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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 Morocco -7

마지막 모로코 여행기

by 모블랙
잊지 않기 위해 쓰는 모로코여행기 – 마지막

.. 우리가 외국에서 이국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고향에서 갈망했으나 얻지 못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중략)

[알랭 드 보통 : 여행의 기술 중]


페즈를 떠난 M과 나는,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셰프샤우엔(Chefchaouen)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다음날이면 탕헤르 공항에서 마드리드로 향하는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다. 모로코 땅에서의 여행은 총 일주일이었다. 비행기를 두 번이나 바꾸고 나서야 도착한 모로코였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일 년에 해외여행에 쓸 수 있는 휴가는 단 5일이었다. 짧지만 강렬했던 모로코 여행은 종반부를 향해 치닫고 있었고, 나는 아쉬운 감정을 감추기 어려웠다.

인천공항 -> 암스테르담(네덜란드) -> 마드리드(스페인) -> 마라케시(모로코)를 거치며 모로코 땅을 밟은 우리는, 마라케시->메르주가->페즈->셰프샤우엔 순으로 여행을 했다.




<Blue City>


푸른 도시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셰프샤우엔은 도시 전체가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푸른 도시는 그리스 산토리니가 세간에 좀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셰프샤우엔은 산토리니 못지않게 예쁜 도시였다. 포카리스웨트 광고 감성을 기대하고 산토리니를 방문하면 사람에 치여 사진 한 장 여유롭게 찍기 어려운 것과 달리, 모로코가 그리 유명한 관광국가가 아닌 덕에 붐비지 않게 도시 이곳저곳을 누빌 수 있었다.



셰프샤우엔(푸른 도시)은 모로코 북부의 리프산맥 기슭에 위치한 도시였다. 그 덕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들이시는 첫 숨의 공기는 매우 상쾌했다. 강렬한 태양과, 시원한 그늘. 깊게 숨을 들이쉬면 폐의 안쪽 깊은 곳까지 정화되는 느낌이 드는 산맥의 신선한 바람. 온통 푸른 건물들과 여유로운 사람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미 도시는 우리에게 '고생했어. 푸른 도시에 어서 와. 여기서 걱정과 피로는 다 내려놓고 푹 쉬다가'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며 버스를 타고 여기에 오느라 배가 고팠던 M과 나는, 호텔에 짐을 맡기고는 광장으로 나왔다. 조금 걷다 보니 메디나 중심에 광장이 하나 보였다. 우타 엘 하맘 광장(Plaza Uta el-Hammam)이라 불리는 이 광장은, 셰프샤우엔의 모든 골목이 모이는 장소였다. 발 닫는 대로 아무 데나 움직이더라도, 결국 우타 엘 하맘 광장으로만 나오면 다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식사를 했다. 얇게 빚어 기름에 튀긴 빵에 꿀을 찍어먹고, 계란프라이와 올리브와 야채로 구성을 더한 식단과 농도가 진한 오렌지주스. 모로코가 여행자에게 건네는 Moroccan Breakfast였다.




모험을 떠나고 싶어지는 노래 : Jain - Makeba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익숙한 사람이 저 멀리서 언덕을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저 반짝이는 이마는 모를 수가 없었다. 전날까지 온갖 얘기를 하며 매우 친해진 얀스(Jens Peterson)이었다. 우리는 어제 얀스에게 셰프샤우엔에 간다고 말을 했다. 반면, 얀스는 페즈에서 바로 탕헤르 공항으로 이동해 모로코땅을 떠난다고 말했었다. 반가움과 의아함이 들어 한달음에 얀스에게 달려갔다.


"얀스! 뭐야 너 탕헤르로 간다며 어떻게 된 거야?"

"응 비행기 시간을 밤늦은 편으로 미루고 왔어"

"왜?"

"그냥 너희가 셰프샤우엔에 간다길래 나도 가보고 싶어서. 이렇게 오면 너희를 또 만나서 같이 다닐 수 있으니까."

"못 만났으면 어쩌려고?"

