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본 세상 (15)_『오래 달리기』(이하진, 킨더랜드)
7월 1일. 나는 그동안 작은도서관 활동을 정리하고, ‘일산도서관’이라는 시립도서관 관장이 되었다. 휴대전화 메모장을 이런저런 계획으로 가득 채우며 부푼 꿈을 안고 출근했다.
생각과 많이 달랐다. 쉽지 않을 거라고 마음을 다잡아왔지만, 마주친 현실은 생각보다 엄혹했다. 일단, 도서관 입구를 들어서는 사람들 표정이 달랐다. “안녕하세요?”라는 말에 눈인사라도 대꾸를 해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민원이 들어왔다. ‘부담스러우니 인사하지 말라는 것’. 순서대로 입장시켜야 하는 안전문제와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문 여는 시간에 입구에 서 있는 이유도 있었지만, 이용자와 눈 마주치는 게 그간 작은도서관에서 행복이었는데, 녹록지 않겠다 싶었다.
짐만 두고 두세 시간 자리를 비우는 문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비워놓은 자리에 굳이 앉겠다는 사람들 문제, 신문 놓는 시간이 왜 늦냐, 너무 덥다, 춥다. 여러 소리가 들려왔다. 공공도서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아직도 ‘개인 공부방’에 머물러 있는 탓에 아침부터 공부하는 사람으로 좌석이 다 채워져 버리는 것도 큰일이었다. ‘책 읽을 자리’가 없는 것.
직원 수도 너무 적다 보니, 일이 너무 많아 휴가는커녕 날마다 야근을 하는 직원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것도 마음이 고되었다.
급했다. 2년 6개월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도서관 분위기도 바꾸고 싶고 다양한 활동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뭔가 기획하고 진행할 시간도 없이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게다가 일하는 사람들 마음도 다 달랐다. 가슴이 답답했다.
『오래 달리기』(이하진, 킨더랜드). 다섯 마리 동물들이 달리기를 시작한다. 힘차고, 빠르게. 그러다 만난 오르막길. 이 정도는 끄떡없다고 넘어섰지만, 커다란 강이 나타난다. 겨우 넘어섰을 때는 깜깜한 어둠을 만난다. 그래도 동물들은 끊임없이 달린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뭔가 달라진 장면들이 등장한다. 돕기 시작한 것. 손을 잡기 시작하고, 주변 풍경을 보며 잠시 쉬기도 한다. 그래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빨리 달리기가 아니라 오래 달리기를 터득한 동물들은 어떻게 달려야 하는지 알게 된다. 서로 눈을 마주치고 끄덕일 줄도 알게 된다.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동물이 있었다. ‘준비 땅’ 하자마자 휭 뛰어나가는 녀석, 토끼다. 오르막길까지 토끼는 맨 앞에 서서 앞만 보고 달린다. 하지만, 내리막길에서 토끼는 더 이상 맨 앞에 서지 못한다. 비를 피해 모두 나무에 기대 쉴 때도 토끼는 동료를 보지 않는다. 그런 토끼가 맨 뒤에 서는 장면이 있다. 힘들어하는 양을 밀어주기 위해서다. 그리고, 마지막 결승선에 오를 때 토끼는 더 이상 앞을 보지 않는다. 함께하는 동료를 쳐다보며 처음으로 웃고 있다.
나는 토끼처럼 휑하니 먼저 뛰어나가 앞서 달리다 오르막길을 만나자마자 헥헥거리기 시작했다. 마음만 급해 서둘러 오르막길을 오르는 토끼. 그게 지금 내 모습은 아닌가 싶다. 곧 다리에 힘이 풀릴 텐데 그걸 알면서도 앞서서 뛴다. 그러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단거리 달리기와 오래 달리기는 쓰는 근육도, 호흡법도 다르다. 단거리 달리기를 할 때는 순간적으로 온몸에 힘을 주는 근력을 사용하지만, 오래 달리기는 몸에 최대한 힘을 빼고 달려야 한다. 단거리 달리기가 무산소 호흡을 한다면, 오래 달리기는 산소를 많이 마시고 조금 내뱉는 계획적인 호흡이 필요하다.
오래 달리기.
이제부터라도 힘을 빼는 연습이 필요하다. 규칙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그동안 혼자 앞서 달리기를 했다면 이제는 옆에 있는 사람과 ‘함께’ 달릴 마음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야 마지막 결승선을 함께 들어갈 수 있을 테니.
‘나는 힘차게 달려요’, ‘빨리 더 빨리’로 시작한 책은 중간쯤 ‘나는 용기를 냈어요. 함께라서 두렵지 않아요’로 바뀐다. 어둠이 몰려와 깜깜한 밤을 지내야 할 때 나온 문장이다.
앞이 아니라 옆을 봐야 한다. 이제 고작 오르막길을 오르는 순간이다. 곧 큰 강을 만나고 어둠을 만날 거다. 그래도 옆을 보고 손잡고 갈 수 있다면, 춤추며 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