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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의 땅, 남미 -5

화해의 순간

by 모블랙
Nabi - Peggy Gou (feat. OHHYUK)


나비 - 페기 구


시간 그 허망함 속에

이제 그만 나오려 해요
미움을 사랑할 수 있나
떠나가는 소리가 아름다워 난


다 관심 없는 자
그냥 쳐다보는 자
지나가는 자 괜히 알아보는 자
무심히 스쳐 간 많은 시간, 시간, 시간, 시간, 시간


고요한 나의 시간 속에
멀리 미움만 보여요
아름다움은 어디 있나?
라고 말한 이들은 다 어디 있나?


나비처럼 나빌레라 날아가자
나빌레라 날아가자
나빌레라 날아가자 (다 관심 없는 자)
나빌레라 날아가자 (지나가는 자)
나빌레라 날아가자 (괜히 알아보는 자)
나빌레라 (무심히 스쳐 간 많은 시간, 시간, 시간, 시간, 시간)




길을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걷다가 문득, 선배가 보낸 카톡이 생각났다. 나는 오른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의 전원 버튼을 누르고, 노랗고 귀여운 카카오톡 아이콘을 검지손가락으로 눌렀다. 그가 어제 카카오톡으로 보낸 메시지는 여전히 우리의 대화 가장 마지막 줄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나는 그의 메시지에 답변을 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무슨 말로 대답을 해야 할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카톡 앱을 닫고 음악을 틀었다. 그러나, 그의 말이 묘하게 후렴구의 가사처럼 머리에서 반복 재생됐다. 특히 "네 손해잖아."라는 그 다섯 글자가.



이미 산을 잘 타는 일행들은 멀찍이 앞서서 길을 걸었다. 나처럼 걸음이 느린 초보 등산객들은 결국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M과 H는 굳이 나누자면 산을 잘 타는 축에 속했다. 둘 다 지구력이 굉장했다. 반면에, 나는 지구력보단 치고 나가는 순발력이 좋은 편이었다.


예전부터 단거리 달리기를 잘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그 사실을 알았다.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한 번도 운동회 때 단거리 달리기 계주를 놓친 적이 없었다. 그러나 1km가 넘어가는 골인 거리는 늘 어려웠다. 단거리 계주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도, 1km가 넘는 거리는 중도 포기만 안 하면 다행일 정도였다.


사회 초년생이 되어 보니 회사 생활이라는 것이 단거리 달리기가 아닌 중, 장거리 달리기에 가까웠다.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순발력을 앞세워 그 순간순간 기지를 발휘하는 것은 단거리 달리기처럼 잘할 수 있었으나, 먼 미래를 보고 차근차근 방향에 맞게 행동하는 것은 장거리 달리기처럼 여전히 어려운 숙제였다.


갈등의 순간 상사에 맞서 옳고 그름을 주장한 것은 틀리지 않았으나, 사표를 내는 타이밍은 또 따로 있었다. 사표도 명분과 실리가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선배는 나에게 그것을 카톡으로 알려주고 있던 것이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고민하다가 어렵게 전송 버튼을 누르며.



"블랙아 여기 와바~!"


저 멀리 위에서 H가 나를 부른다. M은 연신 스마트폰 카메라의 셔터 버튼을 누르기 바쁘다. 도대체 뭐길래.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들이 있는 곳까지 올라가니, 웅장한 협곡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거 같이 보고 싶어서 여기서 H랑 한참 기다렸어 짜샤. 빨리빨리 안 올라와?"


잔소리는 M의 담당이었다. 그의 혼내는 듯한 말투와는 다르게, 그의 얼굴은 반가움을 감추지 못한 채 웃고 있었다.


"우와..."


나는 자연이 만들어 놓은 신비로운 협곡의 모습에 훅 빨려 들었다. 옆에서 가이드는 조용히 일러주었다. 설산의 저쪽 협곡은 아르헨티나 땅이라고. 저쪽 땅의 협곡에선 계곡 물들이 모여서 빙하가 된다고.



설산 쪽으로 발걸음을 더 옮기니 계곡물이 콸콸 쏟아지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렸다. 가이드는 일행을 돌아보며 우리가 이제 절반 조금 더 넘게 올라왔음을 알려줬다. 한국 같으면 "음.. 한 20분 남았어요 정상까지."라고 용기를 북돋아 줄 만한 거리. 그는 이어서, 곧 점심식사를 할 장소에 도착하니 조금만 더 힘을 내라며 일행들을 격려했다.



