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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 낸 후에, 남미 -2

본격적인 칠레여행

by 모블랙


골목을 돌자 남미의 따가운 햇살이 우리를 비춘다.

남반구의 기후는 우리와 계절이 반대였다. 인천에서 출발할 땐 완연한 봄이었는데, 여긴 가을 날씨였다. 전형적으로 그늘은 서늘한데, 땡볕에 오래 서있으면 타기 딱 좋은 가을볕이었다.


"M형, H야 여기봐바~~~!"


우리는 한참을 걷다가, 내가 친구들을 부르는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왜?" M이 돌며 물었다. 그는 오늘 둘러볼 데가 많아 마음이 급한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비행기가 늦게 우리를 산티아고에 내려준 바람에, 그가 세운 시간계획이 틀어진 모양이었다.


"그냥 지금 딱 햇빛이 들어오는 자리에 서있는 게 너무 멋있어서 그래."


그러면서도 또 포즈는 잘 취해준다. 차 한 잔씩 사들고 배낭매고 걷는 것이, 영락없는 여행객이다.



칠레는 생각보다 경제적으로 후진국이라는 생각이 잘 안 드는 나라였다. 건물도 비교적 관리가 잘 되었고, 과거 대항해시대 때 들어온 유럽식 문물들이 사회에 잘 어우러져서 뿌리내린 모습이었다.


공용어도 스페인어를 구사하고, 이 땅의 이름인 산티아고(Santiago)는 스페인어권에서 흔하게 이름으로 쓰이는 단어로, 영어의 Saint James(성 야고보)에 해당하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산티아고 데 칠레는 말 그대로 칠레이 있는 산티아고(도시)라는 뜻이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있는 산티아고라는 도시들은 순례길로 유명하다.)


건축양식도 유럽식을 많이 따랐다. 특히 시청사 같은 관공서로 추정되는 건물들은 어김없이 유럽식의 고풍스러운 건축양식을 그대로 쓰고 있었다. 유럽의 황금기였던 대항해 시대의 유산이 아직도 이 땅에서 건축으로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었다.


지리적인 특성은 칠레라는 나라의 특색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우선 칠레는 한쪽에는 안데스 산맥, 다른 한쪽은 태평양으로 둘러싸인 긴 땅이라서 예로부터 외부 침입을 거의 받지 않은 나라였다. 그래서 사람들도 자립적인 성향이 강한 것처럼 느껴졌다.


또 사막(아타카마)과 빙하(파타고니아) 그리고 넓은 포도밭을 가져 세계 와인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은, 그들이 다양한 자연환경 속에서 자연에 순응하고 존중하는 사고를 가지게 된 것 같았다.


또 걱정했던 남미의 치안은 온 데 간 데 없이 치안도 상당히 안정적으로 느껴졌다. 밤거리를 배회하는 데에도 크게 걱정이 안 되는 느낌이 들었다. 남미에서는 이를 두고 칠레를 '가장 유럽적인 국가'라고 부르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조금 걷다 보니 길이 커지고 사람과 차가 많아졌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중심부로 발걸음을 들어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산티아고도 다른 도시와 다르지 않게, 각종 먹거리들이 길가는 사람을 유혹하고 있었다. 배가 고파진 우리는 핫도그를 하나 사 먹어 볼까 고민하다가, 칠레에서의 첫 끼는 조금 참아서 배가 고프더라도 제대로 남미스러운 음식을 먹어보자는데 의견을 모아 애써 못 본 체 간식을 파는 가게들을 지나쳤다. 그래도 콧구멍으로 쳐들어오는 핫도그 굽는 달콤한 냄새, 소스의 자극적인 냄새, 맛있다고 가게 주인들이 소리치는 소리 등은 모른 채 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골목을 지나쳐 본격적으로 Santiago Central Market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 멀리 안쪽까지 뻗어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장골목의 초입에는, 각종 생활용품들을 너저분하게 깔아놓고 천막 아래서 판매하고 있었다.


여행하다 잘 고르면 이런 곳에서 의외로 값싸고 유용한 물건들을 찾을 수 있다. 그런 기대로 물건들을 눈여겨봤으나 우리가 살만한 물건은 찾지 못한 채 다른 골목으로 발걸음만 옮겼다.