"그럼 어쩔 수 없지 뭐. 근데 셰프샤우엔이 작은 도시라서 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어. 여행자들이 옮기는 발걸음은 대게 비슷하거든"


우리와 함께 시간을 좀 더 보내기 위해 비행기 시간을 바꿨다는 얀스가 무척 반가웠다. 나중에는 한국에도 놀러 왔던 얀스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모로코 여행을 할 때 잠깐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그러나 셰프샤우엔에서 그를 조우한 이후, 나는 이 인연이 조금 더 길게 이어질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얀스와의 만남은, 모로코 이후 떠난 수많은 여행지에서 마주친 여행자&현지인들과 좀 더 열린 마음으로 관계를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푸른 도시도 페즈 못지않게 골목 구석구석 구경할 것이 많았다. 작은 골목 틈 사이로 건물들은 부지런히 망가진 제 몸을 손보고 있었다. 공사현장은 그다지 안전해 보이지 않았으나, '그래도 사람이 다 살고 다니는 곳이니 최소한의 안전은 지키면서 하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골목길을 지나쳤다. 발걸음을 조금 더 옮기니 염료를 파는 곳이 나왔다. 모래를 염색해 놓은 것인지, 원래 색깔이 이런 것인지 알 수 없는 염료였다. 바람이 휑하고 불면 가는 입자들이 공기 중에 살짝 흩날렸다. 그 모습이 꽤 아름다웠다. 셰프샤우엔의 건물들은 이 갖은 색의 염료로 화장을 하는 것이었다.


조금 걷다 보니, 골목의 건물 틈 사이로 리프 산맥의 자락이 보였다. 얀스와 M과 나는 누구랄 것도 없이 그곳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산맥 위에서 보게 될 푸른 도시(셰프샤우엔)의 모습이 꽤나 예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골목을 빠져나가니 내리막길이 나왔다. 내리막길 끝에선 오렌지주스를 팔고 있었다. 모로에선 어딜 가나 오렌지를 갈아서 주스로 만들어 행인들에게 팔았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농도 짙은 신선함이었다. 내가 여태 먹었던 오렌지주스는 모두 가짜였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렬했다. 기억이 왜곡 탓인지, 정말 모로코 오렌지주스가 특별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 이후 온갖 곳에서 오렌지를 그대로 갈아서 먹는 주스를 사서 마셔 보았으나, 대규모 오렌지 농장이 있었던 미국에서조차 모로코 오렌지주스의 농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산기슭 초입엔 정상을 향해 길게 뻗은 등산로가 나 있었다. 조금 올라가니 우리가 방금 지나쳐 온 내리막길이 보이고, 푸른 도시의 옆모습이 슬슬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 더 올라가니 푸른 도시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보였다. 마치 아이들이 장난감 블록으로 아무렇게나 대충 여기저기 건물을 배치해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모양이나 배치는 일관성이 없었으나 묘하게 예뻤다. 셰프샤우엔은 그런 순수함이 느껴지는 도시였다.



산 정상에 올라오니 도시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이 총 몇 갠지 셀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도시의 규모는 아담했다. 반대편에는 염소인지 산양인지 모를 동물들이 한가로이 들풀을 뜯고 있었다. 이 녀석들은 주인이 있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축을 기르는 일도 문화권에 따라 축사가 보편적이지 않은 곳도 보았기 때문이었다.



짧은 등산을 마치고 내려와 우리는 어느 골목길에서 사진을 찍었다. 꽤나 많이 찍었다. 사진의 제목은 '모로코에서'. 여행의 마지막 도시답게, 우리는 어떻게든 모로코에서 보냈던 시간의 흔적을 조금 더 남기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다시 우타 엘 하맘 광장으로 돌아왔다. 나는 얀스에게 "저녁 비행기가 언제야?"라고 물었다. 얀스는 "여기서 두 시간 정도 더 쓸 수 있어"라고 답했다. M은 얀스에게 "점심 먹었어?"라고 물어보니, 얀스는 "아니 아직"이라고 답했다. 나는 아까 눈여겨본 루프탑을 손으로 가리키며 M과 얀스에게 "저기 가서 있을까?"라고 물었다. 그들은 말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루프탑 레스토랑에 들어서니 도시 안에서의 풍경이 더욱 잘 보였다. 산 꼭대기에 가장 으리으리한 성채(카스바)가 하나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분명 이 도시의 군주가 살던 곳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경치를 즐기며 민트티를 마시다가 메뉴판을 집어 들었다. Hamburger(Camel). 주인에게 나는 정말 낙타고기로 만든 햄버거냐고 묻자, 주인은 끄덕이며 그렇다고 답했다. 점심을 챙겨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얀스가 혼자 먹는데 우리가 쳐다보고 있는 것도 좀 그렇고, 여기에서 아니면 언제 낙타고기로 만든 햄버거를 먹어보겠냐 싶어 하나씩 시켰다.


