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의 순간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깜빡이 없이 무리하게 끼어드는 앞차에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릴 때가.
살다 보면 그런 순간이 있다.
별 뜻 없이 상대가 한 얘기였는데 기분이 팍 상하는 순간이.
살다 보면 그런 기억이 있다.
지나고 나면 그렇게까지 받아쳤어야 했나? 할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한 경험이.
그런 상황들은 대부분 후회의 감정을 남기지만, 가끔은 나라는 사람을 조금 더 잘 이해하는 계기가 되곤 한다. 아무도 공감해주지 못하더라도, 나만 아는 맥락을 통해서.
직장생활 3년 차. 피할 수 없는 불운이 찾아왔다.
여전히 혈기왕성했고, 아직 미숙했다.
반복된 시련에 인내심은 바닥났다. 끓어 넘친 용암 같은 분노는 사표를 내는 행동으로 귀결됐다. 사표를 내고 이내 후회했으나, 갑자기 없던 일로 해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을 각오도, 일을 바로잡을 결심도 하지 못한 채 어중간한 마음으로 출발했다. 그렇게 떠난 남미였다. 돌아올지, 돌아오지 않을 지도 결정하지 못한 채로. (배경스토리 다시 보기)
공항에서 만난 M과 H는 걱정을 표했다. 무슨 일이냐는 이야기에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둘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엄청 큰일인 줄 알고 걱정했어". 그 말 뒤엔 고작 그런 일로 사표를 내느냔 실망이 은은하게 드러났다. 나는 약간 화가 났다. 그러나 모든 맥락과 감정은 나 혼자만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둘은 이미 직장에서 나와 친하기로 잘 알려진 사이였다. M과 모로코를 다녀온 뒤, 곧이어 떠난 일본여행을 시작으로 H도 본격적으로 여행 멤버로 합류했다. 셋이 있을 때 케미가 무척 좋았다. H는 경청과 유머를 갖춘 친구였다. 그와 시간을 함께 보내다 보면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쿠바에서 서로에 대해 꽤나 이해하게 되었고(쿠바여행기), 그 순간들이 좋았다. 그래서 일 년에 한 번뿐인 5일짜리 연속연차휴가를 이듬해에도 같이 쓰기로 의기투합해서 남미로 떠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출발 이틀 전, 그들은 내가 사표를 냈단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것도 내가 아닌 다른 동기들로부터 건너서. 소문이 워낙 빠른 직장이라,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내가 사표를 냈다는 소식이 퍼지는데 채 반나절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출발 전날, 하루 종일 동기들에게 시달렸던 것이다. "블랙이 왜 그랬대?", "블랙이 무슨 일 있어?", "블랙이 어디 다른데 합격했대?". 내 손을 떠난 사표는, 사람들의 입과 키보드를 타고 돌고 돌아 물고 뜯고 맛보는 가십거리가 되어 있었다. 걱정보단 흥미로. 그들이 온갖 동기들에게 연락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나는 또 한 번 마음이 아렸다. 하나는 시달렸을 그들에 대한 미안함에. 다른 하나는 그래도 명색이 동기들인데, 내 사표소식을 단순한 가십으로 치부해 버리는 인간들의 냉점함에.
이동이 많은 여행이었다. 거의 여행의 절반이 이동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남미 대륙 최 남단에 있는 파타고니아 지방에 가서, 토레스 델 파이네라는 산을 등산하는 것이었다. 아웃도어 브랜드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는 파타고니아. 그들의 티셔츠 뒤에 프린팅 되어있는 산이 바로 토레스 델 파이네였다. 등산이 쉽지 않다는 사실에, 등산화도 새로 사서 떠난 남미였다.
인천에서 미국 댈러스 포트워스 공항까지 13시간 가까이 비행을 했다. 이미 이것만으로 진이 빠질 지경이었다. 저녁노을을 보며 출발한 비행기는 다시 저녁노을이 드리우는 미국땅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이동한 시간만큼 시차가 있어서 한참을 이동해도 동일한 날짜, 거의 같은 시간에 댈러스 공항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지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가끔 장거리 여행을 떠날 때면, 나에게 시간을 돌리는 능력이 생긴 것만 같은 착각이 들 때가 있다. 나는 댈러스의 지는 노을을 보며 딱 이틀만, 사표를 내기 전으로 시간을 돌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당시에 분명히 사표를 낸 것을 무척 후회하고 있었다.
댈러스에서 다시 칠레의 수도인 산티아고로 이동을 해야 했다. 우리는 당시 라탐항공이라는 칠레 국적기의 특가상품을 아주 싸게 예약했다. 그래서 경유 편이 아니고 미국에서 한 번 출국을 했다가, 다시 입국절차를 밟아야 했다.
미국에 도착한 뒤 칠레로 떠나는 데 까지는 약 8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미국 입국수속이 매우 오래 걸렸다. 특히나 나와 M은 러시아, 중국, 쿠바 등 공산국가들을 여행한 흔적이 여권에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에 더 까다롭게 보는 것 같았다.
