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 추 Davy Chou의 <달콤한 잠 / Sommeil d'or>
1960년에 뒤늦게 시작된 캄보디아 영화 산업.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영화는 오히려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고, 1975년까지 약 400편의 영화가 제작되며 황금기를 누린다. 그러나 1975년 급진 좌익 정권인 크라메 루주가 캄보디아를 장악하고, 킬링필드라 일컬어지는 캄보디아 집단 학살이 자행된다. 지식인들이 사살당했고, 영화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감독들, 배우들, 제작자들이 살해되었고, 대부분의 영화는 사라졌다. 데이비 추의 첫 장편 영화, 다큐멘터리 <달콤한 잠>(2011)은 더 큰 꽃을 피기 전에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캄보디아 영화계에 대한 오마주다.
캄보디아 혈통의 프랑스인 감독인 데이비 추는 당시 영화 제작자로 활동했던 Van Chann의 손자다. 영화를 했던 할아버지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연결고리는, 한 젊은 시네아스트가 자신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캄보디아의 영화사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유다. 감독은 이 첫 영화를 통해 자신의 근원을 찾으며,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리고자 한다. 어쩌면 "할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어?"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르는 영화. 개인적인 의미의 제스처는 영화사적인 콘텍스트로 확대되고, 이는 매우 현대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한 영화감독과 캄보디아 영화사가 만나게 되는 사건이다.
영화는 새벽의 어두운 캄보디아의 한 거리에서 시작한다. 마치 이창동의 <박하사탕>에서 거꾸로 가는 기차처럼, 오토바이를 앞에 둔 카메라는 자꾸 뒤로만 후퇴한다. 해가 뜨는 풍경 속에 영화는 Play Back, 과거로 돌아갈 것을 제안한다. 이후 감독은 자신에게 가장 가까우면서 당시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 고모의 인터뷰로 영화의 문을 연다. 프랑스에서 이루어진 인터뷰. 불어로 표현하는 고모. 대부분의 영화는 사라졌지만, 당시 음악들은 남아있다. 인터넷에서 음악을 찾는 감독의 제스처 - 디지털 이미지- 이후, 본격적인 여정을 위해 영화의 배경은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으로 이동한다. 곤히 잠을 자고 있는 캄보디아의 청년들의 모습. 영화는 그들이 꾸는 <달콤한 꿈>이다. 기억 속에는 존재하지만 사라져 버린 것, 화려했던 캄보디아 영화의 전성기.
영화는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다큐멘터리로, 증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건을 재구성해나가는 일반적인 방식을 채택한다. 당시의 캄보디아 영화사를 실제로 살아낸 인물들 : 당시 영화감독들, 영화 제작자, 당대 최고의 여배우 그리고 4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시 봤던 영화들을 기억해내는 시네필들까지. 그들의 증언 중간중간 과거를 담고 있는 사진, 영화 포스터, 음악들을 소개하기도 하고, 다른 장소가 되어버린 옛 영화관들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젊은 시네아스트의 모습. 이 영화의 가장 큰 모티브는 과거에게 말을 거는 현재, 그리고 현재에게 당시의 이야기를 해주는 과거, 즉 그 둘 간의 대화다. 이는 세대적인 만남이기도 하다. 옛날이야기를 해주듯 침대 맡에서 이야기하는 감독의 이야기를 듣는 청년들, 잃어버린 영화의 장면에 대한 감독의 생생한 묘사를 토대로 영화를 찍어보려는 청년들의 모습. 이렇게 감독은 현재를 살고 있는 캄보디아 청년들을 영화 곳곳에 위치시키며, 영화의 대상을 명확히 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허공 속으로 흩어져 버리지 않는다. 젊은 청년들, 현재 세대가 그들을 듣고 있는 것이다. 감독은 이 과거와 현재에 대한 모티브를 영화 전반에서 연출적인 요소로 끌어들인다.
이제 막 경력을 시작하는 현대 영화 작가 데이비 추는,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명석한 연출 방식을 통해 가장 현대적으로 풀어낸다. 영화는 인물들의 인터뷰 내용에만 기대지 않고, 거기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미지와 사운드의 힘을 최대한 발휘하며, 관객들에게 감각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감독은 영화 속에서 이미지를 합성해, 초현실주의적인 측면을 불어넣기도 하고, 알랭 래네의 초기 다큐멘터리 작업 스타일을 모방한, 사진의 부분적인 이미지들로 이루어진 몽타주와 그에 포개진 대위(contrepoint)적인 음악을 보여주기도 한다. 현재의 프놈펜에서 과거를 담아내는 공간들을 응시하는 시선들은, 공간들을 정보적인 의미에서 살짝 보여주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관객이 제대로 바라보기를 바라는 듯, 느린 트래블링을 비롯하여 긴 쇼트들로 보여준다. 그리고 전율이 왔던 한 장면 : 이제는 가정집이 되어버린 옛날 영화관 공간을 천천히 훑는 카메라의 움직임에 당시의 영화 음악을 겹쳐 놓은 장면. 이는, 목소리는 사람의 영혼을 담고 있다는 말처럼, 더 이상 영화를 관람하는 공간이 아니지만 그 안에 과거의 영혼이 깃들여 있을 수도 있다고 제안하는 것 같다. 사라졌다고 해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시네아스트 Ly Bun Yim의 미개봉작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에필로그에서, 감독은 상징적인 미장센을 통해 영화를 마무리한다.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을 등 뒤로 한 채, 능숙하게 영화의 내용을 이야기하는 감독. 더 이상 영화관이 아니고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 된 지도 오래된 장소 한쪽 벽에 한 영화가 영사된다. 대부분의 영화가 사라졌다며, 영화 내내 한 번도 드러나지 않았던, 그토록 호기심을 자극했던 당시 캄보디아 영화다. 1시간 반의 기다림 끝에 실체를 드러내는 당시 영화의 모습. 그리고 이를 젊은 캄보디아 청년들이 우러러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