실망스러운 맛이었다. 낙타고기는 퍽퍽하고 냄새가 났다. 몽골식 양고기 요리의 모로코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대충 비슷했다. 낙타고기로 만든 햄버거는 여기에서 먹은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원래 낙타고기가 냄새를 잡기 어려운 것인지, 아니면 이 집이 요리를 잘 못하는 식당인 것인지는 수수께끼로 남았다.


식당에서 보내는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또 오만 이야기를 했다. 모로코에서 막 입이 터지기 시작했던 때였다. 글로 읽고 음성으로 듣기만 했던 '시험과목'으로서의 영어가, 내 안에서 언어의 틀로 비로소 인식되기 시작했다. 입에서 아이가 옹알이를 하듯 더듬더듬 영어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아이가 부모의 언어를 닮듯, 나는 얀스가 자주 쓰던 'Indeed'라는 표현을 즐겨 쓰게 되었다.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찾아보지 않아도 상대의 말을 긍정하는 단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내가 서툰 영어로 이야기하면 얀스는 참을성 있게 내 말을 경청해 주었다. 그전까지 나는 영어를 어떻게든 정확하게 말하기 위해 애썼다. 그래서 해외에서 영어를 해야 할 상황이면 몇 번이고 머릿속에서 문장을 내뱉은 뒤 틀리지 않는 문법으로 말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니 영어로 말하는 것이 스트레스일 수밖에. 그러나 얀스와의 대화는 나에게 영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다 뜻이 통할 수 있다는 경험을 남겨주었다. 그렇게 나는 영어로 말할 때, '틀리지 않게 잘' 해야 한다는 공포가 사라졌다.



얀스가 버스를 타고 떠나자, 나와 M은 정말 여행이 끝난 기분이 들었다. 아침에도 여행이 끝나간다는 생각에 여간 속상하고 뭔가 기운이 없었는데, 얀스를 우연히 마주하고 나선 그 아쉬움을 뒤로 미룰 수 있었다. 레드불을 마시며 밤샘공부를 한 뒤 밀려오는 피로감이 더욱 큰 것처럼, 얀스가 떠나고 난 뒤 남겨진 아쉬움은 오렌지주스처럼 진했다. M에게 나는 "형.. 나 이제 좀 숙소 가서 한숨 자고 싶어"라고 말했고, M은 조금 고민을 하다가 "그럼 쉬고 있어. 나는 아쉬워서 조금 더 구경할게"라고 답했다. 그게 M과 내가 아쉬움이라는 감정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었다. M은 부지런했고, 나는 감정에 오롯이 더 심취하고 싶었다. 아쉬움이란 감정도 꽤나 귀하기 때문이다.


숙소는 옆 건물과 가까이 붙어 있었다. 그 탓에 해가 금세 방에서 자취를 감췄다. 따로 불을 끄지 않아도 금방 거뭇해진 탓에 나는 편하게 낮잠을 청했다. 시간이 좀 지나 눈을 뜨자, 옆 침대에서 M은 말똥말똥 눈을 뜬 채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있었다. "형 왔어? 뭐 해?"라는 물음에 "그냥.. 나는 낮잠을 못 자겠어. 예전부터 낮잠을 자본적이 없어"라며 대답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 M과 떠난 모든 여행에서 우리는 낮잠시간을 각자 보내는 시간으로 정하게 되었다.


