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2024.8.2 오전 9시경 발생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낫또에 아침밥을 든든하게 먹고 예쁘게 옷을 차려입은 아이와 어린이집 등원길에 나섰다. 밖에 나가 광합성만 해도 그저 흥이 나는 아이는 더우니 뛰지 말라는 아빠의 조안은 무시한 채 또 냅다 뛰기 시작했다. 아이는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곧바로 뛰려고 했는데 조심성은 없어 달리면서도 옆을 보거나 뒤를 바라보는 일이 잦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사신경이 남달라 다행스럽게 상처가 날 만큼 넘어져 크게 다친 일이 없었다.
뛰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찍으려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내어 쫓으며 찍기 시작했다. 마치 잡기놀이라도 하는 듯 아이는 뒤를 돌아보며 신나게 웃으며 뛰었고, 결국 난생처음으로 길바닥에서 대자로 넘어졌다. 마치 온몸이 굳어버린 듯 숨소리도 내지 못한 채 길바닥에 뻗어있던 아이에게 다가가니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일으켜 세운 뒤 얼굴과 팔, 다리를 확인했다. 앞으로 넘어지면서도 얼굴은 다치지 않았고 두 팔과 손바닥도 멀쩡했으며, 두 무릎 중 한쪽만 돌바닥에 쓸려 찰과상을 입었다. 어린이집 가방에서 물티슈를 꺼내 살짝 피가 나는 무릎을 닦아내니 그제야 아프다고 고래고래 소리치기 시작했다. 결국 등원은 잠시 뒤로 미루고 다리를 절뚝거리며 닭 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들어선 아이는 혼자 신발도 못 벗었다. 신발을 벗겨주고 식탁 의자에 앉혀 놓고 상처부위를 다시 체크하였다. 상처가 깊어 보이진 않았다. 연고를 바르기 전 소독을 하려고 냉장고 안에 있던 차가운 소독솜을 꺼내었다. 아직 소독솜의 존재를 모르는 아이는 아빠의 행동을 숨죽이며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이윽고 차갑고 따가우며 강렬한 소독솜이 상처부위에 닿자 내 손을 뿌리치며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집 떠나가듯 울던 아이를 달래고 상처부위를 입으로 호호 불어준 후 겨우 상처연고를 발랐다. 진정시키려 좋아하는 요구르트를 줘도 반도 못 먹고 안 먹겠단다. 그리곤 너무 아프다며 꺼이꺼이 울고 또 울었다. 아이는 그렇게 인생에서 쓰디쓴 첫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해맑게 뛰어가는 등원길, 대성통곡하는 아이
"첫 찰과상을 축하해! 넘어져 보니까 알겠지? 얼마나 아픈지?"
아이는 찡그린 표정을 지었지만 이후 아빠의 잔소리(그러게 뛸 때는 앞만 보라고 했지, 왜 말을 안 듣니..)를 듣고선 앞으로는 조심하겠다는 거짓말 같은 참말을 한다. 그런 아이를 꼬옥 안아 주었다. 그리고 분위기가 좀 좋아지는 것 같아 무심하게 '이제 등원할까'라고 회심의 제안을 던졌으나 '싫어'라는 칼대답이 돌아왔다. 그래 좀 더 진정해야지. 좋아하는 유튜브를 틀어 몇 번을 봤는지 셀 수도 없는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처음 본 것 같이 놀라주고 장단을 맞춰주다 보니 어느덧 어린이집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선생님께서 왜 안 오냐고 물어보시네. 친구들도 기다린대. 이제 우리 가볼까?' 이번엔 말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여준다. 아싸.. 성공.. 다시 가방을 챙겨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며 마치 좋은 일이 있는 사람처럼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걸었다. '녀석 근데 참 엄살이 심하다, 누구 닮아서.'
많이 아팠지? 이렇게 넘어지고 깨지면서 조금은 더 조심하는 마음이 생길 거야. 그리고 다쳐도 열심히 약 바르고 소독하면 금방 나을 수 있어. 그러면 어느새 상처는 아물고 새 살이 돋아나지. 나중에 그 상처자국을 보면 잠시나마 기억해 주길. 인생의 첫 찰과상의 순간 아빠가 함께 있었다는 걸.
그리고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종종 아프고 깨질 일이 생기겠지만 그건 잠시일 뿐 다 지나간단다. 엄마의 최애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나오는 대사야. '옛날 일 아무것도 아니야.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아쉽게도 영원히는 아니겠지만 아빠, 엄마는 언제나 옆에서 상처연고 들고 항시대기 중이란다. 몸과 마음 어디라도 다치면 언제든 지금처럼 와서 울고 불며 이야기해 주길.
출처 : 드라마 나의 아저씨, https://blog.naver.com/kosmos_vadam/222095865237
40대 중반 누군가는 삶이 점점 무뎌져가는 시기, 나는 천방지축 딸과 완벽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사랑하는 이의 성장을 바라보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성장의 세포가 죽어버린 것 같았던 나 역시 기지개를 켠다. 앞으로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다가 올 첫 경험을 축하하며, 내일은 또 어떤 처음이 딸과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기대가 된다. 그리고 만약 그 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행운이 또 온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