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새 출발, 남미 -6

빙하와 삶의 순환

by 모블랙
Celebrate - Anderson .Paak

<엘 칼라파테(El Calafate)>


우리의 파타고니아 두 번째 목적지. 우리가 묵고 있는 푼타 아레나스 숙소에서 편도 6시간. 왕복 12시간의 아르헨티나 땅.


엘 칼라파테는 아르헨티나 땅의 작은 도시 이름이다. 20세기 초 상인들의 정착지였던 이곳은, 그곳에서 자생하는 칼라파테 나무의 이름을 따 불리게 되었다. 칼라파테의 열매는 블루베리를 닮은 작고 진한 남보라색을 띤다. 파타고니아의 원주민인 떼우엘체족의 전설 중에는 '여행자들이 칼라파테 열매를 먹으면 언젠가 반드시 파타고니아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떼우엘체 부족의 한 소녀가 외지인 여행가와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여행자를 따라 파타고니아를 떠나려 했으나, 부족의 규율에 따라 떠나지 못하고 남게 되었다. 슬픔에 잠긴 소녀는 영적인 존재에게 매일 같이 기도했다. 그러자 그 영적인 존재를 그녀를 칼라파테 나무로 변하게 했다.

시간이 흘러 그녀의 연인이었던 여행가가 파타고니아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그가 사랑했던 소녀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를 찾다 지친 여행자는 우연히 곁에 있던 칼라파테 나무의 열매를 먹었다. 그러자 그의 머릿속에서 그토록 찾아 헤맨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이후 파타고니아의 사람들은 '칼라파테 열매를 먹은 사람은 반드시 파타고니아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믿는다. 엘 칼라파테의 상인들은 칼라파테 열매로 만든 아이스크림과 음료 등을 '귀환의 부적'이라 말하며 여행자들에게 권한다.


아르헨티나와 칠레 국경에 위치한 아르헨티나 군부대의 표지판.


편도 6시간, 왕복 12시간. 편도 500km, 왕복 1000km.


하루에 12시간의 버스를 탄다는 것은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분명 버스로 가긴 만만치 않은 거리. 우리나라로 따지면 하루 만에 서울에서 부산을 운전해서 갔다가, 해운대 바다 한 번 보고 다시 운전해서 서울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그러나 선택지가 없었다. 엘 칼라파테에도 공항이 있었으나, 다음날 다시 산티아고로 돌아가려면 어차피 푼타 아레나스에서 비행기를 타야 했다.


물론, 엘 칼라파테에서 며칠 더 머물며 여행을 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그곳에는 빙하를 걷는 관광 프로그램들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짧은 휴가를 쪼개서 이 먼 땅까지 왔기에 그럴 여유는 없었다. 우리의 목적은 그저 빙하를 한 번 보는 것이었다. 따라서 푼타 아레나스에서 당일치기를 하는 것이 시간적으로도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선택이었다.


그래서 전날 등산의 피곤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새벽 5시에 버스를 타고 눈을 감았다. 한참을 달려서 어제 토레스 델 파이네를 오가며 잠깐 들렀던 국경&주유소에 또다시 도착해서야 동이 트기 시작했다. 파타고니아의 셋째 날. 드디어 아르헨티나 땅을 밟게 되었다.



검문소를 조금 지나서 달리자 구름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빙하를 보러 가는 날인 것을 어찌 알았는지, 하늘이 먼저 푸르른 모습을 보여줬다. 4월. 한국이라면 벚꽃이 필 무렵, 남반구의 이 땅은 가을이 한창이었다.


우리는 어제 10시간이 넘는 산행을 하고, 반쯤은 실신한 채로 버스에 실려 숙소로 돌아왔다. 모두가 땀과 비로 홀딱 젖었다. 지루함에 지친 나와 M, H는 서로의 몸에서 쿰쿰한 냄새가 난다며 놀려댔다. H는 나를 놀리는 텐션을 끌어올리더니, 급기야 내 옆에 앉은 독일여성 Marie에게 "블랙이가 냄새나서 미안해. 내가 대신 사과할게"라며 장난을 쳤다. 그 얘기를 듣던 Marie는 정색을 하며 "비를 맞으며 10시간 등산을 했는데 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며 되려 나를 비호했다. 그녀는 H의 장난을 진담이라고 오해했던 것 같다. H는 그 반응도 재밌었는지, Marie에게 토종 한국 발음으로 "알 유 에인절(Are you Angel)?"이라고 물었다. 버스에 있는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토레스 델 파이네는 즐거운 산행이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자 다리는 족쇄가 채워져 있는 것처럼 땅에서 잘 떨어지지 않았다. 고작 버스에 힘겹게 몸을 들어 올려 자리에 철퍼덕 쓰러지는 것이 최선이었다. 어차피 감수해야 할 왕복 12시간의 버스라면, 이렇게 등산 직후 몸을 가누지 못하는 다음날 가는 것이 최고의 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도사 M이 짠 일정이었다.


