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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의 땅, 남미 -3

Patagonia. 세상의 끝에서

by 모블랙


세 번의 비행기 탑승 후에야, 도착한 목적지 Patagonia
오늘의 음악 : 마일리지 - 프라이머리


Patagonia. 지도상 대한민국 정 반대에 위치한 땅들 중 하나. 우리의 이번 여행 최종 목적지. 파타고니아 지방. 그곳에 마침내 도착했다.


인천에서 텍사스까지 열세 시간. 텍사스에서 산티아고 까지 아홉 시간 반. 그리고 다시 파타고니아 까지 세 시간 반을 이동했다. 사흘에 걸친 여정이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
의류브랜드 파타고니아 티셔츠에 새겨진 디자인


젊은 세대뿐 아니고 등산을 좋아하는 중장년까지 즐겨 입는 의류브랜드 파타고니아. 대부분 브랜드 이름으로 알고 있는 파타고니아는 사실 남미대륙의 가장 아랫자락에 있는 지방의 이름을 가리키는 말이다. 칠레와 아르헨티나가 젓가락 쪼개듯이 잘라지는 국경을 품고 있는 파타고니아는, 이쪽은 칠레땅 저쪽은 아르헨티나 땅이었다.


파타고니아라는 명칭은 마젤란과 그의 원정대가 거인족이라고 묘사했던 원주민들을 가리키는 파타곤(patagón)이라는 말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당시 묘사된 파타곤(patagón)이란 평균 키가 1.8m인 장신족 떼우엘체 족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당시 평균 키가 1.6m 였던 스페인 사람에 견주어 봤을 때는 가히 거인족이라 부를 만했다.


파타고니아는 여행꽤나 좋아한다는 사람들의 버킷리스트에 심심치 않게 올라가 있는 여행지이기도 했다. 왜냐면 이 파타고니아 지역에 있는 설산을 등반하면서 만나게 되는 경치가, 세계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등산코스 중 하나로 손꼽히기 때문이다. 그 설산이 위치한 국립공원 이름이 바로 토레스 델 파이네(Torres del Paine)였다.


토레스 델 파이네는(Torres del Paine) 칠레 남부 파타고니아 지역에 위치한 세계적인 산악 국립공원으로, 웅장한 산봉우리와 빙하, 호수, 야생동물이 어우러진 경관으로 유명하다. 토레스 델 파이네는, 원주민인 떼우엘체 족의 말로 '푸른 탑들'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등산코스의 마지막에 만나게 되는 세 봉우리의 멋진 설산. 그 모습이 바로 파타고니아 티셔츠에 실루엣으로 그려진 풍경이었다. 우리는 그 절경을 보러 머나먼 지구 반대편까지 온 것이다.


푼타 아레나스 공항의 전경.
드디어 목적지에.

푼타 아레나스 공항에 내렸다. 여기서 부터는 조금 긴장을 해야 한다. 산티아고는 날씨가 가을 날씨였는데, 여기는 얇은 패딩을 입어도 될 정도로 서늘했다. 딱, 글을 쓰는 지금의 날씨였다. 언제 영하로 내려갈 지 모르는, 가을과 겨울 계절의 선에 위치한 경계의 날씨.


갑작스레 쌀쌀해진 날씨에, 우리는 공항에 내리자마자 캐리어를 풀어 부랴부랴 걸칠 옷들을 꺼내 입었다. 장거리 여행을, 특히 야외활동이 많은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두꺼운 옷은 사치일 때가 많았다. 부피가 크면 활동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많이 움직이다 보면 몸에 어느 정도 열이 항상 나있기 때문에 너무 큰 옷은 별 필요가 없다.


푼타 아레나스는 작은 도시이다. 도시라기보단 마을에 가깝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이 마을의 가장 특이한 점은, 이곳이 100% 여행자를 위한 마을이라는 점이다. 과거부터 이곳은 남미대륙 가장 아래에 위치한 마을로서, 남극으로 탐험하는 사람들이 묵었던 도시이다. 지금은 남극 전초기지에 방문하기 위한 여행객보다는, 토레스 델 파이네나 모레노 빙하를 보기 위한 여행객들로 북적거리는 도시. 사는 사람의 일상 따로, 여행하는 사람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이 여행객을 위한 도시였다. 주민들 모두 숙박, 레스토랑, 여행사 등 여행객을 대상으로 한 생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흐린 날씨와 흐린 하늘. 저 멀리 어딘가에 남극의 빙하가 보이는 것만 같다. 여기서 얼마 많은 탐험가들이 저 바다를 쳐다봤을 까. 나는 그 시절의 막연함을 이내 떠올렸다. 미지의 땅. 호기심 하나로 항해를 이어간 유럽인들의 유산은, 지금도 도시 전체에 남아 있었다.



길을 나서기 전 스마트폰의 진동이 울렸다. 한국에서 온 카톡이었다. 푼타 아레나스와 한국은 정확하게 열두 시간 차이가 났다. 내 옆자리 선배로에게서 온 카톡이었다. 카톡이 온 시간은 칠레 시간으로 오후 한 시가 조금 안 됐을 무렵. 그러니까 선배는 이미 자정을 넘긴 깊은 밤에 나에게 카톡을 보낸 것이었다.


블랙아. 칠레는 잘 도착했어? 등산한다더니 이미 다녀왔니? 날씨는 좀 어때? 컨디션은? 사무실 일은 걱정하지 말고 근심 걱정을 털고 올 수 있으면 좋겠다.

사실 우리가 꼭 한 직장을 평생 다녀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 나도 알아. 회사가 내 인생을 전부 책임져 주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근데 이렇게 나가게 되면 네가 후회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 네가 잘못한 것이 아니었는데, 결국 떠나는 것은 너잖아. 네 손해잖아.

