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찬주의자#2
지난 11월 22일 나에게 계란후라이에 대한 추억을 만들어 준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그날은 내 결혼기념일이기도 하여 평소엔 하지 않았던 이벤트와 식당 예약까지 모두 취소한 채 고향으로 가족 모두 길을 나섰다. 지난 추석 때라도 뵈었으니 다행이라는 마음과 어린 시절 나를 돌봐주신 외할머니 생각을 조금씩 떠올리다 보니 어느새 장례식장에 도착하였다.
장례식장에는 외할머니의 자녀들과 외손주 한 명 그리고 막내외삼촌의 손님만 한 분 계실 뿐 한적하였다. 그도 그럴게 5녀 3남을 두신 94세 외할머니의 자녀와 손주들 대부분은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다. 그리고 이모와 이모부, 외삼촌 등 대부분 현직에서 은퇴한 평균연령이 70세에 가까운 고령화 가족이었다. 그러다 보니 손님이 적을 수밖에.
처음엔 이렇게 조용한 장례식장이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지방이라 그런지 제일 작은 장례식 방을 선택하셨다는데, 사이즈가 서울의 특실과 맞먹을 정도여서 더 그랬다. 상조회사 분들도 자녀들에 비해 손님이 너무 적다며 좋은 건지 싫은 건지 모르겠는 말을 하였다. 그리고 여유가 있으셔서 인지 열심히 상조 영업을 하여 손주 2명에게 상조도 가입시키고 말이다. 그중에 하나가 나다.
그만큼 장례식이 여유로웠다는 거다. 그동안 장례식장에 가면 정신없이 보내는 경우 많았는데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은 너무 좋았다는 거다. 각자의 삶이 바빠 얼굴도 못 보고 살던 친척들과 오랜만에 만나 그간의 삶에 대해 나누고, 술도 한 잔 마시며 외할머니와의 추억을 하나씩 꺼내었다. 결국 추억의 대부분은 착하고 순했던 우리 외할머니는 손주들에게 늘 따스했고, 교회 권사님의 자애로움을 선사하신 분이었다는 것.
형제간 우애가 언제나 좋으면 좋으련만 외가 역시 우여곡절이 많았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과 똑 닮은 삶을 살았던 우리 큰외삼촌, 어릴 적 약을 잘못 먹어 천재에서 조금 부족한 일반인이 되어버린 둘째 외삼촌, 어려운 형편에 외할머니께서 삵바느질해 시장에 내다 팔아 번 돈으로 공부시켜 의사가 된 막내 외삼촌까지. 남자 형제들만 해도 스토리가 파란만장하다. 거기에 정확히 중간인 우리 어머니 위아래로 총 4명의 이모 그리고 이모부들까지 모두 크고 작은 사연들이 많은 삶이다. 그런 가족들끼리 서운하거나 불편한 일들이 없었겠나. 각자에게 조금씩 상처가 된 일이 있었고, 비록 그 상처가 다 아물지는 않았지만 외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모두 조금은 그 상처에 밴드를 붙여주는 모습이었다.
특히, 집안의 막내이자 가장 똑똑했고, 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우리 막내 외삼촌. 화장장에서 갑자기 내게 '혹시 삼촌에게 서운한 게 있느냐' 물으셨다. 내 기억 속의 막내외삼촌은 음악을 좋아하는 멋진 의대생이었는데 이제 머리가 반쯤 벗어진 나이 든 의사 선생님이 되셔서 말이다. 나 어린 시절 외할머니댁에서 삼촌이 연로하신 외할머니께 물심부름시키는 모습을 보고 집에 돌아가 어머니께 삼촌 못됐다고 고자질을 했나 보다(어머니도 참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삼촌은 그간 외할머니를 더 가까이 챙기지 못하고 본인의 본가와 거리를 두며 살았던 이유를 설명하며 나에게 이해를 구했다. 나 역시 각자의 삶은 모두 상황이 다르고, 자기가 버틸 수 있는 무게만큼 버티는 게 맞다며 조카로서 마음을 전했다.
이번 장례식장에 참여한 유일한 미취학아동이었던 딸은 손님이 적었던 틈을 타 할머니의 영정사진 앞에서 열심히 옆 구르기를 하거나 춤을 추고 노래를 불었다. 그런 조카손주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지켜보시던 친척분들은 함박웃음을 지었고, '도대체 누굴 닮아 저렇게 밝냐'는 질문을 수십 번 들었다. 나도 처음에는 너무 예의에 어긋난 것 같아 딸을 만류했지만, 돌아가신 외할머니 앞에서 마지막으로 재롱떠는 증손주의 모습을 귀엽게 봐주실 거라는 생각을 하고 체념했다.
발인 날 미국에서 살고 있는 큰 외삼촌의 아들이 참석하지 못해 내가 직접 영정사진을 들었다. 다행히 평균연령 40세에 가까운 남자손주 4명이 있어 앙상한 외할머니의 시신을 모신 관을 들기엔 무리가 없었다. 그렇게 화장장으로 그리고 한 줌의 재가 되어버린 외할머니를 모시고 그녀를 안치할 납골당으로 향했다. 신발장 같이 생긴 납골 수납함에 들어가신 외할머니께 '외할머니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쉬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조용한 장례식장에서 외가 친척들과 함께 보낸 3일이 전혀 지겹거나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외할머니께서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남겨주신 선물처럼 느껴졌다. 이젠 곧 당신의 차례가 올 것이라 생각하시는 부모님들과 바쁘게 살아내고 있는 자녀들이 모두 한 자리에서 밥을 먹고,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 치유된 상처도 있고, 치유는 되지 않았지만 상처가 조금 더 아물어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손님이 너무 많아 응대하느라 바쁜 장례식보다, 조용하지만 가족들이 함께 이야기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장례식 이거 참 괜찮은 것 같다.
외할머니, 한 없는 사랑 정말 감사했어요.
굽어버린 무릎 하늘나라에서는 쭉 펴고 걸으시길 바랄게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