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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숙 Jan 25. 2022

눈은 또 내린다

그림책으로 본 세상 (19)_『눈아이』

2022년 1월이 되자마자 도서관 문턱이 닳도록 사람들이 많이 왔다. 예약도서와 상호대차(타도서관 책을 원하는 도서관에서 찾아갈 수 있는 제도) 신청도 엄청나게 많아서 꽂아둘 서가를 늘려야 했다. 사서 선생님들은 물론, 자원봉사자들도 자리에 한 번 앉지 못하고 일을 했다. 겨우 밥 먹을 틈만 낼 수 있었다. ‘아니? 도대체 왜?’ 정확한 까닭을 알 수 없지만, 대충 짐작이 갔다. 저마다 새해 계획 중 하나를 ‘독서’로 정했기 때문인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 사람들 새해 계획표에도 늘 빠지지 않고 ‘독서’가 적혀있었다.     

예전엔 시간은 그냥 흐를 뿐, 거기에 금을 긋고 연도를 달리하는 건 인간들 편의 정도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시간을 지내다 보니 어쩌면 이 또한 조상의 지혜는 아닐까 싶다. ‘괜찮아. 지나간 것은 그대로 두어도 돼. 다시 시작하면 돼.’ 누가 말해주는 건 아니지만, 새해를 맞이하면서 우리는 어떤 것은 덮고, 어떤 것은 새로 시작할 기회를 맞는다. 그렇게 열심히 계획도 세우고 어떤 다짐이라는 것도 한다. 

운동도 해야 하고, 다이어트는 필수. 올해는 정말 책도 열심히 읽고, 글도 좀 쓰고. 자격증도 하나쯤 따야 할 것 같다. 작년에 미뤄둔 악기도 배우고, 여행도 다녀야겠다. 아 참. 소액이지만 남들 다 한다는 주식도 좀 해보고 말이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고 차분히 하다 보면 다 해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림책 『눈아이』 (안녕달. 창비)는 하얀 눈이 쌓인 날, 어떤 아이가 눈덩이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이는 눈덩이에게 손과 발을 만들어주고, 눈과 입을 그려준다. 눈덩이가 눈아이가 되는 순간이다. 아이는 자기가 끼고 있던 빨간 장갑을 눈아이에게 끼워준다. 둘은 친구가 된다. 눈빵도 나눠 먹고 썰매도 탄다.          


‘새해 계획’이라는 녀석도 그렇다. 눈이 내릴 때쯤 몽글몽글 눈덩이가 되다가 해를 넘길 즈음 실체를 갖게 된다. 눈도 그리고 코도 그리고 잘 움직일 수 있도록 손과 발도 만들어준다. 그렇게 모양이 완성되면 서로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나누고, 내가 가진 빨간 장갑도 나누어준다. 앞으로 잘해보자 악수도 한다. 하지만, 그 관계는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는다. 눈이 멎고 새싹이 피어날 즈음 사라지게 된다. 마음 한 편에 늘 남아있지만, 다시 만나 장갑을 나눠 끼지 못한다.           

작년 말 ‘잡코리아’가 직장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2년 새해 계획 수립 여부’ 설문 결과를 보면, 1명당 평균 7개의 계획을 세운다고 한다. 그런데 10명 가운데 7명 정도 새해 계획을 달성하는데 실패하고, 이 가운데 3명은 새해 계획을 세운 지 한 달도 못 지키고 실패한다고 했다. 결국, 많은 계획은 금세 눈 녹듯 사라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말인데 올해 새해 계획은 좀 작게 만들면 어떨까? 커다란 눈덩이로 뭉치기보다 내 손안에 얹을 정도 작은 녀석으로 두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여차하면 냉동실에 두고 자주 꺼내보면서 말이다. 이것저것 많이 세워서 실패하기보다 하나라도 해낼 수 있는 계획을 세우는 거다. 뭔가 거창한 것보다 주변을 둘러보는 소소한 계획을 세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냉동실 안에 넣어둘 수 있는 만큼만 정해 하나씩 꺼내 눈빵도 나눠 먹고 썰매도 탈 수 있다면 오래가는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다.           


해마다 겨울이 되면 눈은 내린다. 눈이 올 때쯤 냉동실 문을 열었을 때 작은 눈아이가 싱긋 웃고 있다면 올해 계획은 성공한 거다. 그 아이를 데리고 나가 작별 인사를 하고 나면 새롭게 몽글몽글 뭉쳐진 눈덩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 눈덩이를 눈아이로 만드는 법은 이미 알고 있으니 설명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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