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도 쉼이 없는 삶

마음을 고르는 순간

by 사나래

호흡을 조절하고 마음을 고르는 시간이 있다.

애써 준비한 것을 대중 앞에 선보이는 순간, 경합을 위하여 실력을 겨루는 순간에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눈을 감고 마음을 고른다.

중요한 일일수록 더욱더 그러하다. 발표를 앞둔 긴장된 순간, 이를테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자기 차례가 되었을 때, 뮤지컬의 막을 올리는 순간,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전시회의 오프닝 등에서 우리는 마음을 가다듬는다.

더 잘하기 위해서다. 최고의 찬사를 듣기 위해서다.


마음을 고르는 순간엔 아마도, 더러는 기도할 것이고 더러는 자기 암시를 할 것이다.

실수하지 않고 준비한 것을 마음껏 보여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생각해보니 나는 자기 암시를 많이 하면서 살아온 거 같다.

스스로 견뎌내려고 스스로 인정받으려고 마음을 가다듬었더랬다.


그러나 글을 쓰면서부터는 마음을 고르는 시간에 말씀에 몰입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나를 본다.

내 부족한 글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없으니까,

이왕이면 울림이 있는 글을 쓰고 싶어서 더욱 말씀에 몰입하려 애를 쓴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어쩌면 크리스천에게 꼭 필요한 것이지 않을까.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교훈과 꾸짖음 없이, 듣기에 좋은 것만 가르쳐 주었더라도

가르침만을 주셨다면 늘 함께했던 제자들과 군중은 싫증 냈을 수 있다.


‘화무십일홍’이라 했듯 아무리 좋은 말씀도 늘 한결같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신 위대한 사역은 제자들의 마음을 움직이신 것에 있다.

특히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마지막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

말로만 하는 봉사가 아닌 직접 낮은데로 임하신 그 사건이 제자들을 감동시켰다.

물론 그 외에 수많은 감동의 사례들이 있지만 이보다는 덜하다.


우리 삶의 위대한 결과는 무엇을 이루어 냈기 때문이 아니어야 한다.

노력하여 무엇이 되었거나, 어떤 자리에 올랐거나,

무슨 훌륭한 일을 해서가 아니라 어떤 일을 이룸에 있어서 주님께 여쭈면서 했는지,

무슨 훌륭한 일을 함에 있어 주님을 향한 선한 동기가 개입되었는지가 우선이어야 한다.

혹여 실패를 했더라도 예수님과 함께했다면, 나의 최선을 다했다면,

사람이 보기에 비록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그 결과가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늘 마음을 고르고 주님께 몰입하자.


조금 깨달았다고 우쭐대는 순간,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리스도 곁을 떠나가고 있을 수 있다.


최고의 결과를 위하여 마음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 몰입하기 위하여 마음을 고르는 시간이 되도록 하자.

“그리스도처럼 높임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분은 몸을 굽혀 가장 낮은 의무를 감당하셨다.”(DA, 649)


어찌 보면 우리의 삶은, 절반의 삶은 평화롭고 절반의 시간은 불안할 수 있다.


쉬어도 쉼이 없는 삶! 최고가 되고자 하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도 없는 최고의 자리는 사실 고역일 뿐인데 그것을 알기가 쉽지 않다.

지금의 내 자리가 비록 낮은 곳일지라도 그리스도와 함께라면

쉼이 없는 고된 인생과 불안의 늪을 지나 참 평화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마음을 고르는 중요한 순간에 그리스도께 몰입하고 가장 낮은 의무를 감당하기를

나 자신을 향해 당부하고 또 당부한다.




사진-asoggetti-1269412-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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