페리토 모레노 빙하


<엘 칼라파테>라는 도시에서 한 시간 정도 더 들어가면 <페리토 모레노 빙하(perito moreno glacier)>가 나온다. 드디어 목적지인 페리토 모레노 빙하 전망대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천둥이 치는 것 같은 소리를 들었다. 빙하가 무너지고 있었다.


페리토 모레노 빙하는 지구에서 단 3개뿐인 '전진하는 빙하'다. 그래서 빙하는 점점 밀리다가 끝 부분에서 굉음을 내며 붕괴하는 것이었다. 떼우엘체 사람들은 끊임없이 전진하는 거대한 빙하 속에 '케킨'이라는 거인의 영혼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케킨의 영혼은 산과 호수를 지키기 위해 끝없이 움직인다는 것이, 빙하가 전진하는 것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었다. 그래서 빙하가 무너지는 소리에 대해서 떼우엘체족은 '케킨이 화내거나 즐거울 때 내는 포효소리'라고 밝혀왔다. 가이드로부터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빙하의 붕괴 소리를 들으니 정말 거인이 고함을 지르는 것 같이 느껴져 신비로웠다.


빙하 근처에는 보트를 타고 매우 가까이까지 접근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또 어떤 이들은 저 빙하 위를 걷기 위해 장비를 꼼꼼하게 챙기고 있었다. 쩍쩍 갈라지는 빙하 위를 트래킹 하는 것이 매우 불안한 것처럼 느껴졌다. '안전 귀환'. 왜 칼라파테 열매로 만든 음료가 매점에서 잘 팔리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우리는 그 광경을 더 자세히 보고자 데크를 향해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뷰포인트에서 바라본 페리토 모레노 빙하의 모습
머리가 바람에 날려 야자수 같다


페리토 모레노 빙하(Perito Moreno Glacier)는 사실 사람 이름에서 유래했다. 1870년대 후반, 아르헨티나의 탐험가이자 학자인 프란시스코 모레노(Francisco Moreno)가 아르헨티노 호수 지역을 탐험한 뒤, 처음으로 공식 문서에 기록했다. 천혜의 자연경관을 품은 파타고니아 남쪽 땅은 칠레와 아르헨티나가 치열하게 국경 분쟁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모레노 박사의 기록에 따라 이곳은 아르헨티나 땅으로 인정받게 된다. 아르헨티나 정부에선 그 공로를 기려, 빙하에 Perito(전문가, 조사관) Moreno라는 이름을 붙였다.


20세기 초 과거 기록에 따르면 엘 칼라파테는 '도둑질하는 바람의 도시'로 불렸단다. 바람이 워낙 강해 '밤에 빨래를 널어놓고 자면, 다음날이면 반드시 사라진다'라는 농담이 퍼져있는 도시였다. 그 농담처럼 정말 바람이 강했다. 내 머리도 강풍을 이기지 못하고 제멋대로 뻗쳤다. 사진 찍기 전에 몇 번 손질도 해 보았으나, 금세 다시 뻗치는 것을 보고 만지기를 포기했다.


빙하는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푸른색, 옥색, 은백색 등으로 겉옷의 색깔이 바뀌었다. 빛에 따라 빙하가 옷을 갈아입는 장면이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빙하는 무너진 뒤 떠내려가기도, 가라앉기도 한다.
아르헨티노 호수의 회색빛이 신비롭다.


