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에 순종하는 삶
부르심을 알면서도 흔들린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나는 입이 둔하고 자격이 없고 별 볼일 없으며 중요한 지위도 아니어서 바로가 내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며... 또 무엇보다도 백성들이 따르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며 변명하였던 모세처럼... 나도 그랬다.
스스로 맞지 않는 옷이라 여겨져 오랜 시간을 망설였다.
나는 적극적인 성격이 아니라 대중 앞에 나서기가 두렵고 대인 관계도 원만치 않고
실력도 없고 특히 가진 것이 없어서 더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핑게했다.
사실은 정말 피하고 싶은 자리여서 능력있는 친구를 영입하고는 막 도망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주시는 거다.
“그대보다 더 풍성한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되는 어떤 사람에게 그대의 책임을 미루는 대신에
그대의 능력대로 일하라.”(DA, 370)는 말씀.
이런 말씀까지 해 놓으셨을 줄은 정말 몰랐다.
하나님도 참, 어떻게 수천년 후에 있을 나의 상황을 아시고 이 말씀까지 준비해 놓으셨는지
참으로 신묘막측하시다.
게다가 내 능력만큼만 일해도 된다고 하시니 조금은 마음이 놓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부담스럽다.
이럴 때 딱 필요한 처방전, 순종과 믿음이다.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면 재간과 능력에 의존하지 말라신다.
“하나님의 사업을 할 때에 인간의 지혜나 수(數)를 믿는 것은 큰 잘못이다. 그리스도를 위한 사업의 성공은 수나 재간이라기보다는 목적의 순수성과 진심에서 우러나는 참된 단순성과 내맡기는 믿음에 달려 있다.”(DA, 370)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든거처럼
우리에게도 먹을 것이 필요한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신다.
이제 그만 갈등하고 일을 하라시는 것 같다.
생각해보니 그때 제자들이 한 것은 단지, 나누어준 것 뿐이었다.
그것도 예수님의 손에서 베풀어지는 기적을 보면서
그분의 손에서 떡을 받아 배고픈 자들에게 단지 나누어주었을 뿐이다.
주께서 먹을 것을 주라셨을 당시, 제자들에게는 마땅히 나누어 줄 것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돈도 없었고 주변에 음식을 장만할만한 적당한 음식점도 없었다.
그러니 현실적으로는 딱히 방법이 없는데도 먹을 것을 주라시는 예수님의 명령에
어쩌면 그들도 나처럼 도망가고 싶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제자들이 군중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준 것은 오직 예수님의 손에서 떡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예수께서 부르실 때에는
생명의 떡을 함께 주시겠다는
보증도 포함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왕좌왕하는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앞에 두고도 믿음 없이 하지 말고
자신의 보리떡을 그분께 가져가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분이 그 보잘것없는 것을 능력의 떡으로 바꾸어 주신다는 보증.
“그대의 마음속에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는 질문이 와 닿을 때 그대의 대답이 불신의 반응이 되지 않게 하라.”(DA, 370)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믿음으로 전진하면 풍성한 원천이 우리 앞에 공개될 것이다. 그 사업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면 그 일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그분께서 친히 재정을 준비하실 것이다.”(DA, 371)
라고 하시니 순종하지 않으면 손해볼 사람은 바로 “나”라는 결론!
우리는 남에게 나누어 줄 때만 받을 수 있다고 하신다.
계속 남에게 나눠주면 계속해서 받는다고...
더 많이 나눠줄수록 우리는 더 많이 받을 것이라고...
하나님께 속하고 싶다면서 일을 고르고
하고 싶은 일만 하려는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옐로 카드이다.
“이 일을 내가 해도 될까? 내가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때가 많다.
늘 갈등의 연속이다. 늘 피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어 안달이다.
그분의 옐로 카드는 늘 나의 강팍하고 무딘 심정을 터치하신다.
이제 그만 투정 부리고 받아야 하나 보다.
그리고 말씀으로 대답해 주시는 하나님께 내 숱한 갈등을 여쭈면서
때때로 그분이 내밀어 주시는 옐로 카드를 감사히 여기며 하나님께 속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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