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찬주의자 #2
10월 말 처가 식구들과 처음으로 함께 떠나온 발리. 비행의 피로와 아이들을 챙기느라 굳은 몸을 풀기 위해 동남아 여행의 필수코스인 마사지샵을 찾았다. 저렴하지만 실력은 탁월한 마사지사의 손길에 뭉친 몸이 사르르 풀렸다. 그래서인지 그 날밤 오래간만에 꿀잠을 잔 것인가? 역시 마사지는 나와 인류에게 주어진 작지만 특별한 선물이다.
여행지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나는 종종 마사지샵을 찾는다. 한의원에서 맥을 짚을 때도 온몸이 긴장상태라고 할 정도로 딱딱하게 굳은 몸이다. 동네의 '용'하다는 곳은 다 가보았고, 괜찮다는 곳이 있으면 멀더라도 차로 원정을 떠났다. 그래서 첫 지압의 느낌만으로도 대충 오늘 마사지가 어떨지 느낌이 오는 경우가 있다.
한 번은 교대역의 훌륭한 분을 찾아뵈었다. 첫인상은 맹인 안마사로서 오랜 시간 한 곳을 지키고 계신 장인의 느낌이었다. '목과 어깨 연결된 부위가 좀 아픕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목부위를 잡아보시고 한 부위를 지그시 누르셨는데 순간 온몸에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긴장으로 꽉 뭉쳐진 몸이 순식간에 기분 좋게 풀리는 기분. 더불어 내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
마사지는 일상에서 쌓인 피로를 풀어주는 수단이지만, 단순히 근육을 푸는 행위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마사지를 받을 때 느껴지는 것은 단순한 '압력'이 아니라, 사람의 손끝을 통해 전해지는 온기와 안정감이다. 마사지 체어에서 느낄 수 없는 사람의 살과 살이 맞닿는 접촉을 통해 아픈 부위의 통증들에게 "괜찮다", "곧 좋아질 거야"같은 신호를 보내는 언어의 신호 같은 것이다. 그것은 육체적인 차원을 넘어선 일종의 심리적 위안 언어 같다.
우리는 유아기 때 말을 배우기 전 손길을 통해 세상을 배운다. 엄마의 손길, 아빠의 품, 친구와의 포옹 등 이런 터치는 우리의 신경계를 진정시키고, 옥시토신을 분비시켜 안정감과 유대감을 느끼게 한다. 성인이 된 후에도 그 본능은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인간은 '사람의 온기'가 늘 그리운가 보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누군가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미묘한 온도를 통해 살아 있음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말 한마디보다, 위로의 문장보다, 때로는 그저 어깨를 두드려 주는 손길 하나가 마음의 굳은살을 풀어주기도 한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화면 너머의 이모티콘으로는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온기가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사람의 온기가 그리운 이유는, 결국 그 온기 속에서 ‘함께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요즘, 내 주변의 누군가에게 따뜻한 온기를 건넨 적이 있었을까?
혹은 누군가의 온기를 충분히 느끼며 살아가고 있을까?
그렇지 않았다면 당신의 온기를 통해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