점심식사를 할 장소는 작은 산장이었다. 아마 비상사태에 대피소로도 쓰이는 듯한 곳이었다. 적어도 매서운 추위와 위험한 야생동물을 1차적으로는 방어해 줄 수 있겠다 싶었다.


일행들은 하나, 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옷을 벗었다. 모두가 입은 옷을 한 꺼풀 벗을 때마다 몸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우리는 주섬주섬 가방을 정리하며 준비해 온 점심식사를 꺼냈다. 전날 싸 놓은 샌드위치였다. 내 샌드위치는 가방에 넣을 때 중심을 잘못 잡았는지 한쪽으로 짓이겨져 있었다.


"15분 뒤에 출발합니다." 가이드는 그렇게 서두를 것을 요구했다. 오래 쉬면 자칫 긴장이 풀려 더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앞으로 남은 코스가 가장 경사지고 힘든 코스라 그의 입장에선 안전에 조금 더 유의해야 했다. 샌드위치가 뭉개졌다고 불평할 틈 따윈 없었다.





"괜찮아?"

M이 뒤돌아 보며 묻는다. H는 한참을 앞서가더니 시야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 구도 어쩐지 익숙하다. 어디였더라.. 그래 기억났다. 2년 전 사하라사막에서 M과 함께 함께 모래산을 오를 때였다. 뒤처지던 나를 M은 끝까지 발맞춰주다가, 내가 포기하자 비로소 제 속도로 정상에 올라갔다. 모래 언덕에서 해지는 사하라를 본 M은, 그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나와 함께 그 경치를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그러지 않으리라. 이번에는 내가 죽어도 올라간다.


"응 괜찮아 형 갈만해"






토레스 델 파이네는 마치 사계절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다. 한국이 봄이니, 계절상으론 가을인 곳이었다. 내딛는 발걸음마다 낙엽이 바삭거렸다. 푸른 들판엔 봄 생명의 기운이 도사리는 것만 같았다. 빙하같이 탁하고 푸르른 물에 손을 담그면 여름 계곡처럼 차가웠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목적지를 바라보면, 영락없는 겨울 설산이었다.


그런데, 도대체가 끝이 보이질 않았다. 점심을 먹을 때 분명히 절반 이상 왔다고 했는데, 오르막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M과 H도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일행이 전부 올라가고 등산을 제일 못하는 네 명만 남겨져서 서로를 의지하며 올라갔다. 그리고 세 명이 뒤쳐졌다. 그리고 둘이 더 뒤처졌다.


결국 가장 마지막에 남은 것은 나와 독일여자 둘 뿐이었다. 아침에 버스에서 무슨 책 읽냐고 내가 물어봤었던. 그 질문에 "철학"이라고 짧게 답했던 그 여자. 우리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최후의 생존자 마냥, 서로를 의지하며 묵묵히 걸었다. 한참을 말없이 걷다가 결국엔 통성명을 했다. "Black", "Marie". 서로의 이름이 오고 갔다.


가파른 마지막 언덕을 넘으니 때아닌 빙하색의 호수와 설산이 눈앞에 펼쳐졌다. 너구나, 파타고니아. 나는 오래 기다려온 친구를 재회한 것처럼, 설산의 모습에 반가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윽고 올라온 마리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듯했다.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We finally made it." 마리는 답했다. "Slowly, " 그리고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셨다. "but surely".


나는 망치를 한 대 맞은 듯했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그 말이 가진 메시지는 명확했다. 그녀는 속도보다는 방향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발걸음은 느렸으나, 걸어가는 방향은 명확했다. 나는 뒤쳐진 채 친구들의 등을 따라잡기 위해 조급했으나, 그녀는 자신의 리듬으로 꾸준히 걸었다. 그러니 나는 "마침내" 도착한 반면, 그녀는 도착 또한 과정의 일부였을 뿐이었다. 마치 내딛는 발걸음이 쌓였기 때문에 도착은 당연한 일인데 뭐 그렇게 놀래냐는 듯이.


그래. 나는 쫓기고 있었다.


'마침내' 통과한 취업의 문턱에서 나는 환호했다. 그런데 불과 3년 만에 나는 쫓기는 사람처럼 조급하게 사표를 내고 머나먼 남미까지 떠나와 있었다. 분명, 쫓아낸 사람은 없었다. 제 발로 온 것이었다. 그런데 무엇이 나를 그렇게 조급하게 만들었나?


