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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블랙 Jul 21. 2021

나 여소좀

을지다락

그래서 예진 씨는 어떤 남자가 좋으신데요?


네?

저도 말씀드렸으니까 예진 씨도 말해주셔야죠~


예진은 지금 이 광경이 데자뷔처럼 느껴졌다.

소개팅에만 나오면 남자들은 늘 하나같이 이상형을 예진에게 물었다.


은근슬쩍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  남자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도 주저리주저리 저는 이런 여자가 좋다면서,

예진을 뻔히 바라보며 말하고는, 이상형을 실토할 것을 강요했다.

마음에 드는 남자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남자들은 대부분 본인을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 었다.


스스로 착각을 하는 것인가 되물어보아도,

본인의 이상형이라고 말하며 예진이 가지고 있는 조건에 대해 칭찬하는 남자들의 속내는 뻔해 보였다.


30대 초반의 대기업 직장여성.

예쁜 얼굴과 큰 키,

운동으로 꾸준히 가꾼 몸매,

적당한 중저음의 좋은 목소리,

서울 상위권 대학 출신에, 능력 있는 부모님까지.


예진은 누가 봐도 좋아할만한 조건을 갖춘 여자였다. 소개팅을 시켜달라고 한 적도 없건만, 오랜만에 연락 오는 친구들은 반갑다는 인사도 채 끝내기 전에, 남자 친구 지금 있냐며 용건부터 톡으로 들이밀었다.


예진은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했다.

소개팅으로 만나는 남자들은 어색할 뿐만 아니고,

나를 맘에 들어한들 이 사람이 내 무엇을 보고 마음에 들어 할까 싶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조건들이 사라져도,

내 내면의 꽁꽁 감추어둔 약한 마음을 다 보여줘도, 나를 사랑해줄 사람이 과연 있을까.


반복됐던 사랑과 이별, 지난 20대의 경험에 예진은 적당히 남자를 불신했다.

저는 그냥 다정한 사람이 좋아요.
제가 좀 감정이 업다운이 심해서 옆에서 잘 보듬어 주는 사람이 좋아요.


말이 끝나자마자 상대는 세상 다정한 눈빛을 지으며, 목소리를 한키정도 낮추며 본인이 얼마나 다정한 사람인지를 어필하기 시작했다.

'지겹다..'


예진은 이 반복되는 모습에, 뚱딴지같이 회사 면접을 보는 면접관의 심정이 공감이 되었다.


하나같이 본인이 적격자라는 것을 어필하려는 지원자와, 맘에 들지 않더라도 내색할 수 없는 면접관.


그 감정의 간극만큼이나, 상대방은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는 소개팅이 끝난 후 주선자에게 예진이 본인을 별로 맘에 안 들어하는 거 같다며 한풀이를 하기 일수였다.

'이러다가 감 다 떨어지겠네.. '


남부럽지 않은 조건은 다 갖춘 예진 이건만, 소개팅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는 길은 손을 꼭 붙잡은 연인들의 모습만 눈에 더 밟혔다.


'부모님의 기대고 뭐고 그냥 혼자 살아야겠다.'



긴 한숨을 내쉬며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을지로에서 압구정을 가는 472번.

 

10년 전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생 시절, 종로에서 항상 남자 친구가 예진을 집까지 데려다준다며 함께 타던 버스에 올랐다.


어색해서 계속 주워 먹었던 저녁 음식이 얹힌 기분에 속이 쓰렸다.

마치 10년 전 그때와 뭐가 변했는지 모르겠다며 스스로를 자책하는 예진의 기분처럼. 뒷맛이 씁쓸했다.



#본 시리즈는 협찬 없이 직접 다니며 내돈내산 한 식당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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