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AI의 진화: 남성중심 실리콘밸리, 뒤쳐진 뷰티테크
한 달 전쯤 캘리포니아에 왔으니 캘리걸 스타일을 해보고자 속눈썹 연장술을 받기로 했습니다. 짙은 눈썹과 긴 속눈썹, 알로 레깅스 입고, 스텐리 텀블러 든 캘리MZ 하고싶었기 때문ㅋㅋ 집 근처 속눈썹연장샵을 열심히 찾던 중 발견한 ‘로봇 속눈썹 연장’. LUUM이라는 미국 뷰티테크 스타트업에서 개발한 로봇이 실제 사람 속눈썹을 연장해준다고 합니다. 사람은 시술 전후 눈썹 정리와 마무리 정도만 해준다고해요. 그런데 시술 시간은 절반이라고. 스타트업인만큼 오프라인 매장은 캘리포니아 베이 지역에 딱 두 곳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중 한곳이 때마침 집 앞 쇼핑센터에 있었습니다. 당장 예약해!!!
갔더니 백화점 내 여러 매장 한 가운데에 딱 매장이 있고. 천장에 기계가 달린 일단은 침대같이 생긴 요상한 시술대가 하나 있었어요. 이색체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지 역시 포토존 같은 곳도 마련돼 있고, 한 곳에 시술을 해줄 로봇도 전시중입니다.
시술 받기 전 유튜브 영상, 홈페이지 설명을 꼼꼼하게 보고 읽긴했지만 무섭기도 했어요. 뾰족한 로봇이 눈 위를 지나다니면서 속눈썹에 풀칠을 하고 아주 얇은 인조속눈썹을 이어붙인다니. 자칫 내 눈을 찌르진 않을까. 내가 움직이면 어떡하지. 시술 기계 안에 들어갔다가 문제가 생기면 사람 직원을 부를 수는 있을까하는 불안과 걱정이…한국에서 사람이 시술해줄 때도 풀이 눈 안에 들어가서 시리거나 가끔 피부에 뾰족한 핀셋같은게 닿기도 했는데, 로봇이 사람보다 더 컨트롤을 잘 할 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본격 시술 전 이 기계를 먼저 살펴보면, 젓가락같이 생긴 로봇팔 두개가 있는 형태고요. 한쪽 로봇팔이 눈과 눈썹의 위치를 파악해 고정하고, 다른쪽 팔이 인조 속눈썹이 풀을 묻혀 들고와 제 속눈썹과 이어붙이는 형태입니다. 한쪽 눈씩 따로따로 시술을 해요. 기계에서 직접 속눈썹 모양과 어느정도 양으로 붙일지 시술 스타일을 고를 수 있어요. 또 직원은 시술 중기계 모니터를 통해 제 시술상황을 볼 수 있습니다. AI가 사람마다 다른 눈 모양이나 속눈썹 길이, 양을 다 파악해 최적화된 시술을 한다고 합니다.
직원 분이 제 속눈썹을 정리해주시고, 눈 밑에 스티커를 붙여주셨고요. “문제가 생기면 기계를 손으로 치면 된다”는 말과 함께 제 얼굴을 기계 안에 밀어넣으셨어요. 두근두근.
기대 이상이었어요. 우선 시술 시작 5분쯤 지나고 잠이 들었을만큼 편안했습니다. 네 면이 모두 막힌 기계 속으로 얼굴을 들이밀어야하다보니 살짝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기도했는데, 도리어 조용하고 백색소음 같은 로봇작동음때문에 편안하게 잤던 것 같아요. 시술중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고, 만약 제가 움직이거나 눈을 뜨면 곧바로 로봇이 작동을 멈추고 제 눈에서 멀어졌어요. 시술 시간은 1시간~1시간 30분 정도 걸렸습니다. 미국에서 속눈썹연장술 받으려면 보통 2시간 30분~3시간 걸려요. 절반으로 시간이 줄어든거에요. 앞으로 양 눈 시술을 한꺼번에 할 수 있도록 로봇을 업그레이드한다고 하니, 정말 커피브레잌에 속눈썹 연장을 받을 수 있을듯. 가격은 $170. 좀 사악하긴해요.
챗GPT로 대표되는 AI소프트웨어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하드웨어’ 영역인 로봇의 진화도 엄청납니다. 이제 로봇한테 내 눈을 맡기는 시대가 왔어요.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AI다음은 피지컬 AI”라고 했는데, 진짜 그렇습니다. 특히 최근엔 ‘센서 기술’의 발달로 LUUM 속눈썹 연장 로봇처럼 미세 컨트롤이 가능하고, 심지어 촉각을 느끼거나, 힘 조절을 할 수 있는 로봇도 나오고 있어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이 물류창고에 ‘벌컨’이란 로봇을 배치했는데, 힘 조절, 무게 측정 등이 가능해서 물건들을 쉽게 손상시키지 않고 옮길 수 있게됐다고 해요. 만저보고 숙성도를 판단해 익은 과일만 손상없이 따는 농업로봇도 속속 개발되고 있어요.
다른 한편으로는 LUUM이 특이했던 이유는 ‘뷰티 테크’라는 점 때문입니다. 실리콘밸리는 남성 엔지니어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그렇기 때문에 여성중심인 뷰티 분야의 발전은 상대적으로 늦은 편입니다. 이런 문제를 지적한 외신기사들도 실제 많아요. 실제로 저도 이 내용으로 기사를 쓰면서 초안으로 남자 상사에게 넘겼는데, “속눈썹 붙이는데 왜 1시간이 넘게 걸리냐”는 질문을 3번쯤 하셨습니다. 속눈썹 연장이 뭔지, 그걸 돈 내고 왜 받는지, 그냥 한번에 붙이면 되는데 왜 그게 수 시간씩이나 걸리는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뷰티분야야 말로 AI기술이나 로봇이 들어와 할 수 있는게 정말 많은 영역인데 말이죠. 심지어 속눈썹 연장술은 한 달에 한 번씩 매일 리터칭을 해야하니 고객확보나 수익성도 좋습니다.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뷰티테크 분야에서 활약하는 로봇이라, 재밌고 더 신기했어요. 마찬가지 이유로 고령층을 위한 기술이나 테크제품도 발전이 늦는 것 같은데, 더 많은 스타트업과 엔지니어들이 이 분야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을 위해 기술이 할 수 있는 것이 가장 많을 분야인데 말이죠.
한 달이 지나서 지금은 속눈썹이 거의 다 떨어졌어요. 저는 LUUM에서 속눈썹 재연장을 했을까요? 고민 중인데, 아직 안했습니다. 뭐랄까…너무 미국 스타일이라 저한테 안어울리는거 같기도하고(?) 한 90%가 떨어지고 10%만 남아있는 지금이 더 더 자연스럽고 좋은거 같아요. 연장하는 속눈썹 양을 확 더 줄여서 50%만 붙일 수 있는지 문의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