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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숙 May 06. 2022

밀어내라

그림책으로 본 세상 (22)_『밀어내라』



“학교에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집에선 부모님 말씀 잘 들어라.” 어린 시절, 어른들은 지갑을 열어 용돈을 주거나 세뱃돈을 줄라치면 꼭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네.”하고 고개를 꾸벅 숙이며 장난 삼아 생각했다. ‘일단, 귀로 잘 들으면 되는 거지 뭐.’ 누구도 마음에 새겨듣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 어른이 된 나 역시 습관적으로 이 말을 한다. “아휴, 어른들 말도 잘 듣고. 착한 어린이네.” 그러곤 흠칫 놀란다. 이런 거짓말을 하다니. 


“어른들 말 잘 들어라.”이 말속에는 ‘어린이’는 ‘부족한 존재, 모자란 존재.’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니 나름 완전한 존재인 어른들 말을 잘 따라야 올바르다는 지극히 어른 중심적 사고가 그대로 녹아있는 말이다. 어른들끼리니 솔직히 말해보자. ‘진짜 그런가?’


그림책 『밀어내라』 (이상옥 글, 조원희 그림. 한솔수북)를 한 장 펼치면, 긴 막대를 든 어른 펭귄들이 줄지어 어디론가 가고 있다. 자기들이 사는 8자 얼음 섬에 들어오려는 다른 동물들을 밀어내기 위해서다. “우리와 다른 펭귄은 오지 마라.” 눈에 힘을 주고 막대기를 든다. 밀어낸다. 왜 그러냐는 어린 펭귄들 질문에 “우리와 다르다.” “곰들이 무거워서 얼음이 녹는다.” “물개들이 너무 많이 먹는다.” 이유를 댄다. 밀어낸다. 그런데, 어느 순간 8자 얼음 섬 가운데가 쩌저적 갈라진다. 어린 펭귄들이 소리치지만, 밀어내기에 열중인 어른들 귀에 어린이들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어른 펭귄들과 어린 펭귄들은 갈라진다. 

어린 펭귄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하나도 걱정되지 않는다. 어른 펭귄들이 그렇게 밀어내고 있는 동안, 어린 펭귄들은 한쪽에서 다른 동물들과 놀고 있었다. 문어와 먹물 놀이도 하고, 서로 함께 먹을 것도 나눈다. ‘같이 사는 법’을 아는 것이다. 어른들 말을 잘 듣고 밀어냈더라면 볼 수 없었을 풍경이다. 


1922년, ‘어린이’를 부족하거나 모자란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자는 운동을 벌인 사람이 있다. 맞다. 방정환 선생님이다. 방정환 선생님 주장으로 만들어졌다는 어린이날이 올해 100주년을 맞았다. 100년 동안 많은 것이 변했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건 어린이를 ‘부족한 존재’로 인식하는 태도이다. 뭔가에 새로 입문하여 잘 못하는 어른을 일컫는 ‘~린이’라는 표현도 그러한 생각에서 나온 말이다. 한참 유행하고 지금도 여전히 쓰이는 ‘요린이’ ‘주린이’가 대표적이다. 

세계 최초 어린이 인권 선언문이라고 알려진 1922년 어린이날 선전문과 1923년 어린이 선언문에는 ‘어린 사람을 헛말로 속히지 말아주십시오.’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시오.’ 같이 어린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볼 것을 이야기하는 것과 동시에 ‘대우주의 뇌신경의 말초는 늙은이에게 있지 아니하고 젊은이에게도 있지 아니하고 오직 어린이 그들에게만 있는 것을 늘 생각하여 주시오.’라는 말이 나온다. 어린이와 어른은 엄연히 다른 존재라는 것이다. ‘대우주의 뇌신경의 말초’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린이뿐이라는 말.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림책 ‘밀어내라’에는 문어와 먹물 놀이를 하던 어린 펭귄이 먹물을 뒤집어써 어른 펭귄과 다른 모습을 한 채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엄마 아빠 이것 봐요." "우리도 이제 달라요."


어린이들이여. 이제 어른들을 밀어내라. 그리고 이렇게 말하면 된다. “우린 다른 존재예요. 당신들이 누군가를 밀어냈던 것처럼 우리도 당신들을 밀어내려고요. 그러니. 이제 안녕.” 

뭐, 이 말도 어른인 내가 하는 말이니. 무시해도 좋다. 


#어린이날100주년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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