큰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햇빛을 피해야 하는 식음료 가게들이 즐비했다. 입구부터 남미의 이글거리는 태양빛을 듬뿍 받은 듯한 탱글한 바나나와 파인애플이 가게의 철재봉의 매감겨 대롱거렸다. 우리뿐 아니고 앞에 있는 관광객들도 뭘 사야 될지 다들 고민인 듯 발걸음을 버둥거렸다. 뭘 사도 과일은 무조건 맛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도 과일을 잔뜩 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오늘 돌아다닐 곳이 많아서, 저 과일들을 가방에 담은 채로 다니긴 무척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과일이 금방 익을 수도 있고, 가방에서 흔들리며 다른 물건들과 부딪혀 짓이겨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쉽지만 돌아올 때 혹시 시장이 계속 열어있다면, 숙소에서 와인과 함께 먹을 수 있는 과일 위주로 사자고 뜻을 모으고 이 공간을 지나쳤다.



시장을 빠져나가니 큰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시청사, 박물관, 기차역 같은 인프라나 문화시설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 소설을 보다 보면, 페스트가 처음 창궐한 북아프리카의 작은 항구마을을 묘사할 때, 건물들을 중심으로 해서 도시의 생긴 모습을 크게 크게 독자에게 그려준다. 그만큼 과거에 건물이 가지는 도시에서의 역할은 그만큼 중요했을 것이다. 지금이야 어디든 네이버나 구글지도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지만, 그런 것이 없을 때는 큰 건물과 도로가 이정표 역할을, 사람들이 모이는 Spot으로의 역할을 했을 테니.

Cerro San Crstobal의 모습


30분은 분명히 넘게 걸었을 것이다. 시장을 빠져나와 큰 건물의 모퉁이를 돌아 발걸음을 옮기던 우리는 드디어 두 번째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곳의 이름은 Cerro San Cristóbal. 성 크리스토발 언덕이라는 뜻을 가진 곳이었다.


언덕을 올려다보니 거대한 성모 마리아상이 눈에 들어왔다. 언덕 아래에는 성모 마리아상이 위치한 언덕 위까지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케이블카가 있었는데, 줄이 말도 못 하게 길었다. 높이를 보니 남산만도 못해서 충분히 걸어 올라가겠다 싶어 걸어 올라가는 길을 택했다.


언덕을 올라가기 전 계단 입구에 적혀있던 Guide Information에는 성모 마리아 상이 바라보는 방향이, 브라질의 유명한 예수상(Corcovado - Christ the Redeemer)을 바라보는 방향이란다. 이곳이 왜 성 크리스토발인지에 대해서도 인포메이션에는 적혀 있었는데,


San Cristóbal(성 크리스토발, 영어로 Saint Christopher)은 기독교 전통에서 여행자와 나그네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진 인물이었단다. 전승된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원래 힘이 매우 센 거인이었고, 세상에서 가장 강한 주인을 섬기고 싶어 신을 찾아 나섰단다. 결국 그는 사람들을 강 건너편으로 건네주는 일을 하며 신을 섬기기로 결정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아이를 등에 업고 강을 건너는데, 아이의 무게가 점점 무거워져 거의 건너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그때 아이가 자신이 세상의 무게를 지닌 예수 그리스도라고 밝히고, 이로써 그는 “그리스도를 짊어진 자(Christo-phoros)”로 불리게 되었단다. 이 이름이 라틴어에서 스페인어로 변형되어 Cristóbal 이 된 것이었다.


그래서 ‘San Cristóbal’은 <그리스도를 짊어진 성인>이란 뜻을 지닌 믿음과 보호, 여행의 안전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성모 마리아상이 위치한 언덕을 산 크리스토발 언덕이라 불렀던 연유에는, 도시의 이름이 산티아고(예수의 제자 야고보를 뜻하는 이름)인 것과 종교적인 조화를 이루는 내러티브였던 것이다.



언덕을 올라가니 반대편으로 산티아고 시내 전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저 먼 곳은 뿌연 안개와 자외선으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 땅이 얼마나 평평하고 넓은 땅인지 한눈에 들어왔다. 높은 건물은 그렇게 많지 않아서, 남산에서 서울 전경, 특히 내가 근무하는 을지로 종로 명동 쪽을 바라볼 때와는 사뭇 다른 감상이 들었다.



마리아상이 시내를 내려다본다. 마치 마리아가 시내의 모든 칠레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과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반대로 아래에서 마리아를 바라보면, 성모가 우리를 안아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정말 기가 막힌 조형물이었다. 없던 신앙심이 생길 것만 같았다.



마리아 상이 위치한 Cerro San Cristobal(성 크리스토발 언덕) 구경까지 마친 우리는, 드디어 점심을 먹으러 발걸음을 옮겼다.


