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 19

예찬주의자 #2

by 매버지

무슨 철 지난 코로나 바이러스(이하 '코로나')인가? 싶겠지만. 얼마 전 발리에서 귀국 후 코로나에 걸렸다. 약도 먹지 않고, 하루 이틀 지나가는 감기이려니 버티다가 병원을 찾았다. 결국 코로나 진단을 받고, 1주일째 항생제를 먹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완쾌가 되지는 않았다. 보통 코로나에 걸리면 약 2주 정도 고생했던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 1주일 정도는 더 지나야 원래 컨디션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대부분 코로나를 저주한다. 지금은 일상으로 많이 돌아왔지만, 한참 극성이던 시절 마스크 대란, 거리두기, 모든 게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던 기억들까지. 그런데 또다시 나를 찾아온 이 녀석을 대하는 내 마음이 좀 달라졌달까? 어쩌면 내 인생의 중요한 장면들과 함께 하고 있는 코로나를 재정의해 보고 싶었다.


2020년까지 나는 안정적인 금융회사에 근무하였다. 당시 코로나에 대한 우려가 점차 심각해져 가며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회사에는 마스크를 쓰고 업무를 하고, 거리 두기의 일환으로 분산(?) 근무를 시행하였다. 멈춤과 단절이 행해지던 그때, 마침 주도적으로 맡아서 진행한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어 여유가 생겼다. 그 때 세상의 멈춤 속에 나 역시 잠시 멈추어 직장인으로서의 삶에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2021년 스카웃 제안을 받고 고민 끝에 옮긴 스타트업에서 완전 새로운 방식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금융회사에서 수동적이고 보수적인 업무방식에 길들여져 있던 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꽤 힘든 여정이었지만 가족과 동료들 덕분에 잘 이겨냈고, 나름 상징적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결국 이 경험은 나를 다시 대기업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들었고, 이후 또 다른 이직을 선택할 때도 주도적인 업무 환경을 추구하게 만들었다. 코로나가 내게 미친 영향이 아니었으면 난 여전히 분명 금융회사의 틀에 잡힌 직장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앞에서 밝혔듯 코로나 시절 내 인생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올 생명을 선물 받았다. 혼란의 시기에 태어난 딸은 혼탁한 세상의 생생한 희망이었다. 마스크를 쓴 채로 병원을 오가고, 가족조차 자유롭게 만날 수 없던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보호'와 '사랑'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배웠다. 그렇게 난 아버지로서의 삶을 코로나와 함께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아이를 전업으로 돌보고 있는 아빠이자, 가사를 책임지고 있는 주부가 되었다. 코로나 시기가 끝나갈 때쯤 선택한 현재의 삶은 내 인생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20대 후반부터 성공과 영향력에 몰두했던 내가 '가족'을 돌보고 '나'를 찾는 일에 더 관심을 두며 산다. 때로는 이렇게 살아도 되나?라는 생각도 했지만, 가족들을 위해 밥을 짓고 아이의 등하원을 책임지며 함께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느낀다. 하나 더 이렇게 글을 쓰고 나누는 삶이라니? 상상도 못할 일이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나는 분명 이 시간을 선물처럼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코로나는 나에게 많은 고통과 아픔을 주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일깨워주었다.


멈춤의 가치, 변화의 용기, 그리고 존재의 본질.


지금도 내 몸을 괴롭히고 있는 이 녀석에게 조심스럽게 한 마디 던져본다.


"그래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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