회사생활은 분명 내 생각대로 되는 법이 좀처럼 없었다. 나는 늘 인정이 고팠다. 잘한다 잘한다 해야 더 잘하는 체질이었다. 그러나 내 응석을 들어줄 사람은 회사엔 없었다. 늘 보호받던 아들, 학생에서 말단 신입사원이 되니 온도차가 극명했다. 알아서 배워도 모자랄 판에, 먼저 가르쳐주지 않는 선배들을 탓하기도 했다. ‘가르쳐주면 잘할 자신이 있는데..’ 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어렸었다.


그러니 무언가에 점점 쫓기기 시작했다. 그 조급함은 분명히 내가 만들어 낸 환상이었다. 자기혐오는 제 멋대로 만들어 놓은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나에 대한 비난이며, 오만은 내 맘대로 다른 사람들을 평가질 한 결과였다. 나는 나를 미워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러 있었다. 나와의 화해가 절실했다.




정상에 오른 뒤에 우리 셋은 약속한 대로 미니 와인 세병을 따서 함께 축배를 들었다.


시간 그 허망함 속에

이제 그만 나오려 해요
미움을 사랑할 수 있나
떠나가는 소리가 아름다워 난

-나비 中-


성적을 매기는 인생. 정답과 오답이 있는 세계. 그 시험지 속에 평생을 파묻혀 살아왔다. 이성이라는 것이 생겼을 무렵부터 학교에서, 학원에서. 놀이터에서도, 운동장에서도, 피시방에서도. 난 그렇게 경쟁의 세계에 너무나 심취해 있었다. 나는 대부분의 전투에서 이겼으나, 가장 큰 전쟁에선 패배하기도 했다. 수능 실패. 그게 내 그때까지의 인생에서 가장 큰 실패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니 자기혐오가 들어서고, 그걸 부정하기 위해 남들보다 내가 사실은 낫다며 오만하게 살았다. 그 마음이 나를 좀먹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닌 방향인데, 나는 그 방향을 잃은 채 표류하고 있었다. 대학 가고, 취업하고 하니 이제 다음 목표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평생을 몸담아온 '정답' 레이스는 이제 '대기업 취업'이라는 결론으로 막을 내린 듯 보였으나, 정작 내 인생의 달리기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단거리 달리기만 엉뚱한 방향으로 주야장천 하고 있었던 것이다. 방황과 조급함. 그것들은 모두 내가 스스로 방향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닥친 것이었다. 평생을 사회가, 부모가 정해 놓은 목표를 좇아 살았으니, 스스로 방향을 발견하는 방법을 배운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Slowly, but surely". 마리가 말한 것처럼 이 순간 방향을 똑바로 잡아야 할 때라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나 스스로.





하산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분명 올라올 때만큼 시간이 걸렸을 텐데 말이다. 내리막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4시간은 족히 넘는 산행이었다. 하산할 때는 비가 내렸다. 나는 미끄러지듯 걸었다. 선배의 카톡에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답변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여전히 무지개는 산 중턱에서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날은 흐려 곧 안갯속에 사라질 듯 위태로웠지만, 임종을 앞둔 무지개가 건네는 유언이 들리는 듯했다. "너랑 화해는 잘했어?"라고.


나는 스마트폰을 열어서, 카카오톡 앱을 켰다. 그리고 선배가 어제 보낸 메시지를 다시 보았다.


"블랙아. 칠레는 잘 도착했어? 등산한다더니 이미 다녀왔니? 날씨는 좀 어때? 컨디션은? 사무실 일은 걱정하지 말고 근심 걱정을 털고 올 수 있으면 좋겠다. 사실 우리가 꼭 한 직장을 평생 다녀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 나도 알아. 회사가 내 인생을 전부 책임져 주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근데 이렇게 나가게 되면 네가 후회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 네가 잘못한 것이 아니었는데, 결국 떠나는 것은 너잖아. 네 손해잖아. 나는 그래서 네가 다음 스텝에 대해 어느 정도 준비가 된 상태에서, 아니 준비까진 아니어도 어느 정도 앞으로 뭘 할지가 명확해진 상태에서 그만둬도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해. 내 오지랖일 수도 있지만 말이야."


앱 하단에 메시지 입력칸을 엄지손가락으로 눌렀다. 키보드 배열의 자판이 튀어나왔다. 나는 천천히 준비한 대답을 채워 넣었다.


"형님. 이렇게 연락 주셔서 감사해요. 염려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제가 고민을 해봤는데요...(중략)"


전송버튼이 누르자 메시지가 바로 대화창에 '1'이라는 숫자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마침내 사표를 주워 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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