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찬주의자#2
요즘 예찬할 대상이 너무 많아서 탈이다.
하필 사람으로는 2명인데 둘 다 김 씨고 한 명은 감독, 한 명은 드라마 캐릭터인 김 부장이다. 어제 최종화를 마친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가 요즘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나 역시 처음엔 관심 없었다가 여론의 찬사를 받기 시작한 이후부터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첫 1~4화에 등장하는 김 부장의 모습이 너무 재밌고, 상황이 웃겨서 많은 이들이 빠져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난 드라마 중반 시련에 빠지기 시작한 김 부장에게 마음이 쓰이기 시작했다.
이 드라마를 보는 연령층마다 아마 다른 시선으로 김 부장을 보고 있을 것이다. 10대 그리고 20대는 우리 아빠의 미래 또는 현재의 아버지 모습으로 비쳐 안타까워할지도 모른다. 혹은 김 부장의 꼰대스러움을 지적하며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 생각할지도. 30대나 40대 역시 과거의 아버지가 떠오르거나 본인의 미래를 걱정하며 볼지 모른다. 50대나 60대 또는 그 이후는 지금의 나 또는 과거의 내 모습을 떠올리며 상처를 끄집어내거나 이미 훌훌 털고 웃으며 바라볼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 세상엔 지금 김 부장이거나 김 부장이 될 거거나 되었거나 하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드라마의 마지막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이라는 모든 수식어가 사라진 오직 인간 김낙수로서의 김 부장의 삶의 모습과 더불어 공장 작업반장의 '밥 먹자~~'라는 외침과 함께 이야기는 끝이 난다. 어쩌면 이 드라마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자아를 찾아가는 김 부장의 여정이고, 회사 생활은 우리가 먹고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임을 의미 있고, 유쾌하게 그려낸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승진, 연봉 인상 외에는 별다른 기쁜 포인트들이 없다. 동료 혹은 선후배들과 치열하게 경쟁하여 결국 임원의 자리에 올랐지만, 퇴직 후 아무도 찾지 않고 뒤에서 욕을 먹는 그런 사람들도 허다하다. 그건 아마도 회사애서 주어진 퀘스트에 갇혀 버린 인간에게 그 퀘스트가 사라져 버릴 때 쓸모가 없어져 버린 것과 같이 느껴진다.
나 역시 15년 정도의 조직생활을 하며 많은 김 부장을 만났다. 나 또한 한 때는 김 부장이기도 하였다. 지금의 내가 당시의 김 부장들을 바라보면 드라마 속 아내 하진(명세빈 역)처럼 짠한 감정이 든다. 그 짠함은 동정이 아니고, 그 시절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그런 내 모습이 이해가 가면서도 안타깝기 때문이다. 결국 내 선택이고, 행동이었기에 그 책임은 나에게 있으며 결과도 마땅히 받아들여야 한다.
얼마 전 과거 재직한 은행에서 존경하고 따르던 두 분의 '퇴직'과 '좌천' 소식을 듣게 되었다. 퇴직하신 선배님은 내가 은행을 퇴사하며 유일하게 감사 이메일을 보냈던 분이다. 그때 당시의 부장님은 지점장이 되신 후 임원이 되지 못한 채 55세에 스스로 희망퇴직을 신청하셨다. 부드러운 리더십과 훌륭한 인품 그리고 뛰어난 업무능력을 보여주셨고, 회사에서도 핵심부서의 부서장까지 하셨던 분이었기에 충격이 컸다. 도진우 부장이 김낙수에게 "도대체 왜"라고 외치는 마음이 이해 갈 정도로 내가 아쉽기까지 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드린 안부연락에 현재의 상황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며 예전과 똑같은 품위 있는 답장을 하셨다. 언제나처럼 자기를 낮추며 당시에 나를 더 잘 챙겨주지 못함에 미안하다는 내용(내가 일찍 조직을 떠난 것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다른 한 분은 나에 대한 오해가 있었다가 그 오해가 풀리자 정말 나를 예뻐해 주신 팀장님이시다. 승진 후 지점장이 되시고, 본부부서장까지 하시다가 다시 지점장으로 소위 아주 잘 나가셨다. 그런데 갑자기 좌천을 당하게 되신 것이다. 이유를 대충 알아보니 지금의 제일 높은 분과 과거에 업무적으로 좋지 않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결국, 이놈의 배드 타이밍에 걸려 드라마 속 김 부장과 같이 고지 앞에서 쓰러지셨다. 지금은 좌천당한 분들만 모아 놓은 허름한 사무실에 매일 출근하며, 말도 안 되는 업무를 수행하고 희망고문만 당하고 계신다. 실제로 팀장님 역시 이 드라마를 보셨고, 드라마 속 '김낙수가 곧 나'라는 말까지 하셨다. 혹시 드라마의 최종회까지 보시고 조금이라도 마음의 위안을 얻으셨기를 바란다.
드라마 속 김 부장에게는 든든한 두 울타리가 있다. 자신 등 뒤에 타고 있는 줄 알았던 아내와 아들이다. 정신적 가장이었던 아내 하진과 아버지의 울퉁불퉁한 사랑을 조금씩 알아가며 성장해 나가는 아들 수겸이는 결국 김 부장이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지지하는 큰 버팀목이 되었다. 비로소 자신을 찾고, 과거의 불행과 영광에서 벗어난 인간 김낙수는 가족이 본인을 지켜주고 있었다고 인정하게 된다. 결국 힘들 땐 가족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김 부장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언젠가 마주하게 될 ‘나의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직장이라는 무대 위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느냐보다, 무대 밖에서 어떤 얼굴로 살아가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자신이 근무했던 회사의 법인차량 세차를 하기 위해 다시 들어간 모습)을 그는 온몸으로 증명해 냈다. 우리는 종종 회사가 준 명함과 직책이 나의 전부라고 착각하지만, 막상 그 껍데기가 벗겨지는 순간 남는 것은 결국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 그리고 나 스스로의 모습뿐이다. 드라마 속 김낙수가 스스로를 되찾는 과정이 유독 짠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지금의 나는 어떤 ‘수식어’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으며, 그 수식어가 사라진 자리에는 어떤 사람이 남을까? 김 부장의 여정을 보며 직장을 버티는 우리 모두가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 볼 여지를 얻었다면, 그 자체로 이 드라마가 가진 힘은 충분하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높은 자리 나 더 큰 성공이 아니라, 김 부장처럼 한 번쯤 자기 삶의 표정을 들여다볼 작은 용기인지도 모른다.
https://youtu.be/OLw-_qu1IeQ?si=FnZ8BKzKa2UmMbQ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