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예찬주의자 #2

by 매버지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놀란 것들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한강은 내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강 자체의 웅장함도 대단했지만, 그 주변을 둘러싼 높은 건물들과 화려한 야경, 그리고 강가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풍경은 낯설면서도 매혹적이었다. 지방에도 수변공원은 있지만, 이렇게 크고 잘 정비된 곳은 드물다. 유럽에서 본 파리의 센강이나 스위스의 라인강도 아름다웠지만, 한강이 결코 그들보다 뒤처진다고 느낀 적은 없다.


20대의 한강 – 젊음이 요동치던 공간

20대에 찾은 한강은 활기로 가득 찬 곳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빠져 지내던 농구를 다시금 고수부지 농구장에서 즐겼다. 친한 형들과 함께, 때로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섞여 땀을 흘리며 슛을 던지고 나면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다. 농구 후 편의점에서 벌컥 들이켰던 새파란 파워에이드의 맛은 아직도 선명하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도 있다. 고향에서 대학 때문에 상경했던 친구들과 모임을 가진 뒤, 함께 한강을 찾았던 날. 나는 재수생 신분이었고, 대학에 입학한 친구들의 학교 이야기를 들으며 묘한 감정에 빠졌다. 부러움과 기대감이 뒤섞였던 그 밤, 웃고 떠들던 모임은 이후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흩어졌다. 그 친구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30대의 한강 – 불안과 고심의 강가

30대의 한강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직장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강가에 앉아 멍하니 물결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맞을까? 나에게 더 어울리는 길은 없을까?’ (놀랍게도 이 질문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결국 첫 직장을 그만두고 네 달 남짓의 시간을 보내며 삶의 방향을 고민했다. 불안감에 잠을 이루지 못하던 밤, 차를 몰고 새벽의 한강에 도착해 음악을 들으며 강을 바라보곤 했다. 때로는 하염없이 걸으며 마음속 허전함을 달랬다. 네온사인이 강물 위로 흩어져 반짝이는 모습을 보며,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었던 기억이 난다.


40대의 한강 – 가족과 함께하는 쉼의 자리

이제 40대 중반이 된 나는 가족과 함께 한강을 찾는다. 인터넷에서 돗자리를 고르고, 세 가족이 앉을 캠핑의자를 장바구니에 담는다(여보, 미안ㅋ). 지방에서 올라온 친지들과 시간을 보낼 때도 한강은 좋은 장소가 된다. 반포대교에서 쏟아지는 분수를 바라보며 마시는 맥주 한 잔,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행복한 얼굴이다.

무엇보다 여름 저녁, 햇빛이 누그러지고 노을이 지는 시간에 아내와 딸과 함께하는 한강은 내게 편안함을 준다. 편의점에서 사 온 컵라면을 거뜬히 먹어치우고, 아이스크림을 외치는 딸이 정말, 귀엽다. 여의도 방향을 바라보며 잠시 휴식을 취하는 아내의 모습도 눈에 담는다(아직도 여의도 근무시절이 그립지?). 한동안 아내에게 제주도 생활을 권하였던 내가 무안해질 만큼, 한강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떠나긴 어딜? 여기 있어!”


이제는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런 힐링 장소가 있다는 사실에 정말 감사하다. 강바람이 시원해지는 계절이 오면 나는 다시금 자주 이곳을 찾을 것이다. 한강은 내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렇게 다른 얼굴로 다가왔듯,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누군가에겐 사랑을 나눈 곳일 수도, 또 누군가에겐 눈물을 삼킨 곳일 수도 있다.


당신에게 한강은 어떤 얼굴로 기억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