나는 그래서 네가 다음 스텝에 대해 어느 정도 준비가 된 상태에서, 아니 준비까진 아니어도 어느 정도 앞으로 뭘 할지가 명확해진 상태에서 그만둬도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해. 내 오지랖일 수도 있지만 말이야.




첫 번째 행선지는 무한도전 <배달의 무도> 편에 나왔던 신라면 가게였다. 따뜻한 김밥과 라면, 그리고 닭강정까지, 한국의 맛이 그리웠다. 나는 호기롭게 몇 주를, 아니 몇 달을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각오로 떠났다. 그러나 마음은 아직도 사표를 냈던 그 순간에서 떠나오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한국의 맛이 당기는 것을 보니 말이다. 아쉽게도 가게는 오늘 쉬는 날이었다.



우울한 마음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친구들은 내 눈치를 계속 살폈다. 선배의 문자를 받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고민 또한 더욱 깊어졌다.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표를 내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사표를 다시 주위 담는 것이었다. 나는 알량한 자존심에 차마 그럴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친구들은 나를 자꾸 웃게 해 주었다. 농담도 걸어주고, 걷다가 갑자기 내 주위로 모여 셀카찍자고 하며 웃으라고 하고. 예민한 나를 잘 이해해 주는 그들이었기에, 지금 옆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잘 안다는 것처럼. 그들은 억지로 내게 미소를 짓게 했다. 나는 애써 웃음을 얼굴에 띄웠다.



머릿속에 아른거리는 신라면과 김밥을 뒤로한 채, 우리는 동네를 걷다가 항구 앞에 있는 작은 레스토랑을 발견했다. 구글을 보니 디아블로 와인 셀렉션이 훌륭한 레스토랑이라는 리뷰가 많았다. 우리는 이번 여행에 와이너리 투어가 없으니, 그걸 대신하는 셈 치자는 생각에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항구 앞에 있는 레스토랑답게, 메뉴에는 해산물 요리가 많았다. 우선 우리는 와인을 고르기 전에 음식부터 시켰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여태껏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딱딱한 빵과 함께 전체요리가 나왔다. 멍게, 피조개 등등 여러 해산물로 만들어진 스튜였다. 우리는 며칠 굶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빵과 스튜를 먹었다. 따뜻한 해산물 스튜에 푹 젹셔진 빵을 한입 베어 부니, 몸에 온기가 돌았다. 배에 따뜻한 것이 들어가니, 비로소 한숨을 돌리는 느낌이 들었다.



종업원은 우리에게 와인을 골랐냐고 물어봤다. 우리는 창고에 내려가 직접 고르고 싶다고 답했다. 그는 그러라며, 우리를 안내했다.


요식업에 종사하는 지인이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편의점에 납품할 와인을 선택하는 담당자는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실력 있는 소믈리에 중 한명일 거야".


술은 가격과 맛이 비례하는 경우가 많다. 와인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그러니 편의점에서 판매할 값이 저렴한, 그러나 가격대비 맛있는 와인을 선정하는 것은 보통 경험과 실력으로는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모두 잘 알듯, 그중 하나가 디아블로 와인이다.


창고에 내려가니 끝도 없는 와인이 벽을 메우고 있었다. 종업원은 일 년 내내 이 와인창고가 비슷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한다고 했다. 생전 처음 보는 디아블로 와인들이 난무했다. 우리는 한 병은 추천을 받고, 한 병은 그냥 감으로 골랐다. 7년 정도 숙성된 빈티지였다.


때로는 이야기를 통해 의미를 갖는 것들이 있다. 이 날 이후 디아블로 와인은, 그냥 편의점 와인이 아니라 내게 남미 와인의 세게에 입문시켜 준 와인으로 남았다. 같은 포도 품종이라도 칠레와 아르헨티나에서 자란 포도로 만든 와인은, 프랑스나 스페인에서 생성된 와인과는 묘하게 달랐다. 개성이 조금 더 강한 느낌이었다.



식사를 마치고는 숙소로 돌아와 우산을 챙겨 다시 거리로 나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날씨가 이렇다면 내일은 비 오는 산행길이 될 것이 분명했다.


내일은, 새벽에 길을 나선 뒤 다른 등산객들과 함께 미니밴으로 이동하여 열 시간 넘는 산행을 하게 된다. 그러니 중간중간 영양과 수분을 보충하는 것은, 전날 꼼꼼히 준비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였다. 우리는 간단한 프로틴 바와 초콜릿, 그리고 내일 점심에 먹을 샌드위치 재료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늦은 밤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식당에서 간단히 저녁과 함께 맥주를 마셨다. IPA의 씁쓸한 향이 목을 치고 넘어갔다. 나는 친구들과 말도 없이 단숨에 맥주를 한 병 들이켰다. 그리고 똑같은 맥주를 한 병 더 시켜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M과 H는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았다.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에선 '네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알아'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 나는 가장 힘들었던 때, 모든 것을 비우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먼 땅으로 떠났다. 머릿속은 질문만 가득했다. 그러나 남미에서 답을 찾으리라 기대하고 간 것은 아니었다. 다만 머릿속을 시도 때도 없이 헤집어 놓는, 이 후회화 고민을 터벅터벅 걷는 산행길에 발자국과 함께 남겨놓을 수 있기를 기대했을 뿐이다.


‘그러다 보면 잊히겠지, 먼 땅이니까. 다시 이곳에 올리는 없으니까. 그렇게 후회와 미련을 두고 오는 거야.’


라고 속으로 곱씹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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