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의 공간을 찾아서 ] - 그 첫 번째 이야기
'제3의 공간'은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Ray Oldenburg)가 그의 저서 'The Great Good Place'(1999)에서 처음 주창한 개념이다. 올든버그가 말한 '제3의 공간'은 단 몇 시간만이라도 부담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가보고 싶은 좋은 장소(The Great Good Places)'들이다. 동네 이발소, 동네 서점, 카페, 커피숍, 동네 주점 이런 곳들, '그곳에서는 누구나 내 이름을 아는' 동네 커뮤니티 공간으로서 '집 같은 친근하고 따듯한 정이 넘치는 공간'을 말한다.
이런 공간들은 분위기를 인위적으로 연출하지 않기 때문에 정감을 느낄 수 있고, 집 근처에 있어서 언제든 들를 수 있을 뿐 아니라 부담 없이 누구나 가 볼 수 있고, 이질감이나 상대적 박탈감 같은 것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공간들은 아쉽게도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버리고 있다(Vanishing Our Third Places)'고 올든버그는 말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지어진 미국인들의 주거 공간들은 커뮤니티를 연결하기보다는 오히려 단절시키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결과적으로 이웃을 사귀거나 만날 수 있는 모든 방법이 제거되었다.(Virtually all means of meeting and getting to know one’s neighbors have been eliminated.)"고 올든버그는 주장한다. 그는 오랜 세월 계속되어 온 제3의 공간의 예로 아일랜드의 주점(bar), 이탈리아의 광장(piazza), 그리고 비엔나의 커피숍(cafe)을 꼽는다.
이러한 '제3의 공간' 개념을 마케팅에 처음 활용한 것은 스타벅스이다. 2001년 스타벅스는 커피하우스의 본 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비엔나의 오페라하우스 맞은 편에 테이블 주위로 나지막한 안락의자들을 배치해 유럽 어느 가정집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 대형 매장을 열었다. 이날 개점행사에 참석한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은 '전 세계 스타벅스 고객들은 우리 매장을 자신의 집 아닌 자신의 집처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집과 직장의 사이에서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오아시스처럼 느끼게 될 것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이후 스타벅스는 '제3의 공간'을 자처하는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이쯤에서 드는 의문은 "왜 '제3의 공간'일까?"하는 것이다. 드라마 작가이자 심리학자, 트렌드 연구가인 크리스티안 미쿤다(Christian Mikunda)는 그의 저서 'Brand Lands, Hot Spots & Cool Spaces'(이 책이 우리말로는 '제3의 공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에서 '불편없이 완벽하게 꾸며진 주거 공간을 '제1의 공간(The First Place)'이라고 말한다. 집의 미학적 가치가 그 집에 사는 사람의 품격으로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집이 '연출된 주거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제1, 제2, 제3의 공간이라는 개념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거기에 머무는 사람'에 초점을 맞춘 '인간적인 공간'을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2의 공간(The Second Place)'도 이러한 관점에서 조망되어야 한다. 미쿤다는 사람이 머무는 공간에 대한 인식 변화가 1960년대에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미국 사람들이 미학적인 아름다움을 작업 공간(작업환경)에 적용했을 때, 근로 의욕을 돋우고 생산성이 올라간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후부터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전체가 탁 트인 사무실 공간, 풍부한 채광과 조명으로 밝은 분위기를 내고 관상용 식물이나 화분을 들여놓고 통풍이 잘 되게 하고, 공장의 작업장에 보기 좋은 페인트를 칠하는 등의 흐름이 '제2의 공간' 개념으로 자리 잡았고, 이처럼 일터에 '제2의 공간' 개념을 도입한 후 직원들이 결근하거나 병에 걸리는 일이 줄고 직장에 애착심을 갖고 의욕적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고 미쿤다는 말한다. 제2의 공간 역시 '연출된 주거 공간'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미쿤다는 '제3의 공간' 역시 '연출된 주거 공간''이라고 주장한다.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가 주장했던 것과는 달리 연출을 통해 '편안함'이나 일상과는 다른 '체험'을 제공하는 공간이 '제3의 공간'으로서 가치를 지닌 공간이 된다는 것이다.
'공간(Space)'은 사람들에게 많은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공간이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는 전적으로 그 공간이 가지고 있는 '컨텐트(Content)'에 달려 있다. 비록 그 컨텐트가 사람들에게는 각기 다른 의미로 전달되고 각인된다 할지라도, 그것이 없는 공간은 사람들에게 무의미한 공간이 되고, 곧 잊혀지고 사라질 것이다. 내가 공간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바로 그 '컨텐트'가 많은 유의미한 것들을 창출해 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공간을 어떻게 유의미한 컨텐트로 채워나가야 하는지 하나씩 공부해 보려고 한다.
2015.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