주섬주섬 나갈 채비를 해 광장으로 향하자, 태양빛이 사라진 자리엔 가로등빛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동그란 황색 가로등들이 꽤나 도시의 분위기를 좋게 해 줬다. M은 내가 자는 동안 어딘가에서 옷을 하나 사 왔다. 마치 카펫으로 만든 것만 같은 후드였다. 처음 드는 생각은 '집시같이 꾀죄죄하다'라는 생각이었는데, 보다 보니 꽤나 유니크했다. 나는 "형 독특하다 잘 어울려"라며 그를 추켜세워줬다. 모로코여행에서 '낯선 것'은 어느새 '독특하고 즐거운 것'이라는 단어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문득 모로코에서의 첫날을 떠올렸다.


마라케시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주인은 우리에게 웰컴드링크라며 차를 두 잔 내주었다. 민트티였다. 민트맛을 살면서 언젠가는 한 번쯤 먹어본 기억이 떠올랐다. 아마.. 치약에서 그 감각을 처음 경험한 것 같다. 아이가 어른으로 몸이 커가며 성장하는 과정에서, 오감 중 하나인 '미각'의 성장통을 미리 예방접종을 맞듯이 도와줄 수 있는 그런 낯선 맛. 나는 민트티를 마시며 이내 나의 청소년기를 떠올렸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나'라는 자아가 생기는 첫 번째 단계를.


이 빌어먹게 낯선, 민트맛의 티는 나에게 또 한 번의 새로운 감각을 깨워줬다. 민트티가 내게 말을 거는 듯했다.


'너, 이 감각 기억나지?' 이거 네가 청소년기에 처음 느꼈던 그런 감각이야. 인생의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기 위한 단계, 그 순간. 지금 너의 여행자로서의 삶이, 딱 그런 단계야. 주어지는 것들을 '받아들임'으로서 여행을 경험하는 단계에서, 내가 스스로 운명을 '주도하고 시련을 겪어내기 위한 인간'으로서 여행을 경험하는 시기. 스스로 탈바꿈하는 첫 번째 단계. 그게 앞으로 네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게 될 거야.'라고 말했다.


그래 나는 이때 느꼈다. 이번 모로코 여행이라는 것에 대해. 모로코 여행 이후의 나는 절대 이전과 같을 수 없게 되겠구나라고. 그때 나의 첫 번째 자아 '여행자'라는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이런 말을 건넸다.


이건 진짜 너의 것이야, 누구의 것도 아니고 네가 겪어냄으로써 태어난 자아. 네 참모습.


나는 그때 모로코를 즉시 사랑하게 된 것이다. 내 '여행자'라는 자아 녀석은 꽤나 자유로운 녀석이었다. 모험을 좋아하고, 용기가 있다. 두려움보단 희망을 본다. 그래서 앞으로 있을 삶의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이 녀석만큼만은 잃지 않으면,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철학. 그 철학은 내가 '어느 어린 날 꿈꾸던 나의 모습'이었다.




사하라 모래언덕에서의 일몰. 나는 중간에 오르다 포기하여 보지 못한 광경이다. M이 찍어 나중에 보내준 사진.
사막은 바다를 많이 닮았다.
새벽의 사하라. 나는 자다가 보지 못했던 장면. M이 말해주길, 사막의 별은 단어 그대로 쏟아질 듯이 많았다고 한다.
저 먼 곳에서 동이 트는 사하라. 언덕이 그 기세를 가까스로 저지하고 있다. 별이 진공청소기에 빨려드는 먼지처럼 사라질 것만 같다.


10년 전 모로코를 다녀온 뒤 썼던 글의 마지막 문단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프리카 땅을 떠나 온 지 2주가 넘었다. 그러나 나는 여행기를 끝마치지 않았다. 누군가 내 글을 기다릴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지만, 끝끝내 내 마음은 모로코에서 떠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다시 쓰는 모블랙 여행기]의 첫 번째 여행지 '모로코'편은 가까스로 이렇게 끝난다.


모로코 여행기의 마지막 한 편을 남겨두고 글을 멈춘 지 3주 가까이 되었다. 모로코를 다녀온 지는 10년이 넘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여행기를 끝마치지 못했다. 누군가 내 글을 기다릴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지만, 끝끝내 내 마음은 모로코에서 떠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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