빙하는 몸통에서 떨어져 나간 뒤 여러 조각으로 쪼개졌다. 큰 조각은 아르헨티노 호수를 향해 서서히 이동하며 녹았다. 호수 물은 다시 대기의 순환을 거쳐 구름이 되고, 빗방울이 되어 파타고니아 설산에 제 몸을 흩뿌리게 된다. 산에 내린 비는 작은 계곡물이 되고, 그 계곡물이 합쳐지고 뭉쳐지다가 차가운 기온을 만나 얼어버린다. 그게 빙하가 시작하는 지점이었다. 새로 태어나는 빙하는, 다시 말해 과거에 떨어져 나간 빙하였다. 빙하의 죽음은, 시간이 흘러 빙하의 탄생이 되었다. 그 시스템이 마치 생의 순환고리(Circle of Life)처럼 느껴졌다.


나는 마치 빙하가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회사라는 큰 조직에서 떨어지려 사표를 쓰고 파타고니아에 와있었다. 그러나, 어제 등산이 나에게 준 해답은 '다시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사표를 낸 것보다, 그것을 주워 담게 된 뒤에 마주할 일들이 더 겁이 났다. 사표를 내기 전과 타인의 시선이 같기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사표 제출이 가진 의미를 너무 순진하게 여기는 것이었다. 내가 저지른 일이기에 이전보다 더욱 힘이 들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사표라는 무기가 사라지면, 나는 도대체 스스로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나는 그래서 복귀하자는 마음을 먹은 뒤에도 두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빙하를 보고 있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처절하게 부서진 빙하 같은 신세이다. 회사를 복귀한 뒤 맞닥뜨리게 될 상황들도 녹고 있는 빙하처럼 이전과는 다르게 전개될 것이 분명했다. 그 과정을 버텨내며 나를 잃을 까봐 겁이 났다. 그런데, 빙하는 결국 다시 돌고 돌아 빙하가 된다. 그럼 나 역시도 결국은 나로 거듭날 것 아닌가? 힘든 상황도 시간이 지나 보면, 나를 결국에는 성장시킬 수 있는 발판이 되는 것 아닌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드디어 다시 웃을 수 있게 됐다. 내 웃음의 의미를 알아챘는지, 곁에 있던 M과 H도 함께 웃었다. 오랜만에 지어보는 환한 웃음이었다.



숙소에 다시 복귀하니 이미 해는 져 있었다. 몸은 여전히 두드려 맞은 것처럼 여기저기가 쑤셨다. 우리는 식당에 내려가 간단히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은 뒤 일찍 잘 수도 있었다. 그러나 파타고니아의 마지막 밤이라는 생각에, 또 이곳을 살아생전 다시는 못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근처 Pub에 가서 저녁을 먹고 놀기로 했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 옆에는 작은 탁구대가 있었다. 장식품은 아닌 듯, 근처에 탁구채와 공이 있었다. H는 나에게 결투를 신청했고, 나는 "H야 네가 아직 혼이 덜났구나"라며 도전을 수락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 탁구 경기.. 생각보다 팽팽했다. 너무 시시하면 어쩌지라고 속으로 생각했던 나는, 어느새 H가 넘기는 탁구공을 받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식당에는 다른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우리를 비롯한 손님 대 여섯, 그리고 주인으로 보이는 종업원 한 명뿐이었다. 우리 경기가 재밌어 보이자 가게 주인은 "그냥 테이블을 좀 치워 줄 테니, 넓은 데서 겨루는 것은 어때?"라며 친절한 제안을 해왔다. 넓어진 경기장에서 나와 H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두고 싸우듯 혼신을 다해 탁구공을 쳤다. 똑-딱-똑-딱 오고 가는 탁구공을 따라 사람들이 시선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관객들은 우리가 잘 치면 환호를, 실수할 때는 아쉬움을 표현했다. Patagonia에서의 마지막날 밤, 작은 Pub에서는 사람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새삼 이 먼 곳까지 함께 와서 나와 시간을 보내고 있는 M과 H에 대한 감정이 북받쳤다. 그 감정의 발단은 탁구를 치다 무심코 쳐다본 벽에서 한글을 발견하면서부터였다.


‘고마워요‘. 이곳을 다녀간 선배 한국인 여행자가 반듯한 글씨로 남긴 한 마디. 그게 내가 친구들에게 느끼는 가장 큰 감정이었다. 고맙다는 말은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 한 우리의 우정을 나타내는 징표였다.


But you're doing well, I mean you're not dead.
그래도 넌 잘 버티고 있어. 뭐, 적어도 살아 있잖아.

So let's celebrate while we still can.
그러니 우리가 아직 할 수 있을 때 축하하자.

-Celebrate 가사 中-
keyword
토요일 연재
이전 13화회복의 땅, 남미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