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내 시작한 [늦깎이 백수 아빠의 육아일기] 연재가 어느덧 2달 반이 흘렀다. 처음엔 초보 아빠가 전업주부로서 아이를 키우며 드는 생각이나 정리해 보자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내 글을 읽어주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과 기대감, 나와의 약속에서 비롯된 책임감, 창작의 고통의 감정을 느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어느덧 마음속으로 정한 마지막화까지 오게 되었다.
가장 가까이 옆에서 지켜본 아내는 아이를 재우고 새벽까지 글을 쓰는 나를 보며 조금은 어이없다는 반응이었다. 완벽한 'T' 성향의 아내는 뚜렷한 목적이 없이 경제적 가치창출도 안 되는 그 일을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 궁금해했다. 그리고 결혼 이후 집에서 아주 소소한 주제로만 이야기를 나누던 남편이 조금은 깊고 무거운 주제로 글을 쓸 때면 약간 'woo~~woo~~'와 같은 피드백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본인의 지인에게 백수인 남편의 글을 소개한 걸 보면 생각보단 나쁘지는 않았나 보다.(여보, 고마워!)
아이를 키우는 일은 나를 성장시키는 일이라는 생각을 기반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여전히 매일 실감 중이다. 오은영 박사의 금쪽이 관련 프로그램들에서 자주 간접경험하듯 육아는 그렇게 달콤한 일은 아니다. 육아에는 분명 고통이 수반되고 그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헤쳐 나가느냐에 따라 부모로서 성장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잠깐이지만 지난 8개월 동안 느낀 중요한 감정을 정리하며 연재를 마치려고 한다.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같이 놀아주는 시간의 양보다 질이고, 아빠의 존재는 매우 크다. 안타깝지만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아이에게 드는 부채감을 돈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나 역시 바빴던 지난날 아이와 많이 놀아주지 못해 쌓인 미안한 감정을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사주며 해소하려 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그렇게 돈 안 쓰고도 좀 더 나은 아빠가 될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에게 아빠는 그 존재만으로도 의지가 된다는 중요한 사실(자존감과 연결된 부성애)과 퇴근 후 10분이라도 아이와 눈을 맞추고 진심을 다해 웃고 공감하며 놀아주는 것이 아이와 내적 친밀감을 쌓을 수 있는 중요한 장난감이었다.
무지개를 좋아하는 아이와 그린 무지개집, 그리기 지옥놀이...:)
아이는 보호의 대상이지만 지배해야 하는 대상은 아니다. 아직은 어려 세상에 대해 잘 모르는 아이에게 초보 엄마, 아빠는 늘 걱정이 많다. 그러다 보니 자주 과잉보호를 하게 되고 누적되면 아이의 모든 것을 지배하려 들게 된다. 안된다는 말보다 위험하지 않다면 경험하게 하고 스스로 느끼게 하는 행위가 더 중요함을 느낀다. 아이 역시 나와 같이 개인의 생각을 존중받아야 할 인간이고, 본인의 결정에 따라 스스로 책임을 지는 법을 배워야 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을 매우 공감한다. 만약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면 내 평상시 모습이 어땠는지 먼저 생각해 보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부모가 스마트폰 중독이라면 자녀 78.6%가 중독이라는 조사결과(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4)가 보여주듯 그 책임을 아이에게만 돌리는 순간 부모로서의 성장은 멈추는 것 같다.
부모가 지금의 행복을 포기하면 아이도 지금 행복할 확률이 줄어든다. 미래에 더 행복하게 잘 살자는 프레임 속 고생 끝에 낙이 온다와 같은 마인드셋으로 무장한 나를 포함한 40대 가장들은 대부분 지금의 행복을 포기하며 사는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의 행복을 포기한 부모를 바라보는 아이들은 어떻게 행복을 상상하고 꿈꿀까? 이미 지쳐 행복이라는 단어조차 진부하게 느껴져 버린 내가 남들이 우러러보는 직장에서 많은 돈을 벌면 행복이 자연스레 따라올까? 나 역시 그런 생각으로 지금껏 살아왔지만 스스로 전업주부를 선택하고 조금 늦은 나이 아이를 키우며 앞으로의 인생은 무조건 지금 행복한 것을 선택하며 살기로 마음먹었다. 무책임하게 놀고먹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누릴 수 있는 크고 작은 내 행복을 뒤로 미루며 누군가 정해놓은 큰 행복을 위해 남과의 비교, 그들이 옳다고 말하는 가치 등에 나를 끼워 맞추며 사는 것을 과감히 포기했다. 조금은 급진적으로 변한 나의 이런 생각을 전했던 지인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아이가 나중에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해 주려면 지금 좀 더 희생하고 많이 벌어 두는 게 중요하지 않나?
내가 경제적인 지원을 해 줄 수 없다고 원망하고 낙담하며 본인의 부모를 다른 부모와 비교하며 비난하는 아이로 크지 않도록 돕는 부모가 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일상 속 작은 행복을 놓치지 않고 감사하며 가족을 존중하고 행복을 표현하는 아빠와 남편이 되는 것이 목표다. 어쩌면 이런 삶을 추구하는 것이 예전 보여지는 성공을 추구하던 시기의 선택보다 더 어려운 선택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나는 지금 행복해지는 삶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
여전히 아이를 키우며 아이에게 화를 내고 금세 후회하는 어른이 같은 초보아빠이지만 이번 연재를 통해 나 자신이 진짜 추구하던 나의 모습을 조금 되찾은 느낌이 든다. 아직 미생인 내가 완생으로 향해 가는 길에 내 옆 가장 든든한 조력자인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저 깊은 어둠 속에서도 미소로 나를 끌어올려 줄 수 있는 아이가 함께하고 있다. 오늘도 작지만 소중한 행복을 느끼며 조금씩 천천히 가족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