식당의 위치는 아까 우리가 시장을 지나서 언덕까지 걸어오던 길 중간에 위치한 곳이었는데, 어차피 숙소도 그쪽 방향이라 갈만 했다. 그리고 아까 지나쳐오면서 식당이 멋지고, 메뉴판을 흘깃 보니 메뉴도 좋아서 이따 와보자라고 의기투합한 곳이었다.



마치 쿠바에서 체계바라 혁명군의 붉은 별을 상징하는 것 같은 디자인의 입구가 우리를 맞아줬다. 저 입구를 지나쳐 들어가니 마치 건물 사이에 지붕을 쌓고 그 아래, 그러니까 야외인 듯 실내인 듯하는 공간이 레스토랑이었다. 매우 감각적인 공간이었다.



우리는 종업원에게 물었다.


"우리가 칠레에 와서 처음 먹는 식사야. 우리는 칠레뿐 아니고 남미여행 자체가 처음인데, 이 식당에서 파는 제대로 된 칠레음식과 와인을 추천해 주겠어?"


조금 고민하던 그는 이렇게 답했다.


"좋아 그럼 일단 세비체를 먹어봐. 남미, 특히 페루나 칠레 등 태평양을 접한 나라들을 여행할 때는 반드시 세비체라는 요리를 먹어봐. 신선한 해산물로 만든 요리야. 화이트와인과 아주 잘 어울릴 거야."


"좋아 그럼 그렇게 줘. 와인은 어떤 걸 추천해 주겠어?"


"칠레에선 크게 화이트와인은 세 품종이 유명해. 쇼비뇽 블랑. 잘 알지? 샤도네이. 이것도 잘 알 거야 미국도 유명하거든. 그리고 마지막으로 페드로 히메네스."


"페드로 히메네스?"


"응 PX라고 보통 우리는 부르는데, 사막이 있는 아타카마 지방 북부에서 나는 품종으로 이 지방에서만 제대로 즐길 수 있어. 너네가 쇼비뇽블랑이랑 샤도네이에 익숙하다면 PX를 추천해"


"어떻게 할래?"

우리는 종업원에게 음식을 주문하다 말고 한국말로 상의를 했다.


M이 거기서 상황을 심플하게 정리했다.

"품종 하나씩 다 먹자."


나는 놀라서 M에게 물었다.

"세 병을 마시자고?".


대답은 M대신 H가 했다 "Why not?"


"우리 포도 품종별로 하나씩 추천해서 세 병 마실게, 와인은 네가 골라줘."

기다리는 종업원에게 우리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진심이야? 세병을 마신다고?"

"응 원래 꼬레아는 술 잘 먹어"

"와 너네 진짜 웃기다"


종업원은 낄낄거리며 고개를 가로젓더니 카운터로 가 음식주문을 밀어놓고, 와인창고에 와인을 가지러 갔다.


처음 먹어본 세비체


일단 와인 세병 모드 아주 훌륭한 조합이었다. 그렇게 비싸지도 않은 가격에(우리 돈으로 병당 10만 원가량) 아주 좋은 품질의 와인들이었다. 나는 이 날 화이트와인의 세계에 대해 눈을 처음 떴다.


그가 추천해 주는 음식도 환상적이었다. 특히 세비체는 우리 물회 같으면서도, 고추장대신 올리브유와 레몬, 그리고 양파 등으로 씁쓸하고 시큼하게 해산물을 무쳐 내놓는 요리였다. 세비체는 바로 내 인생 요리 목록에 올라오게 되었다. 지금도 한식을 평생 못 먹는다 가정하고, 외국 음식 중 어떤 음식을 질리지 않고 끝까지 먹을 수 있냐는 질문을 스스로 해보면, 나는 1) 초밥 2) 카레 3) 타코, 세비체 같은 중남미 음식이라고 대답할 정도였다.


새로운 경험은 늘 그렇듯 함께 겪는 사람들에게 동지애를 선사한다. 쿠바에 이어 칠레 역시 새로운 것 투성이었다. 역사, 문화, 음식 등 모든 삶의 양식에서 새로움을 접하는 것은 매 순간 이색적인 정보와 자극의 홍수 속에 사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그래서 먼 이국으로의 여행은 우리에게 늘 새로운 날들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것이다. 믿을 수 있는 동지들과의 낯선 곳으로의 여행. 그게 다시 한번 M과 H와 의기투합하여, 내가 가장 힘들고 무너졌던 시절 여기까지 떠나오게 한 원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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