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
죽음만은 내 인생에서 비껴가기를 누구나 바란다. “죽겠네, 죽겠네”를 입에 달고 살면서도 솔직한 심정은 죽고 싶지 않은 것이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
“메멘토 모리(memento)”.
이 말은 옛날 로마에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돌아온 개선장군에게 승리에 취해 교만하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였다. “당신도 언젠가는 죽을 존재이니 너무 우쭐하지 말고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
어찌 보면 가혹할지 모르나 크리스천들이 잊지 말아야 할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크리스천”이다. 즉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재림의 징조에 대해서 듣고 또 듣고 배우고 심지어 외우기까지 하는 교육을 받아왔다. 재림 때에 어떤 자연계의 징조가 일어나는지 어떤 환란이 오며 세상은 또 어떻게 변하고 정치는 어떻고 경제는 어떠하리라는 것을 거의 세뇌의 수준으로 배워 왔다.
우리는 재림의 징조가 순차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천천만만의 천사들을 대동하고 구름을 타고 내려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재림을 준비하고 있는가? 과연 우리가 모두 살아서 그 광경을 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예수님의 재림을 매우 기다리시던 할머니 집사님을 기억한다.
늘 자신은 살아서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하실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죽기 전에 구름 타고 오실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그토록 원하셨지만 어느 날 불의의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분은 그렇게 재림을 맞이하고야 말았다.
재림의 날, 죽음의 깊은 잠에서 눈을 뜨고 그제야 구름 타고 오시는 예수님의 재림의 날을 만날 것이다.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고 했다.
연장자부터 차례로 죽어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죽음의 그림자가 넘실거리는 곳에 살고 있다.
그러니 언제가 되었든 각자의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 바로 각자의 재림의 순간인 것이다.
그러니 더더욱 메멘토 모리 할 일이다.
그렇다면 짐승의 표를 받는 것과 지진과 해일이 일어나고 쓰나미가 일어나는 등의 천재지변의 징조는 내가 맞이할 재림의 순간과 어떤 관계가 있을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세상에 취해 흥청망청 살다가 마지막 재앙이 내려지고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그제야 회개하고 세상과 연을 끊고 주님만을 위해 살겠다고, 현재의 부도덕한 일상을 모두 청산하고 싶겠지만 정작 죽음이 그것을 기다려 주었다가 그런 과정들을 다 거치고 격식과 순서에 맞춰서 찾아오던가?
죽음은 어느 누구에게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삶의 변수이다.
죽음은 생각지 않은 때에 온다.
그러니 예수께서 재림을 도적같이 임하시는 사건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진정 크리스천이라면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마라.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마태복음 6장 34절)는 산상에서 주께서 하신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매일매일 오늘 살아 숨 쉬는 동안 준비해야 한다.
예수님의 재림은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는 바로 그 순간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이 나온다.
우리는 인생이 천년만년 남은 것처럼 살아간다.
미래를 위해 저축을 하고, 금을 사고, 땅을 사고, 주식을 한다. 땅값, 금값, 주식이 오르기 전에 죽음이 먼저 다가올 수 있는데도 말이다.
크리스천이라면 끝까지 폼생폼사 할 것이다. 즉 폼나게 살다가 폼나게 죽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일러주신 건강 법칙대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늘 살피고 이웃을 돌아보며 사는 것이다. 사랑만 하기에도 짧은 인생이라고 하니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도 점검하고 어렵더라도 미운 사람 만들지 말고 살아보는 것이다.
언제 죽더라도 죽는 그 순간까지
주안에서 폼나게 살다가 예수님 가신 길로 폼나게 따라나서는 것이다.
죽음이 우리를 찾아와 내 인생의 재림을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
감사하며 “끝까지 폼생폼사” 하고 싶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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