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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립 Oct 25. 2022

[수면] 의도치 않은 불면증 극복기

기상과 수면

 폭신한 배게에 뒷통수를 올려 놓아도 쉽게 잠이 들지는 않았다. 천장에 붙은 야광별을 보며 우주의 끝을 상상했다. 끝없는 우주에 하찮은 나란 존재는 무엇일까, 나의 삶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하다 보면 금세 잠이 달아났다. 그때가 정확히 중학교 2학년 이었다. 그렇게 야행성 인간이 되었다. 중2병이란게 그렇게 무섭다.


 학창시절엔 그게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새벽까지 라디오를 듣고, 글을 쓰고, 시험기간이면 공부도 했다. 학교에선 보통 잤다. 선생님이 민망하지 않을 정도로 예의 바르게 턱을 괴고 자는 스킬이 있었다. 그래서 큰 갈등은 없었다. 새벽에 집중해서 공부하면 성적도 잘 나왔다. 평화로운 야행성 인간으로 십대 시절을 보냈다.


 문제는 십대가 끝나갈 무렵에 발생했다. 수능은 내가 한창 턱을 괴고 졸 시간에, 엄청난 집중력을 요하는 언어와 수리를 배치해 놓았다. 야행성 인간에게는 너무 가혹한 타임라인이었다. 일주일 전부터 타임테이블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10시면 누워서 잠이 들려고 애썼다. 어떤 날은 성공했고, 어떤 날은 실패했다. 수능 전 날은 어땠을까? 물론 실패했다. 다음 날 오전에 좋은 컨디션으로 시험을 보려면 얼른 자야지, 라고 생각하느라 잠이 들지 못했다. 잠이 들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하느라 또 잠이 들지 못했다. 그렇게 속절없이 새벽이 왔다. 새벽 세시쯤이었을까, 아 이렇게 수능은 망하는구나, 생각하면서 눈물이 한 방울 흘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아침이 왔다. 눈물젖은 잠이었다.


 컨디션은 좋지 않았다. 수능은 아주 망하지는 않았지만 평소보다는 조금 나쁜 성적이었다. 잠을 못 자서인지 그냥 내 실력이 그거였는지는 이제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여하튼 그때의 기억은 내게 오래도록 남았다. 낮밤이 뒤바뀐 사람에게는 중요한 일의 결과도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한 번 들인 습관이 쉽게 바뀌지는 않았다. 다만 계기가 있었다. 직장생활이었다.


 극강의 I (MBTI의 I 그거 맞다) 인 내게, 이십대 후반에 시작한 조직생활은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게다가 당시의 기업문화는 상당히 경직되어 있어서 상사들의 눈치도 많이 봐야했다. 지난 밤에 늦게 잤다고 오늘 출근을 쨀수는 없으니, 어쨋든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만 했다. 야근도 많아서 집에 가면 자연스레 지쳐 잠이 들었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잠이 들지 않는다는 건 생각할 에너지라도 남아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다.


 붐비는 지하철을 피하기 위해 조금씩 출근시간을 앞당겼다. 일찍 회사에 오면 사람이 없고 조용해서 좋았다. 1시간 남짓의 평화는 내게 해방구같았다. 조금씩 시간을 당기다보니 새벽형 인간이 되었다. 그렇게 에너지를 당겨쓰고 나면 저녁부터 졸음이 쏟아졌다. 불면의 밤이란게 뭐였는지, 그 느낌조차 기억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게 벌써 십년이다.


 새벽 두시의 고요함이 그리울 때가 있다. 책상에 앉아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을 듣다가, 갑자기 시상이 떠오르면 노트를 펼치고 직유와 은유와 대유와 풍유를 끄적였다. 키야, 하고 혼자 감탄했다가 다음 날 아침 이건 뭔 쓰레기인가, 하며 구겨버리곤 했다. 그 잉여로움이 고프다. 잘 잠드는 법을 얻는 대신, 잃어버린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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