 되불러온 라틴여성들과 대면하게 하여 그들을 둘러싼 역사를 다시 쓰도록 종용하는 것이다. 죽은 자들과의 만남(encounter)의 퍼포먼스를 통해서 푸스코는 욕망과 동정의 대상이자 공포와 매혹의 기호인 라티나가 되기를 거부했다. 오히려 ‘살아 있는 타자’가 되어 라틴계 여성 예술가들을 타자화시키는 양 문화권의 욕망을 관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