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술은 새 부대에

자신의 경험에 취하는 실수

by 사나래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씀이 있다.

포도주를 담았던 가죽 부대는 동물의 가죽으로 만들었다.

여기에 포도주를 담으면 포도주가 자연 발효할 때 생기는 발효 가스로 인해 내용물이 부풀게 되고 이때 새 가죽은 신축성이 있어 늘어나지만 한번 포도주를 담았던 낡은 가죽 부대는 굳어져 신축성이 없어 터지고 만다.


예수께서 굳이 이 말씀을 왜 하셨을까?

한번 포도주를 넣었던 부대는 다시 포도주를 넣을 수 없었다.

포도주의 당 찌꺼기가 가죽의 올 사이사이에 가득 차서 굳어진 터라 새 포도주가 발효할 때의 가스를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신선하고 달콤한 새 포도주를 받으려면 새 가죽 부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가죽 사이사이에 낀 포도주 찌꺼기는 유대 지도자들과 서기관, 관원들의 유전과 변할 수 없는 의식의 굴레였다. 바꾸고 싶지 않은 자신의 고집, 이만하면 되었을 것 같은 스스로의 자랑스러움이다. 이미 자기의 의가 가득 찬 사람들, 혈통적으로도 위대한 조상인 아브라함의 자손, 이미 충분히 존귀한 자라는 자부심의 소유자들이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고 경험이 많아지고 자리가 굳어질수록
쉽게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자신의 경험으로 미루어 익혀온 것들과
자신도 모르게 젖어든 권위는 말씀이 들어갈 틈을 주지 않는 것들이다.


신앙이 깊어갈수록 오랜 기간 성령의 바람에 젖어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자신의 경험에 젖어들었기 때문에 그것을 알 수 없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귀중한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았다. 낡은 유전, 습관 및 행동을 비우기 전에는 그들의 정신과 마음에 그리스도의 교훈을 받아들일 여지가 없었다. 그들은 죽은 형식에 집착하였고 산 진리와 하나님의 능력으로부터는 돌아섰다.”(DA, 279)


이것이 유대인의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했다.

새 포도주가 채워지도록 마음에 쓸모없는 낡은 가죽 부대를 버리고 새 가죽 부대를 마련했어야 했다.


우리는 때때로 말씀을 이해할 때도
자신이 듣고 싶은 대로, 받고 싶은 대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말씀을 펴서 읽기 전에는 꼭 기도를 먼저 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말씀을 받아 나에게 적용시키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말이다.

우리와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았던 유대인들처럼 자신의 선한 행동과 공로에 취하여

예수님의 교훈과 하늘의 기별을 받아들일 여지없이 살아가면서 자신의 업적을 치하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날마다 순간마다 새 포도주를 받기 위해 새 가죽 부대를 준비하려면 다만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자부심 외에는 자신의 학벌과 부와 명성에 자부심을 갖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새 가죽 부대가 된다면 그리스도께서 새 포도주로 그들을 채워주실 것이다.”(DA, 279)


예수께서 전하셨던 진리는 사람들에게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자신을 비우지 않는 자들이 받아들이기에 어려웠을 뿐이다.

예수께서는 편견을 깨트리셨고 여론에 타협하지 않으셨고 비난에 휘둘리지 않으셨으며 어떤 정치적 문제에도 영향을 받지 않으셨다. 또한 일반인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복잡하고 겉치레에 불과했던 형식 대신 중심을 보아주신 분이셨다.


집안과 학벌과 돈과 빽이 없어도,
정말 내세울 거 하나 없이 보잘것없는 인생이어도
생수를 갈급하는 그 심령만을 귀히 여겨주신 그런 분이셨으니
내가 평생을 걸고 모셔야 할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신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그분은 그렇게 사셨고 일하셨다.

그분을 닮기 위해 우리가 할 것은 어떤 행위가 아니라

마음에 낡은 틀을 깨트리고 겸손히 새 가죽 부대를 준비하는 일이다.

그리고 경험의 어설픈 업적을 내세우지 않고

그분의 생애를 깊이 연구하여 나의 삶에 적용시키는 것이 아닐까.

날마다 말씀으로 이 부족한 인생을 만나 주시는 그분을 경험하기 위해 새 부대를 준비해야겠다.



사진-rod-long-1EJ0xZJ618U-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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