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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Feb 28. 2023

지극한 개인주의자가 엄마가 된다면

아이를 키우며 나 자신도 키웁니다.

대학 졸업반 무렵에 사귀었던 동갑내기 남자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니나야, 조금만 기다려. 내가 얼른 졸업하고 대기업 취직해서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고, 꼭 행복하게 해줄게!”      


그때도 그 말을 듣고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 친구의 예쁘고 순수한 마음은 고마웠지만, 그 말을 듣자마자 들었던 내 생각은 이랬다. ‘너도 잘됐으면 좋겠지만 일단 내가 그 회사에 취직해야 더 기쁠 것 같은데!’      

돌이켜보면 나는 좀 이기적인 성격이었던 것 같다. 좋게 포장하면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독립적인 성격이고, 좀 나쁘게 말하면 내 자아실현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이다. 


사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나 자신보다도 내 아이를 더 사랑하지만, 내 일과 취미도 중요하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육아가 부모의 일방적인 희생과 헌신으로만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두려워했던 것 같다. 나 개인의 시간, 개인의 취향과 영역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보니, 엄마가 된 이후에 그런 것들이 모두 희생될까봐 두려웠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오히려 개인주의자이기에 가능한 양육 스타일이 생기고, 내 일과 육아의 균형도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갈 수 있다. 


개인주의자 성향이 강한 내가 아이에게 그래도 좀 잘하는 부분이 있다면, 아이의 성향을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는 점이다. 나 스스로가 '나만의 영역'을 중시하다보니, 나도 아이의 성향을 그대로 존중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내가 어렸을 때 받고 싶었던 대우를 아이에게 그대로 해주게 되는 것이다.


아이와 대부분의 일상을 함께 하면서 새삼 깨닫는 사실은, 내 자식도 엄연한 '타인'이라는 점이다. 내 뱃속에서 나온 자식이니 내 눈에는 세상 귀엽고 예쁘지만, 그 역시 자기만의 생각과 기질과 취향을 갖고 있는 엄연한 타인이다. 조그맣고 어린,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타인. 


나는 아이가 남에게 피해주는 행동을 하거나 위험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대체로 허용하는 편이다. 에너지가 넘치는 남자 아이답게, 흙바닥을 떼굴떼굴 구르고 무릎으로 걷고(?) 소매를 벽에 쓸고 다니고 하는 것쯤은 일상이다. 다른 엄마들이 신기하게 쳐다봐도, 마음껏 발산하도록 내버려둔다. 


길에서 본인 화에 못이겨 드러눕거나 악을 쓰고 울어도 나는 괜찮았다. 원래 남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고, 아이가 우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내라면 조용히 데리고 나오고, 실외라면 구석에 데리고 가 울음이 그칠 때까지 기다려준다. 


빨리 울음을 그치라고 닥달하거나 달래주지도 않는다. 남자 아이라 말을 오래 늘어놓으면 더 역효과가 난다. 아이의 감정에 충분히 공감해주며 꼭 안아주고 난 후, 그저 기다린다. 아무리 울어도 안되는 건 안되는 거라고 알려주는 시간일 때도 있고, 아이에게 충분히 울고 화낼 시간을 주는 시간일 때도 있다. 


한편으로는 엄마가 자신의 요구를 들어줄 때까지 악을 쓰고 우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내 자식답게 날 닮아서 고집이 센 모습이 기특하게 보인다. 그래, 그 정도의 집념은 있어야지. 앞으로 뭘 해도 끈기있게 잘하겠네!


포인트는 내가 감정적이 되지 않는 것이다. 육체적으로 피곤하거나, 일에 쫓겨서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인 경우에는 나도 모르게 아이를 닥달하고 짜증을 내고 만다. 결국은 복잡한 어른의 문제이고, 아이는 대체로 잘못이 없다. 아이는 늘 아이답게 행동할 따름이다. 


그래서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도 결국, 마음이 평화롭고 행복한 상태의 '개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걸 이해하고 나자 아이 양육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찌보면 아이 양육은 끝없는 '기다림'의 시간이기도 하다. 


나 스스로 행복한 개인일 수 있도록 다듬고 연습하는 시간, 아이가 부모의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까지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반복하며 기다리는 시간, 좋은 습관이 몸에 익을 때까지 계속 시행착오를 겪으며 기다리는 시간, 스스로 감정을 추스릴 줄 알게 되기까지 따뜻하게 안아주며 기다리는 시간, 부부가 서로 격려하며 힘든 시간을 함께 지나오는 시간. 


그 기다림을 통해 아이 뿐만 아니라 부모인 우리도 성장한다. 늘 돈보다 시간을 아까워하고, 효율성을 따지기 급급했던 나에게, 아이는 되려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아무리 서둘러도 안되는 것이 있다는 것, 차고 넘치도록 쌓이고 쌓여야 서서히 드러나는 것들이 있다는 것도. 


봄이 와야 꽃이 피듯이, 아이는 자기만의 속도로 매일 성장하고, 자기만의 세계를 매일 만들어 나간다. 내가 자신을 다독여주었던 것처럼, 아이는 그 작은 손으로 가끔 나를 다독여주기도 한다. 엄마 괜찮아, 잘 못할 수도 있지 뭐. 다시 해 봐. 


나 자신만 알았던 편협하고 작았던 나의 우주가, 이 조그만 아이를 통해 넓어지고 깊어진다. 부디 아이가 자기만의 개성있는 우주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자기만의 우주를 견고하게 쌓아나가는, 멋진 '개인주의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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