아주 단순한 실수에서 오해가 생겼다. 얼마를 들고 왔냐는 질문에 나는 150만 원 정도의 현찰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걸 ten thousand bucks(만 달러)라고 잘못 말한 것이었다. 현찰을 만 달러 이상 소지하면 사전에 신고를 해야 했다. 나는 150만원, 마화로 천 달러가량 소지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내가 만 달러를 가지고 있다고 잘못 말해버리는 바람에 이미그레이션에서 왜 신고를 하지 않았냐부터 의심이 출발했다. 나는 셈을 실수해 잘못말했다고 변명했으나, 내 직업기재란엔 분명 금융권에서 일한다는 정보가 적혀있었다.
"금융권에서 일하는데 어떻게 돈을 잘못 계산할 수 있지? 이상한데? 너 따라와"
나는 별도로 마련된 인터뷰실로 끌려들어 갔다. 거기서 오랜 시간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고, 바로 또 칠레로 출국할 것이라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 무진장 애를 써야 했다. 여행이 겨우 가능한 영어 실력으로, 복잡한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미국땅을 잠깐 구경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전부 날리게 되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사과를 했다. M과 H는 "어차피 나가봐야 그냥 잠깐 보고 들어왔어야 돼. 택시비만 아깝지 뭐"라며 나를 위로해 줬다.
댈러스에서 산티아고까지는 9시간 반을 이동해야 했다. 인천을 떠난 지 꼬박 서른시간, 아주 먼 길을 비행기를 갈아타고 나서야 우리는 남미땅을 밟을 수 있었다. 택시를 타고 갈까 잠깐 고민을 하다가 우리는 공항버스를 타고 산티아고 시내로 들어가기로 했다. 경험도 경험이지만 가격이 저렴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쉴 수 있으니 조금만 더 참자는 결정이었다. 한참 체력이 좋은 20대였기에, 우리는 기꺼이 고생을 감내하던 시절이었다.
버스는 우리를 광장에 내려줬다. 한가로이 담배를 피우던 동네 청년들이 "Hola~ Chino! Chino!" 하며 우리를 불렀다. 처음 겪는 일이라면 인종차별이라며 매우 불쾌했겠지만, 쿠바에서 한 번 겪어본 뒤로는 그들이 딱히 적의나 악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저 동양인이 신기하고, 동양인은 그들 눈에는 다 중국인으로 보이기 때문이었다. 중국인은 세계 어디를 가나 무리를 짓고 살고 있었다.
"No soy chino, soy coreano(나는 중국인이 아니고 한국인이야)"
라고 웃으며 대답하니 "coreano~~~"라며 그들도 웃으며 환대를 했다.
그중 더 적극적인 친구는
"Corea del Sur? Norte?(남한? 북한?)"라며 물어봤다.
그때, 장난기가 넘치는 H는 나와 M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차례차례 "Corea del Sur, Sur"라고 읊은 뒤,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스스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Norte"라고 말했다. 칠레 청년들은 갑자기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이게 농담인지 진담인지 잘 모르겠는지 그들끼리 수군거렸다. H는 확인사살이라도 하듯이 "피유~~~"하는 효과음을 내며 폭탄이 떨어지는 흉내를 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Be careful, amigo. Be careful"이라고 쿨하게 뒤돌아섰다.
우리는 그리고는 한참 동안 서로 그의 센스를 두고 낄낄거렸다. 그 이후 Chino라고 우리를 부르는 사람들이 있으면 이번엔 어떻게 H가 그들을 골려줄지 기대부터 되었다. 때로는 그냥 남한에서 왔다고 하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 모두가 북한 사람이 되기도 하였다.
꽤나 걸었다. 구글맵을 보면서 걸었는데도 어디가 어딘지 조금 헷갈리는 길이었다. 분명 큰길에서 숙소로 들어가는 골목이 나와야 하는데 큰길이 쭉 이어졌다. 우리는 구글맵이 업데이트가 안된 건가? 하는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좀 더 올라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M은 "음.. 아마 골목이 아니고 공원을 가로지르는 것 같아"라고 깨달은 듯 이야기했다. 그렇게 무작정 길을 건너 공원을 가로지르자 비로소 구글맵의 위의 점이 숙소를 향해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걷다 보니 더워서 겉옷을 벗었다가, 그늘에 들어가면 쌀쌀해 겉옷을 다시 껴입기를 반복했다. 오래된 유럽식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숙소가 위치한 골목의 초입에 도착한 것이었다. 건물 모퉁이를 돌아 골목으로 돌아서니 형형색색의 벽화가 보였다.
미술에 조예가 없는 내 눈에도 무척이나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민족과 법, 종교 등등의 주제가 반영된 벽화 같았다. 길거리의 예술가가 그렸다고 하기엔 꽤나 완성도가 있어 보이는 벽화였다. 알쏭달쏭한 그림을 사진에 담은 뒤 문득 '여행이 끝날 때쯤 그림을 다시 보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칠레. 세게에서 가장 위아래로 긴 나라. 축구를 잘하는 나라. 편의점에서 자주 사 먹었던 디아블로 와인의 산지. 그 정도가 내가 아는 칠레에 대한 전부였다. 그러나 여기도 이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삶의 방식이 있으리라. 벽화는 새로운 여행에 대한 암시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